‘앙잘앙잘’은 작은 소리로 원망스럽게 종알종알 군소리를 자꾸 내는 모양을 뜻합니다. 이번학기 앙잘앙잘에서는 갖가지 주제를 말하는 대학생의 작은 소리를 모아 보려 합니다. 이번 주제는 ‘연애를 권하는 사회’입니다. ‘연애’는 이성 또는 동성 간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함을 뜻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감정을 타인이나 사회가 권하고 부추겨도 되는 걸까요? 대학생들은 ‘연애 조장’과‘연애 강박’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3명의 대학생과 앙잘앙잘 대화를 나눠봤습니다. 

아름다운 이야기 속 커플

비정상이 돼버린 솔로

능력 부족이 아닌

선택의 영역일 뿐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가수 김연자씨의 노래 ‘아모르 파티’의 가사 중 한 소절입니다. 여러분은 이 가사에 동의하시나요? 연애는 과연 필수일까요? 우리는 가끔 연애하지 않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능력이 부족하거나 어딘가에 문제 있는 사람으로 여기기도 하죠. 또 그런 사람들에게 연애하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연애는 필수가 아니라 개인의 선택이지 않을까요? 연애해야만 꼭 성공한 인생이라 말할 수 있는 걸까요? 고경필 학생(건설환경플랜트공학전공 1), 송주영 학생(가명, 고려대 사회학과), 이수빈 학생(물리학과 1)과 함께 연애를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와 비(非) 연애자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을 이야기해봤습니다.

  선택을 강요하는 사회

  사회자: “애인 있어?”라는 질문 들어보신 적 있나요. 그 질문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주영: 자주 듣죠. 하지만 선뜻 없다고 말하긴 어려워요. ‘아니’라고 답하면 제가 왠지 문제 있는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아서요. 애인이 있다고 대답해야 할 것 같아요.

  수빈: 누가 물어보는지에 따라 느낌이 달라요. 만약 제게 관심이 있어서 물어본다고 느껴지면 기분이 좋죠. 하지만 그 밖에는 별로예요. 친구에게 애인이 없다고 대답하면 항상 ‘소개팅 시켜줄까?’라는 답변이 뒤따라와서 연애를 강요받는 느낌이었죠.

  경필: 저는 그런 질문을 받으면 ‘왜 궁금해하지?’라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연애 여부로 저를 평가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사회자: 어떤 상황에서 그런 말이 오갔나요?

  경필: 첫 만남에서 많이 물어보는 것 같아요. 대학교에 와서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애인 있냐는 질문을 들어봤어요. 사람을 만나면 이름과 사는 곳을 물어보죠. 그리고 애인이 있는지 없는지를 물어보는 것 같아요. 명절날 어른들께서도 항상 물어보시고요. 

  수빈: 저는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연애 얘기를 자주 해요. 아무래도 같이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솔직해지고 말하기 편해지잖아요. 성인이 된 이후로 부모님도 한달에 한 번씩은 물어보시는 것 같아요.

  주영: 인사치레를 할 때 애인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 같아요. 사회에 ‘대학생=연애할 시기’라는 인식이 퍼져있기 때문이죠.

  사회자: ‘연애는 안 하니?’란 고질적인 질문 때문에 ‘연애를 해야 하나?’란 생각이 든 적 있나요?

  수빈: 주위 시선이나 분위기 때문에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어요. 만약 제가 연애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라면 ‘연애가 뭘까?’ 하면서 해보고 싶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가 연애를 해보고 느낀 점이 있기 때문에 안 할 것 같아요. 물론 연애의 좋은 점도 있지만 저는 혼자가 더 편해서요. 

  주영: 1학년 때 그렇게 생각했었죠. 그 당시에는 연애를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아서 ‘내가 진짜로 연애가 하고 싶은 건지, 아닌지’ 줏대가 없었던 것 같아요.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연애를 해야 하나 싶었죠. 제 친구 하나는 애인과 헤어졌는데 전혀 슬퍼하지 않았어요. 이유를 물어봤더니 새내기라면 왠지 애인을 사귀어야 할 것 같아서 사귄 거라고 말하더라고요. 이런 걸 보면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분위기에 휩쓸려 연애하는 친구들도 몇몇 있는 것 같아요.

  사회자: 태어나서 한 번도 연애를 해보지 못한 사람을 희화화하는 단어인 ‘모태솔로’나 ‘마법사’, 자신의 취미 활동에는 적극적이지만 연애에는 소극적인 남성을 일컫는 ‘초식남’ 같은 단어도 있죠.

  경필: 그런 말은 없어져야 해요. 연애하지 않는 사람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주기 때문이죠. ‘솔로=매력 없음’ 따위의 고정관념을 각인시키는 것 같아요.

  주영: 맞아요. 대중매체에서도 그런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어요. 일본 드라마에서 그려진 ‘건어물녀’의 모습이 대표적인 예시  죠. 드라마 속 ‘건어물녀’는 연애를 하지 않는 직장인이에요. 퇴근 후엔 집에서 맥주와 건어물 안주를 즐겨 먹는 모습으로 그려지죠. 주말에도 잠만 자다 보니 점점 연애에는 관심이 없어져서 건어물처럼 연애 세포가 바싹 말라버린 사람으로 묘사돼요.

  수빈: 연애를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그런 표현들이 계속 생성되는 것 같아요. 기업에서는 ‘빼빼로데이’처럼 커플을 겨냥한 기념일을 만들기도 하고요. 평소에 ‘연애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없던 사람도 기념일이 되거나 ‘마법사’, ‘건어물녀’ 같은 말을 들으면 ‘나도 연애를 해야 하나?’하고 의문이 들 것 같아요.

  사회자: 기념일에 연애하고 있지 않아서 부담을 느낀 적 있나요?

  수빈: 부담을 크게 느끼진 않았어요. 하지만 크리스마스에 솔로인 친구들이 ‘너도지?’라고 하면 왠지 기분이 씁쓸하죠.

  주영: 크리스마스는 단지 12월 25일일 뿐이고 애인이 없어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기념일에 솔로끼리 모여 놀다 보면 “아…또 우리끼리”, “애인 없는 우리끼리 모여서 뭐 하는 거지”하면서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기도 하죠.

  연애=성공한 삶?

  사회자: 연애 강요,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만들어졌을까요?

  경필: 사랑은 본능이니까요. 그러나 ‘본능이니 무조건 해야 한다’, ‘너는 왜 연애를 안 하냐’며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는 문제예요. 특히 대학생들은 ‘연애하라’는 말을 더 잦게 듣죠. 고등학교 때는 학업 때문에 여러 제약이 많았잖아요. 하지만 대학생은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연애를 많이 해보라고 권하는 것 같아요. 

  주영: 결혼은 당연히 해야 한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어서 우선 연애를 권하는 것 같아요. 실제로 어머니께서 제게 자주 그러시거든요. “누구는 예전에 연애를 그렇게 많이 하더니 결국 결혼을 잘했다”며 다수의 연애 경력 덕에 결혼을 잘하신 어머니의 친구분 이야기를 해주시죠.

  수빈: 동의해요. 연애를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나와 잘 맞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어요. 꼭 결혼할 사람을 찾는 게 아니어도 연애를 통해 배우는 점들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연애를 하라는 것 같아요.

  사회자: 결혼이나 연애를 하지 않는 사람을 왜 부정적으로 바라볼까요?

  주영: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솔로의 모습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부정적 이미지를 가진 캐릭터를 두고 ‘이것이 솔로, 모태솔로의 지름길이다’라는 생각을 심어주죠. 특히 개그 프로그램에서 솔로로 등장하는 캐릭터는 얼굴이 못생겼다고 자주 놀림 받아요. 또 성격이나 능력도 떨어지는 사람으로 폄하되죠. 

  경필: 맞아요. 옛날에는 서로 얼굴도 모르는 채 식을 올리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결혼이 필수적인 시대였어요. 자식을 낳아 대를 이어나가는 게 ‘의무’였고요. 여전히 어르신들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시죠. 그래서 결혼이나 연애를 하지 않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연애와 결혼 모두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봐요.

  사회자: 결혼이나 연애를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의 문제가 무엇일까요?

  경필: 다른 일에 집중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연애를 강요하는 게 문제죠. 어떤 사람에게는 연애보다 더 중요한 인생의 목표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주영: 자발적 의지 없이 연애할 때 감정이 상하는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진심으로 사랑해서가 아니라 분위기에 휩쓸려 연애를 하다 보면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경우가 생겨요. 오히려 소홀한 연애가 되는 거죠.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나도 연애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무심코 연애하는 건 별로예요.

  수빈: 기업이 커플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아요. 커플들은 커플링이나 커플티 같은 상품을 소비하고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등 기념일도 챙기잖아요. 기념일을 더 만들거나 커플을 겨냥한 마케팅 전략을 펼치며 연애를 조장하는 악순환이 발생하죠.

  변화의 씨앗 뿌리기

  사회자: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란 말에 동의하시나요?

  수빈: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하고 결혼하는 건 긍정적이죠. 아무리 혼자 사는 인생이라지만, 결국 저희도 부모님이 계셨기에 존재하잖아요. 하지만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연애를 강요하는 것은 문제죠. 

  경필: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꼭 결혼해서 대를 이어나갈 필요는 없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면 되죠. 연애가 아닌 다른 목표를 이루고 싶은 사람도 있잖아요. 연애가 아니라 다른 일에 시간을 투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각자의 삶이 있는 거죠.

  주영: 동감해요. 연애나 결혼은 필수가 아니에요. 연애를 꼭 해야겠다고 생각하기보다 하고 싶을 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회자: 이 분위기,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수빈: 미디어가 그리는 아름다운 모습은 달달한 연애스토리에만 국한된 것 같아요. 반면 솔로는 못생기고 능력 없는 이미지로만 그려왔죠. 솔로의 아름답고 당찬 인생도 조명해야 해요. 그런 모습을 보고 ‘저 사람 멋지다’ 하면서 자주적인 솔로의 삶을 살아보려는 사람도 생길 수 있으니까요.

  주영: 연애에 대한 가치관을 확립해야 해요.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고 본인이 준비됐을 때, 그리고 진정으로 원할 때 자발적으로 연애를 해야 해요. 연애하기 전에 책을 많이 읽고 사람도 다양하게 만나보는 거죠. 고등학교 때까지는 ‘책상 앞 경험’이 대부분이었잖아요. 직접 다양한 경험을 해보면서 대인 관계의 경험치를 쌓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경필: 연애를 강요하는 사람들에게 사회가 변했다는 점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이상 결혼이나 출산은 필수가 아니에요. 고로 연애도 필수가 아니죠. 연애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어요. 삶의 다양성이 중요한 시대라는 걸 상기시켜야 해요.

  수빈: 정체성을 찾는 일도 참 중요해요. ‘내가 진짜 뭘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하죠. 정말 연애가 하고 싶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연애를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만약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연애가 필요 없겠죠.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할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경필: 사람을 ‘솔로’나 ‘커플’이라는 단어로 구분 짓는 일을 자제해야 해요. 이런 기준으로 사람을 나누는 것 자체가 연애를 권하는 사회 분위기 형성에 일조한다고 생각해요.

  주영: 지금 우리 사회는 솔로를 공동체에서 유리된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사회자: 연애를 조장하고 솔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 분위기가 사라지고 연애뿐만 아니라 다양한 삶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상으로 좌담회를 마치겠습니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