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잘앙잘’은 작은 소리로 원망스럽게 종알종알 군소리를 자꾸 내는 모양을 뜻합니다. 이번학기 앙잘앙잘에서는 갖가지 주제를 말하는 대학생의 작은 소리를 모아 보려 합니다. 이번 주제는 ‘드라마 속 클리셰’입니다. 출생의 비밀, 재벌 2세 남자주인공과 신데렐라 여자주인공,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러브라인처럼 우리나라 드라마들은 유독 비슷한 내용과 설정이 반복되곤 하죠. 최근에는 이런 클리셰들에서 벗어나 다양한 주제를 다룬 드라마들이 호평받기도 했습니다. 요즘 대학생들은 드라마 속 반복되는 클리셰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뻔하기에 재미있는

익숙하기에 진부한 이야기

작위적인 설정은 이제 그만

개연성 있는 공감 필요해

“이 상을 이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께 드리고 싶다.” 지난해 KBS 연기대상을 수상한 배우 천호진씨의 수상소감입니다. 천호진씨는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죠. 그가 온 감정을 동원해 표현한 부성애는 시청자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희생적인 자식 사랑을 다룬 드라마, 기시감이 들지 않나요? 재벌과 서민의 사랑, 출생의 비밀 또한 모두 진부한 설정이란 생각이 들진 않았나요? ‘황금빛 내 인생’은 이러한 내용을 모두 가졌지만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은지 학생(사회복지학부 3), 정세영 학생(국제물류학과 3), 표석환 학생(경희대 통번역학전공)과 함께 뻔한 드라마의 성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사회자: 여러분은 어떤 드라마를 즐겨보셨나요?

  은지: ‘도깨비’나 ‘힘쎈여자 도봉순’을 즐겨봤어요. 판타지적 요소가 많은 드라마가 재밌거든요.

  세영: 최근에는 ‘화유기’를 재밌게 봤어요. 스토리가 특이한 드라마를 좋아해서 평소에는 추리물이나 스릴러물을 즐겨 봐요.

  석환: 예전에 ‘별에서 온 그대’를 즐겨봤어요. 다른 드라마도 가끔 챙겨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본 작품은 ‘별에서 온 그대’가 마지막이에요.

  사회자: 말씀하신 드라마를 즐겨본 이유는 무엇인가요?

  석환: 여자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가 누구인지 중요하게 봐요. ‘별에서 온 그대’도 전지현씨가 출연하기 때문에 열심히 챙겨봤죠.

  은지: 저도 남자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가 중요해요.(웃음) 하지만 판타지적 요소도 중요하게 생각해요.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 펼쳐지니까 대리 만족이 되거든요.

  세영: ‘화유기’에는 코믹 요소가 많이 등장해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즐길 수 있죠.

  흔한 이야기도 공감할 수 있다면

  사회자: 가끔 드라마를 보면 집중을 확 깨는 부분도 있죠.

  석환: 현실에선 쓰지 않을 것 같은 대사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암세포도 생명이다”라든가 “시켜줘, 금잔디 명예 소방관”처럼 오글거리는 대사들 있잖아요. 조금 오래됐지만 부메랑을 던지면서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라고 외치는 드라마도 생각나네요. 대사가 좀 더 현실적이었으면 좋겠어요. 이런 대사는 극의 흐름을 해친다고 생각하거든요. 굳이 필요한 대사도 아닌 것 같고요. 몇 년 후엔 그런 장면들이 ‘흑역사’라며 인터넷에 올라오기도 하잖아요.

  세영: 저는 운명적인 만남이나 출생의 비밀같이 드라마에서 흔히 쓰이는 뻔한 소재가 마음에 들지 않아요. 너무 자주 사용돼서 앞으로의 전개와 복선까지 예측되거든요. 고부갈등이나 내연녀 설정도 진부해요. 특히 아침드라마의 경우 이런 설정이 더 심하죠. 시어머니는 항상 센 역할로 나오고 며느리와 갈등을 빚어요. 내연녀의 뺨을 때리거나 돈 봉투를 주며 얼굴에 물을 뿌리기도 하고요. 너무 식상해요. 그런 장면들을 보면 머리가 아프고 짜증이 나기도 하죠.

  은지: 드라마에서 뻔하게 쓰이는 신데렐라 여자주인공 설정도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라고 생각해요. 현실과 괴리감이 느껴지거든요.

  사회자: 출생의 비밀이나 고부갈등처럼 진부한 설정을 다룬 작품이 많죠. 하지만 이런 드라마가 계속 인기를 얻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석환: 진부한 소재여도 시청자의 공감을 산다면 인기를 얻는 것 같아요. 배우나 작가의 역량만큼 시청자와의 공감대 형성도 중요하죠. ‘황금빛 내 인생’은 특히 어르신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잖아요. 어르신이 공감할 만한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극 중 아버지는 평범한 가장이며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으로 그려져요. 드라마 속 아버지의 모습이 현실 속 할아버지, 할머니와 많이 닮아있죠. 그래서인지 저희 할아버지께서도 꼭 챙겨보시더라고요.

  은지: 맞아요.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공감대 형성이 중요해요.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경우가 그렇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릴 적 문방구 앞에서 오락기를 한다던가, 불량식품을 사 먹은 경험이 있잖아요. 같은 시대를 살아온 시청자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얘기가 있어서 큰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해요.

  세영: 배우의 연기도 한몫하죠. 연기를 잘하고 배역과 잘 어울린다면 진부한 이야기라도 충분히 재밌다고 생각해요. 또 배우 간 시너지도 중요하죠. 최근 종영한 ‘황금빛 내 인생’도 뻔한 소재가 많이 쓰였지만 배우의 연기력과 시너지가 좋아서 성공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질투의 화신’이라는 작품도 여느 드라마들과 비슷한 러브라인이 존재해요. 방송사라는 직장에서 극이 전개된다는 점도 다른 드라마들과 비슷하고요. 하지만 배우의 연기가 좋아서 정말 흥미롭게 봤어요.  

  사랑 이야기=인기 드라마?

  사회자: 흔한 이야기더라도 배우의 연기력이나 시청자의 공감 정도에 따라 드라마의 인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네요. 반면 우리나라 드라마 대부분이 ‘사랑’에만 치중한다는 지적도 있어요. ‘법정 드라마는 법정에서 연애하고, 의학 드라마는 병원에서 연애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죠. 여러분들도 우리나라 드라마 속 사랑 얘기에 피로감을 느낀 적 있나요?

  은지: 딱히 식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오히려 사랑 얘기가 없으면 재미없을 것 같아요. 사랑은 인간의 본능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흥미로워하는 소재죠. 누구나 드라마를 보면서 주인공을 부러워하거나 드라마 속 사랑을 꿈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석환: 사랑이 없는 일상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드라마 속 러브라인이 진부하다고 느끼지 않았어요. 드라마는 일상 속 이야기를 다루잖아요. 하지만 좀 더 참신한 설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드라마에서 흔히 보이는 ‘재벌 2세 남자주인공과 가난한 여자주인공의 사랑’ 설정은 좀 진부해요.

  세영: 저는 사랑 이야기가 나오면 잘 안 보게 돼요. 주인공 앞에 펼쳐질 위기가 불 보듯 뻔하거든요. ‘쟤네 조만간 싸우겠다’, ‘잠깐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겠지’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죠. 비슷비슷한 로맨스물이 지루하게 느껴져서 보다가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도 있어요.

  사회자: 어떤 드라마를 보다 말았나요?

  세영: ‘역도요정 김복주’요. 내용은 나름 재밌었지만 뻔한 설정이었어요. 사이가 좋지 않은 남녀주인공이 나중엔 사이가 좋아질 거라는 당연한 결말이 예상됐거든요. 그래서 끝까지 보지 않았어요. 대부분 로맨스물이 그런 것 같아요.

  사회자: 최근 ‘시그널’이나 ‘미생’, ‘비밀의 숲’처럼 러브라인 없이 이야기를 전개하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는데요. 몇몇 시청자는 ‘뻔한 러브라인이 없어서 좋았다’고 하며 호평하기도 했죠.

  세영: 러브라인을 기대하는 시청자의 심리를 역이용하는 거죠. 그런 드라마는 남녀주인공이 등장하지만 러브라인이 없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비밀의 숲’이나 ‘보이스’, ‘터널’ 모두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이 이어질 것 같지만 이어지지 않죠. 그런 점이 오히려 더 재밌었어요.

  석환: 스토리가 개연성 있고 탄탄한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드라마의 기본은 치밀하게 잘 짜인 스토리잖아요. 이젠 시청자의 수준도 높아져서 개연성 없는 스토리를 보면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하며 의문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또 ‘미생’ 같은 경우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장인의 얘기를 다뤘잖아요. 스토리도 좋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 이야기다 보니 러브라인 없이도 많은 공감을 사지 않았나 생각해요.

  각본의 다음 장은

  사회자: 새로운 주제를 다룬 드라마가 최근 증가하고 있네요.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흔한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에 열광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상업성을 지나치게 추구하기도 하죠. 한국 드라마의 발전을 위해 어떤 점이 개선돼야 할까요?

  석환: 제작환경이 개선됐으면 좋겠어요. 쪽 대본, 밤샘촬영 등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환경이 매우 열악하다고 생각해요. 최근 방송사고와 촬영 스탭의 부상으로 논란을 빚은 ‘화유기’나 무리한 스케줄과 제작자와 마찰로 주연배우가 교체된 ‘리턴’만 봐도 알 수 있죠. 결국 피해는 시청자에게도 돌아와요. 저도 ‘리턴’을 재미있게 보다 배우가 바뀌면서 보지 않았어요. 몰입이 안 될 것 같았거든요. 괜히 찝찝하기도 하고요.

  은지: 드라마를 제작할 때 시청자의 간섭이 너무 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치즈인더트랩’ 방영을 앞두고 때 배우 김고은씨가 여자주인공으로 확정됐다는 발표가 났을 때 원작과 싱크로율이 안 맞는다며 말이 많았어요. 하지만 정작 김고은씨가 배역을 잘 소화해 내니 이내 비판의 말이 사라졌어요. 이런 시청 문화는 드라마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석환: 맞아요. 가끔 회차 연장을 요구하는 시청자들도 있어요. 회차 연장을 요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예정보다 회차가 늘어날수록 스토리가 늘어지고 무리수를 둔 요소나 PPL(Product Placement)도 늘어나는 것 같거든요.  

  세영: 과도한 PPL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면 좀 자연스러웠으면 좋겠죠. ‘화유기’에서 이승기씨가 제품명을 읽으며 화장품을 대놓고 홍보한 장면이 있었어요. 코믹 드라마라 웃어넘겼지만 몰입을 깨더라고요.

  석환: 저도 PPL을 위한 작위적인 설정이 드라마의 맥을 끊는 경우가 많아서 불편했어요. 하지만 열악한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 환경의 특성상 PPL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해요. 광고로 이익을 얻어야 제작이 가능할 테니까요.

  사회자: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내용의 작품을 더 보고 싶으신가요?

  석환: 저는 ‘응답하라’ 시리즈가 앞으로 계속 나왔으면 좋겠어요. 모든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에겐 추억을 다시 되돌아볼 좋은 기회인 것 같아요. 또 그 시대를 살지 않은 시청자도 신기해하면서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죠. 앞으로는 저희 세대를 다룬 시리즈가 나온다면 색다른 맛으로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은지: 저는 ‘미생’이나 ‘김과장’처럼 현실을 반영하는 드라마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의 일상을 다룬 드라마가 나온다면 많은 공감을 얻을 것 같아요.

  세영: 다양한 소재의 드라마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최근 사이비 종교를 다룬 ‘구해줘’가 호평을 받았잖아요. 참신한 주제를 가진 드라마가 계속해서 나오고 정착된다면 시청자의 시야를 넓히고 선택의 폭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 신선한 주제의 드라마가 계속 등장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많지 않잖아요. 이런 드라마도 대중화되면 좋을 것 같아요.

  은지: 판타지 설정을 적절히 반영한 드라마도 만들어져야 해요. 판타지 요소는 드라마가 가질 수 있는 하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회자: 우리나라 드라마의 발전을 위해 제작자와 시청자 모두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상으로 좌담회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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