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잘앙잘’은 작은 소리로 원망스럽게 종알종알 군소리를 자꾸 내는 모양을 뜻합니다. 이번학기 앙잘앙잘에서는 갖가지 주제를 말하는 대학생의 작은 소리를 모아 보려 합니다. 이번 주제는 ‘유행’입니다. 세계적인 색상회사 팬톤은 매년 올해의 색을 발표합니다. 기업은 팬톤에서 정한 색을 바탕으로 제품을 출시해서 유행에 민감한 소비자의 눈길을 끌죠. 올해의 색 자체가 하나의 홍보 요소가 된 겁니다. 하지만 온 세상이 ‘올해의 색’으로 물들지는 않습니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학생들은 유행을 따르는 사람, 반대로 유행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뻔한 유행템 ? 클론 ? 따라쟁이 ?

그 끝에 나만의 색 찾을 수 있어


샤기컷, 사과 머리, 뿔테 안경, 컬러 스키니진, 하이탑 운동화를 기억하시나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큰 인기를 끌었던 스타일이죠. 지금 보면 유행했다는 사실이 의아할 만큼 낯설지만 그 당시에는 너도나도 따라 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혹시 여러분도 주위 친구나 TV 속 연예인을 따라 유행 아이템을 걸쳐본 적이 있지 않나요? 한편 ‘거기서 거기’ 같다는 이유로 유행을 따라가는 사람은 개성이 없다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요. 강은정 학생(가명, 사회복지학부 2), 정예은 학생(한림대 청각학전공), 황인욱 학생(경영학부 4), 김세현씨(22)와 함께 유행에 관해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따라 하기도 피하기도
사회자: 요즘 롱패딩이 유행이에요. 이전에도 많은 유행 아이템이 스쳐 지나갔었죠. 여러분은 어떤 ‘유행템’을 착용해봤나요?


은정: 전 초등학생 때 ‘힐리스’를 신고 다녔어요. 당시에는 선풍적인 인기였죠. 1년 정도 타고나니 신지 않게 됐지만요. 한창 유행일 땐 너무 자주 타서 인대가 아플 정도였어요.


예은: 초등학교 5, 6학년 때 워싱이 많이 들어간 청바지를 산적이 있어요. 그때 이후로는 단 한번도 입지 않고 옷장에 그대로 있죠. 지금 다시 입기엔 시대를 거스르는 것 같아서 주저하게 돼요. 요즘엔 발목이 살짝 드러나는 부츠컷 청바지가 유행이라 그걸 주로 입어요. 발목이 시리긴 하지만요.(웃음)


세현: 예전에 유행 따라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고 다녔어요. 남들 다 입는데 혼자만 안 입으면 친구들 사이에서 섞이지 못하는 느낌이 들잖아요. 그 시기엔 친구 사이의 유대감이 중요하니까요.


인욱: 유명인이 쓰는 아이템을 따라 사는 사람도 있어요. 패션 자체보다 패션을 착용한 사람이 가진 이미지를 소비하는 거죠. 최근에 래퍼 ‘우원재’가 착용한 비니가 유행했잖아요. 그 모자를 쓰면 우원재처럼 ‘Swag’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힙합 뮤지션이 가진 멋과 자유분방한 분위기 말이에요. 마찬가지로 재벌 총수가 사용한 립밤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죠.


사회자: 추억의 유행 아이템이 하나둘 떠오르네요. 반대로 유행을 따르지 않은 적도 있나요?


예은: 그럼요. 요즘 SNS에 감성적인 사진을 올리는 게 유행이잖아요? SNS에 올릴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 찍기 좋은 카페를 고집하는 친구가 있어요. 전 분위기 있는 사진을 위해 비싼 카페에 가는 게 이해가 잘 안 돼요. 막상 가면 조명이나 인테리어말고는 특별한 게 없다고 느꼈거든요.


은정: 제가 바로 SNS에 올릴만한 장소를 찾아다니는 사람이에요.(웃음) 하지만 이런 저도 옷을 살 땐 디자인이나 기능이 맘에 들지 않으면 아무리 유행이라 해도 따르지 않아요. 노스페이스 패딩이 한창 유행할 때도 끝끝내 사지 않았죠. ‘내가 등산하는 사람도 아닌데 오로지 유행이라는 이유로 사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인욱: 전 여행지가 소위 말해서 ‘뜨고 나면’ 가기 꺼려지더라고요.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에 아이슬란드가 등장하고부터 아이슬란드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한동안 가고 싶은 여행지 리스트에서 아이슬란드를 삭제해야 했죠. 여행지뿐만 아니라 유명하지 않던 가수가 인기를 얻으면 예전만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해요. ‘혁오’ 밴드가 언더에서만 유명하다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대중에게 알려졌잖아요. 예전부터 혁오 밴드를 좋아하던 몇몇 사람은 상실감을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은정: 맞아요. 소수만 알던 가수가 유명해지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친구가 예전부터 좋아한 래퍼는 힙합 서바이벌에 출연하면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케이스에요. 대중에게 알려지자 친구는 유명해진 래퍼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다른 언더그라운드 가수를 찾더라고요. 좋아한 가수가 유명세를 탔다는 이유로 한순간에 취향을 바꾸는 게 이해가 잘 안 됐죠. 그 가수의 스타일과 음악이 좋아서 응원한 거잖아요.
 
  모방이 죄인가요?
사회자: 유행을 따를 때도 있지만 남과는 다른 취향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군요. 유행 아이템을 착용한 사람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고 ‘클론’이라고 부르며 유행을 조롱하는 시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세현: 획일화된 모습이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건 사실이에요. 아무리 유행이라고 해도 시중에 판매하는 옷이 그게 전부가 아닐 테니까요. 유행하는 옷을 따라 입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찾아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SNS를 보면 인테리어, 메이크업이나 옷 스타일이 너무 똑같은 것 같아서 안타깝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예은: 겉모습뿐만 아니라 기능을 생각해서 입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요즘 유행하는 롱패딩도 추위를 잘 막아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 같아요.


인욱: 아무래도 획일화에 대한 부정적인 눈초리가 있죠. SNS를 보면 기업이 마케팅의 목적으로 유행을 주도하려는 면이 있잖아요. 하루에 만명, 이만명이 방문하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에게 ‘돈을 줄 테니 제품 홍보를 해달라’는 제의가 많이 들어온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어요. 그렇지만 모방도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한 조롱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사회자: 특정 분위기를 연출하는 사람에게 ‘병’에 걸렸다고 지칭하며 모방에 거부감을 표현한 단어가 등장하기도 했어요. 특정 인물의 행동이나 스타일을 따라 하면 인물의 이름을 따 ‘○○○병’에 걸린 사람이라고 부르는 거죠.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연예인이 자주 하는 행동을 하면 그 연예인 이름을 앞에 붙여 병에 걸렸다고 하는 식이에요.


예은: 개인 취향과 행동을 병이라고 지적하는 건 옳지 않아요. 누가 되었든 개인의 선호를 함부로 비난해선 안 되죠. 오히려 ‘○○○병’과 같은 단어가 생기면서 모방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이 늘어난 것 같아요. 예전에도 연예인을 따라 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단어가 등장하게 되면서 단어에 맞춰 행동을 바라보게 된 거죠.


은정: 개인이 자유롭게 취향을 표현하기 힘든 분위기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인기 가수가 입은 보라색 저지를 살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까지 ‘○○○병이냐’고 지적하죠. 내가 하고 싶은 행동인데 주위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한다는 게 불편해요. 취향을 드러내는 데 두려움을 느낄 순 없죠.


사회자: 누구나 매력적인 대상을 닮고 싶어 해요. 그런 행동을 ‘병’이라고 지칭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네요. 여러분은 누군가를 따라 하면 그 사람과 닮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세현: 다른 사람을 따라 한다고 똑같아질 순 없죠. 그건 그 사람만의 것이니까요. 처음으로 스타일을 시도한 사람을 빼고는 그저 ‘따라 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해요.


예은: 그래도 모방이 자신의 색깔을 찾아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남을 따라 여러 가지를 시도하다 보면 어울리는 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자신에게 어울리는 화장이 고민될 때 다른 사람의 화장법을 보면서 얼굴에 맞는 색을 찾게 되는 것처럼요.
 
  각자의 색이 중요하다
사회자: 반대로 대중적인 취향보단 비주류 취향을 가진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이들 또한 주위의 시선에서 마냥 자유롭진 않은데요. 남과 다른 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시선으로 보거나 ‘겉멋 든 사람’, ‘허세가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은 특이한 스타일을 가진 사람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세현: 저는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사람이 대단하게 느껴져요. 스타일은 한순간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상대방이 좋게 보든 나쁘게 보든 본인만의 스타일을 스스로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인 것 같아요.


예은: 맞아요. 주변 시선이 신경 쓰일 법한데 자신의 주장이나 가치관이 확실한 친구를 보면 용감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요. 저는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편이거든요. 친구는 코트도 흔한 색이 아니라 핫핑크색 같이 눈에 띄는 색깔의 코트를 즐겨 입어요. 혼자 놀이공원이나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도 전혀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요.


은정: 한편으로는 마이너 문화를 즐기는 사람도 대중적인 취향을 가진 사람을 존중했으면 좋겠어요. 마이너 문화만이 진정한 문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유행을 따라가는 사람을 ‘너무 대중적인 것만 좋아한다’ 혹은 ‘취향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인디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가 제게 ‘음원 순위 TOP100만 들으니 이런 음악을 모르지…’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각자 좋아하는 음악은 다를 수 있는데 본인의 취향이 더 세련됐다고 말하는 것 같아 당황스러웠죠. 유행을 따르든 따르지 않든 취향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자: 우리는 유행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인욱: 유행을 따르는 현상은 지금까지 있어왔고 앞으로도 새로운 유행이 돌고 돌 거예요. 다만 억지로 유행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유행이 정말 좋아서 따라갔으면 해요. 내가 남들과 똑같이 하지 않으면 모난 돌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돼서 따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거든요.


예은: 맞아요. 다름을 존중해야 해요. 다른 취향에 거부감을 드러내기보다 ‘나랑 다를 뿐이다’라는 생각을 가지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사회자: 자신이 생각하는 매력은 각자 다르지 않나요? 누구를 따라 하든 새로운 모습을 창조하든 저마다의 아름다운 모습이 있어요. 어떤 잣대보다도 각자가 생각하는 매력을 존중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네요. 그럼 이만 좌담회를 마치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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