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홧김비용’, ‘탕진잼’ 등의 소비 신조어들을 들어보셨나요? 홧김비용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쓰지 않았을 비용을, 탕진잼은 소소하게 탕진하는 재미를 뜻한다고 합니다. 현대인들의 소비문화가 반영된 이 신조어들은 무계획적인 소비, 과소비 등을 의미하죠. 경제학에 따르면 인간은 합리성을 추구한다고 하는데, 그간의 소비들이 과연 합리적이었는지 돌이켜봤을 때 떳떳한 사람들은 많이 없을 것 같네요.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소비생활을 하는 걸까요? 이번주에는 『넛지』로 잘 알려진 행동경제학을 알아봤어요. 자 그럼, 함께 끄덕일 준비 되셨나요? 

콕! 찔러 유도한 선택

행동경제학으로 설계하다 

지난달 9일 『넛지』(리더스북스 펴냄)의 공저자 리처드 탈러(Richard H.Thaler) 교수가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노벨위원회에 따르면 탈러 교수는 행동경제학적 접근으로 현실의 심리 가정을 경제학적 의사결정 분석의 대상으로 통합하는 데 기여했다. 그의 수상 소식과 함께 행동경제학에 관심이 쏟아졌고 『넛지』는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행동경제학은 무엇일까. 지난 25일 ‘넛지, 그리고 행동경제학을 말하다’를 주제로 한 강연에 참석했다.

 

  합리성의 신화를 넘어

  경제학의 대전제는 ‘합리적 인간’이다. 인간은 효율을 좇는 합리적인 기대를 가진다는 것을 전제로 모든 가설을 세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허버트 사이먼(Herbert Alexander Simon)은 인간은 완벽하게 합리적일 수 없다는 ‘제한된 합리성’ 개념을 제창했다. 인간에겐 소비를 위한 모든 정보를 알 능력도 온전하게 이익을 계산할 능력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을 할까? 이를 연구하는 경제학의 한 분야가 ‘행동경제학’이다. 인간의 실제 행동을 심리학, 사회학 등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로 인한 결과를 규명하는 것이다. 경제주체들의 제한된 합리성과 감정적 영역의 선택에서 규칙을 발견한다.

  행동경제학은 개인의 선택에 이익의 가치가 아닌 다른 영향이 있다는 생각에서부터 시작된다. 18세기 수학자 베르누이(Daniel bernoulli)는 돈의 가치가 아닌 소비의 결과에서 느낀 심리적 가치가 만족도를 결정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를 이론화한 것이 소비량이 늘수록 만족감이 적어진다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과 선택의 결과가 불확실할 때 불확실한 결과가 예상될 때 기대효용이 가장 높은 것을 선택한다는 ‘기대효용의 법칙’이다.

  이 법칙들은 약 2세기 동안 주류 경제학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en)은 베르누이가 간과한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베르누이 이론의 모든 전제는 동일한 자산을 가진 사람은 동일한 효용을 가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가뭄 속에 얻는 물 한잔의 효용과 정수기를 옆에 두고 마시는 물 한잔의 효용은 분명히 다르다. 그렇다면 기대효용에 따른 결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베르누이는 기준점으로부터의 변화된 효용을 간과한 것이다.

  대니얼 카너먼은 1979년 이를 보완해 ‘전망이론’을 고안했다. 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였던 그는 전망이론을 체계화하고 행동경제학의 주요 개념을 집대성해 현대 행동경제학의 토대를 만든다. 그의 노력으로 심리학자로서는 처음으로 201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린다.

착각의 즐거움

  카너먼의 전망이론은 기준점에 따라 변화되는 효용 가치를 기준으로 사람들의 선호도가 달라진다는 이론이다. 이는 단순히 동일한 효용만을 기준으로 삼던 기존의 이론과 차이를 가진다. 카너먼은 ‘가치함수’(<그림1> 참조)를 통해 인간이 선택에 앞서 보이는 세 가지 특성을 발견했다.

  먼저 ‘준거점 의존성’은 가치를 기준점으로부터의 변화 정도를 비교해 측정하는 특성이다. 같은 효용을 얻더라도 기존의 가지고 있던 효용에 비교해서 그 효용의 가치가 서로 다를 수 있다. ‘민감도 체감성’은 가로축의 변화량이 커질수록 세로축의 기울기가 완만해지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손실 또는 이득의 변화가 커질수록 가치 변화에 민감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이때 이득 쪽으로의 기울기보다 손실 쪽으로의 기울기가 더 가파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같은 양의 손실과 이득을 보더라도 인간은 손실을 더 크게 체감하게 된다. 대개 이익이 손실보다 2.0~2.5배 정도 커야만 손실의 상쇄가 가능하다. 그래서 선택의 상황에서도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향을 좇는데 이를 ‘손실 회피성’이라고 한다. 

  손실 회피성은 행동경제학의 주요 개념으로 활용된다. 특히 홍보 차원에서 소비자의 손실회피성을 자극하는 광고를 제작하곤 한다. 이 제품이 없을 때 일어나는 상황을 보여주는 플롯을 가진 모든 광고가 이에 해당한다. 또한 손실 회피성이 강한 인간에게서 ‘현상유지편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과한 손실을 피하고자 되도록 현재 상태가 유지되기를 선호하는 성질이다.

  행동경제학의 또 다른 주요 개념은 ‘프레이밍 효과’다. 프레이밍 효과는 문제의 표현 방식에 따라 동일한 사건이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판단이나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현상을 일컫는다.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프레이밍 실험 결과를 살펴보자. 의사들에게 ‘생존율 90%의 수술을 하겠냐’고 물었을 때 84%의 의사들은 수술을 결정했다. 반면 ‘사망률 10%의 수술을 하겠냐’고 묻자 50%의 의사들이 수술이 아닌 대안적 치료를 결정했다. 그 분야의 전문가임에도 동일한 결과를 가지는 수술을 대하는 선택이 달라졌다. ‘생존율’과 ‘사망률’이라는 서로 다른 인식의 틀을 줬기 때문이다. 

  한편 리처드 탈러 교수는 프레이밍 효과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 행동 패턴을 분석했다. 같은 결과라도 하더라도 그 결과에 따르는 이득 또는 손실을 어떻게 머릿속에서 규정하는지에 따라 결과로부터 느끼는 가치를 다르게 여긴다는 ‘심적 회계’ 이론이다.

  심적 회계는 돈에 이름표를 붙이는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같은 소비를 하더라도 이를 손실로 생각하는지 비용으로 생각하는지는 큰 차이가 있다. <그림 2>에서의 두 다트 게임 중 대부분 사람들은 B 다트 게임을 선택한다. A 게임에서의 5000원은 손실로, B 게임에서의 참가비 5000원은 비용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소비의 양을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따라서도 선택의 변화가 생긴다. 가령 평소에는 부담스러워했던 인테리어 소품 구매를 집을 사는 큰 지출을 한 후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돈으로 규정해 소비를 망설이지 않는다. 

  전망이론, 프레이밍 효과, 심적 회계 등의 이론을 활용하면 상대로부터 원했던 선택을 끌어 낼 수 있다. 가령 심적 회계를 기반으로 판매하고자 하는 상품을 이와 유사하지만 더 비싼 제품 옆에 배치해 소비자로 하여금 판매하고자 하는 상품을 선택하는 것 등이 있다. 이처럼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선택을 관찰한 이론을 바탕으로 상대의 선택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사용된다. 이를 ‘선택 설계’라고 하는데 프레이밍 효과를 이용해 상대가 특정 인식을 하게 만드는 것 등이 해당한다. 

  리처드 탈러 교수는 『넛지』를 통해 선택 설계를 기반으로 사람들에게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방법을 소개한다. 넛지는 본래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를 활용해 강압하지 않고 부드러운 개입으로 사람들의 선택을 유도하는 것을 ‘넛지 효과’라고 정의했다. 

  사회적으로 활용되는 넛지의 예로는 남성의 소변기에 작은 파리 그림을 그려 넣어 깨끗한 화장실을 유지한 공항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또한 무단횡단을 방지하기 위해 신호등의 빨간불에 있는 픽토그램을 춤추게 만들기도 한다. 기다리는 사람은 픽토그램을 구경하며 즐거워하고 결국 무단횡단이 아닌 기다리기를 선택한다. 

  누군가를 강요는 괜한 반항심을 부추기기도 하고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행동경제학은 선택 설계로 선택을 따르는 이도, 선택을 기대하는 이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이끌어낸다. 합리적 인간만이 아닌 인간 모두를 위한 고민의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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