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 교수가 '대학기업화와 폐허의 한국대학'을 발제하고 있다.   
                                                                        사진 이찬규 기자

 

자본독재 시장에 잠식된 대학

대학 민주주의에 운명을 고하다

부정비리와 유명무실한 경영 구조

거버넌스 개혁으로 해결해야

 

지난 23일 310관(100주년기념관 및 경영경제관)에서 ‘사립대학 적폐청산을 위한 대토론회(토론회)’가 개최됐다. 토론회는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사교련)가 주최, 중앙대 교수협의회(교협)이 주관했으며 중앙대 외 8개 사립대학의 교수회·교협·교수평의회(교평)와 사교련 자문변호사가 참여했다.

  개회사를 맡은 사교련 박순준 이사장(동의대 사학과)은 사립대 적폐청산과 대학 거버넌스 확립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토론회의 포문을 열었다. 사교련은 이번 토론회를 통해 사립대 법인의 대학 운영상 부정비리 사례를 수집하고 이를 취합해 교육부에 새로운 대학의 청사진을 제안할 예정이다.

  뒤를 이어 사립대 부정비리 및 적폐의 원인과 현상, 그리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롤 모델을 제시하는 주제 발제가 이뤄졌다. 첫 순서로 나선 중앙대 김누리 교수(독일어문학전공)는 현재 사립대가 처한 문제의 원인을 ‘자본독재 시장’에서 찾았다. 그는 “현재 사립대는 대학의 기업화를 넘어 자본독재 시장에 완전히 잠식됐다”며 “그 결과 대학 운영 과정에 기업의 수직적 운영 방식이 도입됐고 그로 인해 대학 민주주의의 소멸뿐만 아니라 재정 비리, 평가 조작 등 대학에선 있을 수 없는 부정이 일어나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15년 대학과 시장을 연계한 ‘산학협력단’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대학 내에 부정 비리가 늘어났다. 호서대 구경완 교협공동회장(국방과학기술학과)은 “대학에 수직적인 기업 지배구조가 들어서고 이사회의 권한이 확대됐다”며 “그 결과 대학 재정 운용의 민주성과 투명성이 소거됐고 이를 걸러줄 감사 규정도 누락돼 있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이화여대 이선희 교평회장(경영학부·의학부)은 이화여대를 예로 들며 대학의 민주화를 위한 단기적인 방법 중 하나로 총장직선제를 언급했다. 그는 “이화여대의 경우 교평과 학생, 직원, 동창으로 구성된 4자협의체의 논의를 통해 법인의 선거 반영 비율을 낮추고 그를 각 구성원에게 배분했다”며 “그 결과 총장 후보자는 법인이 아닌 대학구성원과의 소통에 더욱 집중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선희 교평회장은 총장직선제가 반드시 대학의 민주화와 직결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선희 교평회장은 “대학 시스템은 법인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며 “대학 자체의 구조 개혁과 동시에 법인을 꾸준히 개혁해나가야 한다”고 충고했다. 뿐만 아니라 각 대학의 특성에 맞춰 민주화를 진척시키기 위해선 구성원과의 의견 공유가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주제 발제 이후엔 각 사립대의 부정비리 사례를 나누는 지정 및 종합 토론이 이어졌다. 지정토론자들은 입을 모아 사립대의 재정 비리를 규탄했다. 대전대 최찬수 교협공동회장(응용화학과)은 “건물 임대나 교비 운용으로 얻은 수익을 법인이 독식하고 있다”며 “수의계약, 횡령 등 범죄 행위도 거리낌 없이 자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토론자들은 이러한 부정의 원인 중 하나로 실속 없는 평의원회의 권한을 꼽았다. 현재 대학 경영 주체는 총장을 비롯한 대학본부, 이사회 그리고 그들을 견제하는 평의원회다. 「사립학교법」은 평의원회의 역할을 보장하기 위해 평의원회의 개방이사 추천과 이사회의 개방이사 선임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사회는 개방이사 추천을 ‘거부’할 수 있다. 김광산 사교련 자문변호사는 “개방이사 추천과 선임은 의무지만 이사 선임은 이사회 권한이므로 현재의 개방이사제는 유명무실하다”며 “실제로 개방이사 없이 정이사로만 이사회가 꾸려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사립대 법인의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선 대학 거버넌스 개혁을 위한 교육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개진됐다. 수원대 교협 손병돈 부대표(정보미디어학과)는 “소송을 제기하고 감사를 요청해도 제대로 된 처벌을 기대하긴 어려웠다”며 교육부가 엄격한 기준으로 감사에 임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동국대 교협 한만수 전 회장(국어국문학과)은 엄중한 감독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개선책 역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사회는 유인책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며 “교육부가 스스로 거버넌스 구조를 확립한 대학에게 재정지원사업 가산점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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