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내가 담당하는 학과 학생회장들과 부서 팀장님께 연락한 지 벌써 한학기째다. 연락 받는 분들은 ‘안녕하세요. 중대신문 이주리 기자입니다’라고 시작하는 멘트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을 거다. 중대신문은 월요일마다 부장단을 제외한 모든 기자가 취재처를 돈다. 기자들은 인권센터, 입학처, 심지어 시설관리팀까지 거의 모든 부서와 연락하며 소식을 묻는다. 기자들이 모은 소식을 바탕으로 한주 신문의 보도 면을 채워나간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어느 월요일이었다. 한 학과의 소식을 듣기 위해 학생회장과 연락하는 중이었다.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소식이 중대신문에 어떤 식으로 쓰이나요?” 늘 질문하는 쪽은 나였고 그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해주던 학생회장이 질문했다. 물음을 받고 처음 든 감정은 당황이었다.

  그 다음 든 생각은 회의감이었다. 혹여나 취재처와 연락이 끊길까 전전긍긍하며 말 한마디, 첫 인사 문구를 고민하는 나였다. 하지만 틈틈이 전화를 돌려서 전달받은 소식을 취재보고서에 올려도 기사화되는 일은 드물다. 질문한 학생회장이 매번 전해주는 소식 역시 한 번도 신문에 실리지 않았다. 고민 끝에 답변을 써 내려갔다. 학과 소식 혹은 사건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장문의 글을 전했다. 학생회장께서 늘 친절하게 답변해주지만 신문에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아 답답한 마음을 이해한다며 사과도 덧붙였다.

  충분한 답변이 됐을 것으로 생각한 내 생각은 오산이었다. “중대신문이 관심있는 행사의 조건을 알려주시면 인력 낭비, 시간 낭비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요? 쓸모없는 일에 고생하시는 것 같아서요.” 학생회장은 신문에 실리지 않는 소규모 학과 행사와 세세한 소식을 묻는 기자에게 원론적인 물음을 제기했다.

  우선 중대신문이 원하는 어떤 ‘조건’의 소식은 없다. 신문 지면을 구상할 때 회의를 통해 중요도를 따지고 기사화할 소식과 그렇지 않은 소식을 구분하지만 중대신문은 모든 소식을 중요하고 소중하게 여긴다. 각 학과와 부서에 존재하는 다양한 소식과 사건을 많이 알수록 그들을 이해하고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학보사는 기성 언론과 다른 위치에 있다. 학보사는 학과나 부서와 마찬가지로 대학을 이루는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이 추가된다. 구성원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과정은 소식의 중요도를 떠나 일련의 소통 과정이다. 소통은 중대신문의 의무이자 역할이다.

  “조건을 섣부르게 제시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학과와 소통하는 것은 소중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중대신문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답변을 끝으로 연락은 마무리됐다. 질문한 학생회장에게 보내는 답장인 동시에 취재처 모두에게 전하는 마음이었다.

  신문발행을 위한 두 번의 월요일이 남았다. 취재처에 연락해 답변을 듣고 취재보고서에 작성하는 하루는 뻔할 게 분명하다. 그러나 전화기를 드는 내 모습은 이전과는 다를 것이다. 정든 취재처와 연락이 마무리돼가는 한 학기의 끝에서 심심한 회포를 풀어본다.

 

이주리

기획부 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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