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셰는 자주 반복돼 습관처럼 쓰이는 설정을 말합니다. 자주 쓰였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으로 당연시됐다는 것을 뜻하겠죠. 이번 학기 문화부는 클리셰를 들여다보고 그 의미들을 파헤쳐 보려 합니다. 이번 주 클리셰는 바로‘여성괴물’입니다. 여러분은 '귀신'이란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전설의 고향의 구미호부터, 머리를 풀어헤친 처녀 귀신까지. 수많은 여성 귀신들의 이미지가 떠오르실 텐데요. 왜 '보통의 인간'은 남성으로 상상되는 반면 '보통의 귀신'은 모두 '여성'으로 상상될까요? 우리 공포영화에는 여성 귀신만이 등장하는 걸까요?

 

위 장면은 영화 "폰"의 한 장면으로, 괴기스럽게 묘사된 여성귀신 '진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한이 서린 표정으로 노려보는 여성의 모습은 한국 공포영화에서 재현되는 귀신의 전형이다.
위 장면은 영화 "폰"의 한 장면으로, 괴기스럽게 묘사된 여성귀신 '진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한이 서린 표정으로 노려보는 여성의 모습은 한국 공포영화에서 재현되는 귀신의 전형이다.

 

한국 영화 속 사라진 여성들은

귀신이 돼서 나타났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이 속담은 ‘여성’이란 존재에 대해 사회가 갖고 있는 공포감을 잘 드러내준다. 이러한 공포감은 여성이 한을 품고 죽어서 된 존재, ‘여귀’로 그대로 이어진다. 한국 공포영화에서 공포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은 대부분 여성 귀신이다. 공포영화에서 여성은 어떻게 드러나고 있으며, 여귀의 서사는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영화 <여고괴담>과 <폰>, <하얀 방>을 통해서 분석해봤다.

 

  남성과 여귀뿐인 국내영화

  벡델 테스트. 1985년 미국의 여성 만화가 엘리슨 벡델이 남성 중심 영화가 얼마나 많은지 계량하기 위해 고안한 영화 성 평등 테스트다. 정말 최소한의 성 평등을 이룩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척도인 만큼 테스트의 기준은 굉장히 간단하다.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두 명 이상 등장하고 ▲이들이 서로 대화하며 ▲그 대화 내용이 남성과 관련되지 않으면 통과다. 하지만 국내 영화계에선 이 간단한 기준조차 ‘통과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국내영화는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2016년에 100만 관객 이상이 관람한 국내 영화 총 23편 중 단 7편만이 테스트를 통과했다. 그나마도 24편 중 2편의 영화만이 통과했었던 2015년도와 비교하면 나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것이었다. 국내영화의 대다수는 남성 중심 서사를 가지고 있었고, 영화 속에서 여성은 독립된 주체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영화계 풍조와 달리 유독 여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장르가 있다. 바로 공포영화다. 역대 국내 공포영화 중 100만 관객 이상 관람하고, 비현실적인 존재가 등장하는 영화 12개를 분석한 결과 12개 모두 다 여성이 비현실적인 존재로서 등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여성이 사라진 타 장르와 달리, 공포영화에서는 여성만이 존재했다. ‘귀신’으로 말이다.

  서곡숙 영화평론가는 공포영화 속에서 여성 귀신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억압했던 대상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발현이라고 설명했다. “공포영화는 귀신이나 괴물을 통해  사회가 가히 드러내지 못했던 무의식 등을 표출하죠. 한국 같은 경우 여성에 대한 억압이 심했고, 억압받은 여성들이 귀신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무의식 중에 항상 내재돼 있었습니다. 이게 공포영화로 표현된 것이죠.”

 

  귀신은 억압을 말한다

  공포영화 속 귀신은 ‘한’을 풀기 위해 움직인다. 그 한은 그들이 생전에 받았던 억압과 관련 있다. 귀신의 한은 사회에서 그들에게 가하는 억압 그 자체를 나타낸다. 이는 영화 <여고괴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여고괴담>은 교사 때문에 자살하고 귀신으로 돌아온 학생을 통해서 한국의 잘못된 교육체제를 조명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두 교사는 ‘늙은 여우’와 ‘미친개’로 불린다. 이들은 별명에 걸맞은 악질로 묘사된다. 교사들은 어떤 학생은 집안 배경이 좋다는 이유로 총애하고, 어떤 학생은 무당의 딸이라는 이유로 멸시한다. 게다가 학생들에게 공부만을 강조할 뿐 그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다. 교사와 학생이란 권력관계 속 학생은 막말과 무차별적인 구타도 참아내야 하는 철저한 ‘을’이었다. 남성 교사의 성희롱은 더더욱 ‘을’이 됐던 여성의 위치를 드러낸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사의 괴롭힘때문에 자살한  학생이 귀신으로 돌아오는 서사는 그 자체로 입시 위주 교육의 허상과 교육계의 현실을 고발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황미요조 평론가는 공포영화는 보이지 않았던 ‘억압’을 가시화하는 기능을 한다고 설명했다.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억압받았던 것에 대한 한을 지배적인 주체들에게 공포로 풀어냈다고 볼 수 있죠. 비현실적인 귀신의 형태로 등장해 무엇이 억압되고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사회문제를 환기하고 비판하는 거예요.” 공포영화는 비가시적인 사회의 문제점을 대중에게 보여줌으로써 이를 확실하게 인식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억압받아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수많은 문제들은 여성 귀신을 통해 화면으로 나올 수 있게 됐다.

 

  억압받은 자들이 가하는 억압

  하지만 공포영화는 억압된 것을 가시화하는 동시에 약자들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도 했다. 영화 <폰>에서 불임인 ‘호정’은 아이를 갖기 위해 친구인 ‘지원’의 난자를 기증받는다. 호정은 가부장제의 허상에 사로잡혀 어떻게든 화목한 가부장제 가족 구도를 이뤄내고자 한다. 하지만 겨우 이뤄낸 화목한 가족은 남편인 ‘창훈’과 원조교제를 하는 ‘진희’에 의해 위협받는다. 호정은 딸 ‘영주’에게 화목한 가정을 주고 싶다는 이유로 진희를 살해해 벽 뒤에 숨겨버리기까지 하는 모성을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호정의 모성은 서사 상 ‘진짜’ 모성이 아닌 것으로 묘사된다. 생물학적인 어머니, 지원이 있기 때문이다. 지원은 호정에게 “영주는 내 딸이기도 해”라고 말한다. 이밖에도 지원은 영주를 목욕시키거나 업어서 재우는 등 호정보다 영주와 더 잦은 신체접촉을 한다. 호정보단 지원이 오히려 ‘일반적인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처럼 묘사되는 것이다. 결국 호정이 죽고 지원만이 살아남아 영주를 기르게 된다는 영화의 결말은 생물학적 어머니야말로 ‘진짜 어머니’라 강변하는 듯하다. 가부장제의 허상을 고발하는 듯하던 <폰>은 결국 가부장제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영화 <하얀 방>에서도 드러난다. 영화 <하얀 방>에서는 애인의 폭행 때문에 배 속의 아이를 사산한 화가 ‘유실’이 귀신이 된다. 하지만 여기서 유실이 복수하는 대상은 자신의 아이를 사산하게 만든 애인이 아니었다. 귀신이 된 유실은 낙태를 결심한 여성들을 그녀가 아이를 사산한 병원으로 끌어온 뒤 죽음에 이르도록 저주했다. “너무 무서워서 내 안에 있는 아이를 잊고 있었어요. 난 진정한 여자가 될 자격이 없나봐요.” 이런 그녀의 저주는 생명을 뱃속에서 지웠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깨닫고 나서야 풀린다. 결국 ‘낙태는 나쁜 것’이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있던 것이다.

  손희정 페미니스트 비평가는 공포영화엔 ‘공포’로서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모든 공포영화가 ‘억압된 것의 귀환’으로 설명되진 않습니다. 억압하기 위한 이데올로기가 가시화됨으로써 오히려 공포를 전달하는 경우도 있죠. 그 예로 80년대 미국에서 유행했던 슬래셔 무비에는 불건전한 10대를 처벌하는 미치광이 살인마들이 등장했습니다. 살인마들은 80년대 미국에서 나타났던 성 보수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죠.”

  공포영화는 그저 여성 귀신의 흉측한 모습과 저주와 같은 요인만이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수많은 이데올로기를 통해 우리에게 불안과 공포를 전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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