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잘앙잘’은 작은 소리로 원망스럽게 종알종알 군소리를 자꾸 내는 모양을 뜻합니다. 이번학기 앙잘앙잘에서는 갖가지 주제를 말하는 대학생의 작은 소리를 모아 보려 합니다. 이번 주제는 ‘소비’입니다. 소비는 우리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치는 돈으로 환산되고 이를 누리려면 돈을 지불해야하니까요. 하지만 돈이 오가는 문제인 만큼 소비 생활을 쉽사리 터놓긴 어려운데요. 대학생들은 어떤 소비 생활을 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소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텅 빈 마음을 끌어당기는 소비 마케팅
액수가 행복을 결정하지 않아
 

  대학생이 된 우리 앞에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경험하고 싶은 것도, 가지고 싶은 것도 많아졌죠. 경험하고, 얻기 위해 우리는 ‘소비’해야 합니다. 대학 생활은 새로운 소비를 시작하고 배우는 단계이기도 한데요. 대신 미래의 지출에 대비하기 위해 소비를 참는 법도 배워야 하죠. 그래서 어떤 이는 지출이 필요한 때를 미리 계획하고 남은 돈을 저축합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요. 반대로 바로 지금의 즐거움을 만끽하고자 즉흥적으로 돈을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혜미 학생(문헌정보학과 2), 배지우 학생(가명, 이화여대 경영학부), 이준 학생(정치국제학과 1)과 함께 소비에 대한 갖가지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아끼거나 아낌없이 쓰거나
사회자: 돈을 주로 어디에 사용하나요?

혜미: 데이트하거나 친구와 밥 먹고 카페 갈 때 주로 돈을 써요. 미리 계획해서 필요한 곳에만 소비하고 나머지는 저축하죠. 마음껏 돈을 쓰지 못하는 편이에요. 용돈을 안 받는 대신 아르바이트 월급으로만 생활하거든요.

사회자: 돈을 아껴 쓰는 이유가 있나요?

혜미: 돈이 부족한 경우가 생길 수 있잖아요. 한번은 여행 가려고 모은 적금을 생활비에 보태 쓰다가 거의 다 써버린 적이 있어요. 다달이 적금을 들고 있지만 생활비가 부족해서 적금을 거르는 달도 생기고요. 그래서 사고 싶은 물건이 생겨도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소소한 금액이더라도 저축된 돈을 보면 보람이 생기잖아요.

지우: 저도 미래를 생각하면서 돈을 아끼는 편이에요. 용돈을 받으면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는데 생활비는 용돈으로만 해결하려고 해요.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저축하고요. 돈이 부족하면 가끔씩 저축된 돈을 꺼내 쓰기도 하지만요. ‘이만큼 아껴서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겠어, 그냥 쓰자’고 생각하면서요.(웃음) 그래도 미래에 돈 쓸 일을 생각하면서 아끼고 있어요.

준: 저는 계획 없이 쓰는 편이에요. 친구와 술을 마신다거나 간식 사 먹고 옷 사는 데 돈을 많이 쓰죠. 용돈만으로 생활하기엔 부족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월급도 금방 써버렸어요. 방학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한 달 동안 100만원 정도를 벌었는데 2주가 채 지나지 않아 40만원 밖에 남아 있지 않더라고요.

지우: 저도 1학년 때는 특히 술값 때문에 돈이 부족했어요. 부모님께 돈이 없다며 찡찡댔죠. 그걸 보시고는 아버지가 100만원을 입금해주셨어요.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쓰다 보니 100만원도 금방 사라져버렸죠. 큰돈을 헛되게 쓴 것 같아서 후회되더라고요. 그때부턴 돈을 아껴 쓰는 생활을 하고 있어요. 저축해서 정말 가고 싶은 여행을 가거나 교환학생처럼 지금만 해볼 수 있는 경험을 해보려고요.

사회자: 소비가 후회로 남을 때도 있군요. 즉흥적인 소비 덕분에 기분 좋아진 적은 없었나요?

준: 친구와 함께 하는 식사와 술 한잔은 기분전환에 도움이 되죠. 제가 좋아하는 인터넷 게임이 세일하고 있을 땐 유혹을 뿌리치기도 쉽지 않고요. 하지만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서 즐거움과 후회가 교차하는 것 같아요.

지우: 기분전환을 위한 소비도 필요해요. 삶의 낙이 될 수 있으니까요. 100만원을 금방 써버린 이후로 아껴 쓰고는 있지만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고정 지출은 여전해요. 음악 무제한 감상권과 영화 관람은 포기할 수 없죠. 스트레스를 받아서 홧김에 소비하는 ‘홧김 비용’도 틈틈이 나가고요. 평소엔 가성비가 좋은 커피를 찾다가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비싼 카페에 찾아가요. 매운 음식을 사 먹기도 하고요. 저를 위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죠.

혜미: 생활비를 아르바이트로 마련하는지, 용돈으로 충당하는지에 따라서도 소비 방식에 차이가 생기는 것 같아요. 주위를 보면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친구들이 저축을 많이 하는 편이더라고요.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인데 금방 사라져버리면 허무하잖아요. 저도 사고 싶은 물건을 보면 ‘저건 내 몇 시간짜리 시급과 맞먹어’라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사회를 반영한 소비 풍속도
사회자: 최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김생민의 영수증>이란 프로그램을 아시나요? ‘저축요정’으로 유명한 개그맨 김생민 씨가 의뢰인의 영수증을 보면서 사소하게 새어 나가는 지출을 진단해주죠. 상상을 초월한 저축 방식으로 많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어요.

준: 저라면 김생민 씨가 말하는 절약 생활은 하기 힘들 것 같아요.(웃음) 로션에 물을 섞어 보습제로 사용한다거나 ‘옷은 기본이 22년이다’, ‘음악은 1분 미리듣기로 충분하다’, ‘커피를 굳이 사서 마시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등 돈을 극단적으로 아껴 쓰잖아요. 가끔은 자신을 위한 소비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혜미: 프로그램에 나온 몇몇 조언처럼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아끼는 건 지양해야 할 것 같아요. 불편함을 느껴가며 돈을 아끼는 게 과연 행복을 위한 길인지 의심이 들었거든요. 차라리 돈을 조금 더 써서 편리해 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적은 돈도 아끼는 자세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같은 대학생은 천원, 이천원 같은 작은 지출이 모여 통장 잔액이 0원이 돼버리잖아요.

지우: 저도 그렇게는 못 살 것 같아요. 하지만 돈을 아끼는 것 때문에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타인과의 관계에서마저 소비를 과하게 줄이면 관계가 흐트러질 수 있잖아요. 김생민 씨는 돈을 아껴서 아내에게 통 큰 선물을 하는 걸로 유명하죠. 소중한 사람에겐 소비할 줄 아는 모습 때문에 김생민 씨의 프로그램이 각광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회자: 반대로 미래를 대비하기보다 현재를 즐기는 소비 방식도 유행하고 있어요. 요즘 트렌드로 떠오른 ‘YOLO(욜로)’처럼요. ‘You Only Live Once’의 줄임말로 인생은 한 번뿐이니 후회 없이 지금 하고 싶은 걸 하자는 의미죠. 왜 이런 소비가 유행하게 됐을까요?

지우: 돈을 아껴도 미래가 불확실해졌기 때문이에요. 차라리 지금의 행복에 충실한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특히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지면서 저축을 위한 목표가 사라졌죠. 내 집 마련을 위해서 한 푼 두 푼 저축해왔는데 서울뿐만 아니라 서울 근교에 집을 사기조차 어려워졌잖아요.

혜미: 힘든 현실을 소비로써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가 반영된 것 같아요. 요즘 사람들은 다른 즐거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일하잖아요. 하지만 일에서 성취감을 느끼기는 힘들죠. 그래서 고생하면서 번 돈을 나에게 소비하며 당장의 행복을 찾는 것 같아요.

준: 돈은 중요하기 때문에 한 번 쓸 때조차 조심하게 돼요. 하지만 아끼는 생활만 반복하면 피곤해질 수 있어요. 그럴 땐 소비가 주는 일탈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죠. 수험생이 주말에 잠깐 영화를 보고 나면 평일에 힘낼 수 있는 것처럼요.

사회자: 현재에만 충실한 소비 방식이 위험하다고 생각해본 적도 있나요?

지우: 그럼요. 한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욜로’를 다룬 적이 있어요. 출연자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원하는 만큼 돈을 쓰는 게임을 했죠. 누적 금액이 한도를 초과하는 순간에 마지막으로 돈을 쓴 출연자가 금액을 전부 부담하는 게 원칙이었어요. 출연자 중엔 말도 안 되게 비싸고 불필요한 물건을 사는 사람도 있었죠. 얼마를 써야 되는지도 알 수 없고 자기만 안 걸리면 되니까요. 재미를 위한 행동이었겠지만 현실에도 충분히 있을법한 이야기예요. 자신의 능력 밖에서 소비하면서 미래와 주변에 벌어질 결과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분명 있을 테니까요.

혜미: 자신이 만족한다면 현재의 즐거움에 충실한 소비도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지나친 사치가 아니라면 소비를 통해 행복감을 느낄 수 있잖아요. 자신이 가진 돈의 범위 안에서 쓸 수밖에 없고요. 개인의 자유로운 소비 방식이기 때문에 타인이 판단 내릴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아요.
 
  결국 중요한 건 우리의 즐거움
사회자: 지금까지 다양한 소비방식을 이야기해봤어요. 여러분은 앞으로 어떻게 돈을 쓸 계획이신가요?

혜미: 지금과 같이 데이트나 친구를 만나면서 생기는 비용은 아끼지 않을 거예요. 대신 저 혼자 쓰는 데 필요한 소비는 아끼려고 노력할 것 같아요. 3학년이 끝나고 친구와 오랫동안 유럽여행을 가기로 약속했거든요.

지우: 지금은 교환학생으로 외국 갈 준비를 하고 있어서 아껴 쓰고 있어요. 가지고 있는 돈 안에서 아낄 수 있는 데까지 아끼려고 해요. 학점을 채워 듣는 바람에 아르바이트를 많이 못하고 있어서요.

준: 지금까지는 즉흥적으로 소비하는 일이 많았는데 예전보다는 절제하면서 살 것 같아요. 낭비하지 않더라도 모아둔 돈이 없으면 불안하잖아요. 방학에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 돈이 들어올텐데 예전만큼은 안 쓸 거예요. 다음학기를 위해 모아둬야죠. 술 약속도 줄이고요.(웃음)

사회자: 그러고 보면 소비 생활이 행복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지우: 맞아요. 하지만 행복을 소비에서만 찾는 태도는 문제인 것 같아요. 가끔은 우리 사회가 ‘소비 공화국’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먹고 살기 바빠 일상 속에선 행복을 느끼기 힘들잖아요. 인간관계가 삭막해지면서 더 이상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즐거움을 찾기 힘들고요. 이런 틈 사이로 소비가 비집고 들어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데에선 행복을 찾기 어려운 만큼 소비로 눈을 돌리게 된 거죠. 더구나 SNS 같은 매체에도 소비를 부추기는 모습이 부각되고 있어요. 우리의 욕망도 그에 맞춰 강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돼요.

준: 맞아요. 기업에서도 맘껏 소비하는 삶을 마케팅에 이용하고 있죠. 현재를 즐긴다는 의미의 욜로도 마치 소비를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는 듯 말이에요. 하지만 돈을 쓰면서 느끼는 행복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혜미: 저는 욜로가 꼭 큰 지출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작은 소비도 충분히 즐거움을 줄 수 있죠. 소비 없이 취미 생활을 하며 행복해질 수도 있고요. 돈 쓰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잖아요. 무엇보다도 개인의 행복이 먼저 아닐까요.

지우: 소비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소비만으로 욕구를 충족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돈에서 오는 행복은 단기적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잖아요. 공허함을 다시 소비로 메꾸게 되고요. 소비가 자기만족의 전부는 아닌데 말이에요.

사회자: 여러분의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우리의 행복을 소비로만 평가한 게 아닌지 생각하게 됐어요. 소비 때문에 우리의 진정한 행복이 매몰되진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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