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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1 'Shut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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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2 '맞지'.  <언니들의 슬램덩크>에서 결성한 걸그룹 ‘Unnies’는 연대를 노래한다.

 

‘두 여인을 화합시키기는 것보다 유럽 전체를 화합시키는 편이 쉽다.’ 루이 14세가 한 말이다. 이 말에 대한 책임을 지려면 루이 14세는 당장에라도 유럽 전체를 화합시켜야만 했다. 여성들은 서로 연대해 여러 가지 의미를 이룩해 나가고 있고, 이러한 모습이 콘텐츠에도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 속 여성 간 연대를 들여다봤다.

 
  함께할수록 선명해진 ‘나’
  <언니들의 슬램덩크>는 드물게 멤버가 모두 여성인 예능프로그램으로, 꿈에 투자하는 계모임 ‘꿈계’를 통해 서로 돌아가며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형식을 취한다. 여성 멤버들이 다른 여성 멤버의 꿈을 위해서 함께 노력하고 각자가 끝내 꿈을 이뤄내는 형식은 그 자체로 여성 간의 연대를 의미했다. 꿈계 중에서 가장 크게 이슈가 됐던 것은 걸그룹 결성프로젝트였다. 한 멤버의 꿈에서 시작됐던 걸그룹 ‘언니쓰(unnies)’는 후에 <언니들의 슬램덩크2>에서 이어질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여성 멤버 간의 연대는 ‘언니쓰’가 일궈낸 결과물에서도 드러났다. 첫 번째 곡이었던 ‘Shut Up’의 뮤직비디오는 여성 멤버들이 합세해 바람 핀 애인을 응징하는 서사다. 남성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여성 친구들이 보듬어주는 식인 것이다. 두 번째 곡인 ‘맞지’에선 가사에서부터 여성 간의 연대가 드러난다. ‘맞지’는 ‘오늘 나 예쁜 거 맞지? 끝내주는 거 맞지/있잖아, 너 내 편 맞지? 미쳐버려도 되지‘라는 가사로 끊임없이 여성 친구에게서 유대감과 자신은 멋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받고자 한다. 그리고 그 확인을 통해 자신감을 되찾는다. ‘있잖아 나 이제야 날 만난 것 같아’라는 마지막 가사는 여성 간의 소통과 유대를 통해서 비로소 자기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된 여성 화자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성연대는 남성 중심 시스템 사이에서 안심할 수 있는 어떤 공간이 됩니다.” 박동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세상 속에서 상처받았던 여성들이 함께 연대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크나큰 위안이 된다고 말한다.
 
2011년 개봉한 영화 <써니>에서 여성캐릭터들은 함께함으로써 행복을 찾는다.

 

  여성 간 연대는 비단 예능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등장한다. 영화 <써니>는 고등학생 시절 소위 칠공주로, 높은 유대감을 자랑했던 ‘써니’라는 이름의 그룹을 조명한다. 불의의 사고로 뿔뿔이 흩어졌던 ‘써니’ 멤버들은 약 25년 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춘화’의 의지로 다시 서로를 찾는다. 써니 멤버들은 25년 만에 만났음에도 그저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를 겪는다. 가족만을 위한 삶을 살던 ‘나미’는 다시금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엄한 시어머니 때문에 바깥출입조차 자유롭지 못했던 ‘금옥’은 밥상을 엎고 나올 정도의 강단을 갖게 된다. 심지어 생계가 힘들었던 친구들은 춘화가 죽으며 친구들 앞으로 남겨놓은 유산으로 빈곤에서 벗어난다. 그야말로 여성 연대에서 시작해서 여성 연대로 끝나는 이야기인 것이다.
 
  “예전엔 결혼이란 제도를 통해 남성에게서 심리적 안정을 얻으려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결혼제도 밖에서, 차라리 남성보다는 여성 친구들에게서 심리적 안정을 형성하겠다는 인식이 확산됐죠.” 심영섭 대중문화평론가는 결혼제도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면서 우정에서 위안을 받으려는 움직임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2015년 개봉한 영화 <매드맥스>의 한 장면. 퓨리오사와 다섯 아내들은 함께 녹색 땅으로 떠난다.

 

  ‘우리’와 세계를 구원하기 위한
  여성 간의 연대는 위안을 얻고, 자신을 찾는 미시적인 일을 넘어서 남성 중심 세계를 전복하는 거시적인 일을 이뤄내기도 한다.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시타델’은 물로 대표되는 자원을 독점한 독재자 ‘임모탄 조’를 우상화하며 여성을 도구화하고 착취하는 구조를 가진 도시다. 시타델에서 사령관의 지위까지 올라간 여성 ‘퓨리오사’는 임모탄의 씨받이 역할을 하는 다섯 아내를 데리고 탈주해 자신의 고향이자 이상향인 ‘어머니의 녹색 땅’으로 향한다.
 
  김민하 미디어스 전 편집장은 현 시타델 체제에서 최고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퓨리오사가 돌연 체제에 반기를 든 이유는 속죄의식 때문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퓨리오사의 과거를 논하지 않지만, 여성으로 시타델에서 살아남아 사령관의 위치까지 오른 것으로 보아 여성을 착취하는 체재에 편승해서 명예 남성의 위치로 살아왔을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해 했던 선택들이 다른 여성들의 고통을 가중한 측면도 있으니,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느꼈던 거예요.” 왜 녹색 땅으로 가냐는 물음에 퓨리오사는 ‘구원’이라고 답한다. 퓨리오사가 탈주를 통해 구원하고자 했던 대상엔 임모탄의 아내들뿐 아니라 그 자신도 포함돼 있었다.
 
  모두를 구원하기 위해 향했던 녹색의 땅. 하지만 녹색 땅은 이미 황폐화 된 지 오래였다. 그곳에서 퓨리오사는 녹색 땅의 사람들, ‘부발리니족’ 여성들과 재회한다. 부발리니족은 거부감없이 퓨리오사 일행을 받아들이고 유대를 형성한다. 황폐해진 녹색 땅에 퓨리오사 일행은 잠시 절망하다 차라리 다시금 돌아가 시타델을 점령하기로 마음먹는다. 부발리니족은 퓨리오사 일행에 망설임 없이 동참해 함께 목숨 걸고 임모탄과 전투를 치른다.
 
  짧은 시간임에도 그렇게나 끈끈한 유대가 생겨날 수 있던 이유는 퓨리오사 일행과 부발리니족 여성들 모두 임모탄 체제에서 핍박받던 여성들이기 때문이었다. “가부장제를 포함한 기득권 체제는 피지배계층을 파편화해요. 퓨리오사 일행과 부발리니족 또한 임모탄 체제에서 소통하지 못하고 따로 존재했죠. 하지만 이 여성들이 서로를 마주하면서 체제에서 받았던 피해를 얘기하고 서로의 공통지반을 확인하게 돼요. 이러한 치유의 과정이 연대를 만든 거죠.” 김민하 미디어스 전 편집장은 이들의 연대가 가부장제에 맞설 수 있던 동력이었다고 말했다. 부발리니족은 임모탄과의 전면전에서 크게 활약하며 퓨리오사 일행의 엄청난 전력이 됐다.
 
  결국 퓨리오사 일행은 임모탄 조를 죽이고, 시타델으로 돌아온다. 시민들도 임모탄의 죽음을 반긴다. 영화 초반 연설을 하던 임모탄의 뒤에 무력하게 누워 모유 공급 기계의 역할을 수행하던 여성들이 임모탄이 독점하고 있던 물을 시민에게 개방하는 장면은 연대의 주체가 비단 퓨리오사 일행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이 폭포처럼 떨어지며 시타델은 척박한 황무지에서 ‘씨앗’이 싹을 틔울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죽음의 공간이 생명의 공간이 된 것이다. 부조리한 체제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여성 간의 연대는 그 자신들을 넘어 세계를 구원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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