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당당하고 꿋꿋하게 ‘말’하라

 

 최근 중앙대에서 페미니즘 관련 대자보가 무자비하게 찢기고 여성주의 교지 ‘녹지’가 집단 폐기된 채 발견되는 등 학내 ‘안티페미니즘’이 가시화되는 사건들이 다수 발생했다. 그러나 이는 비단 중앙대만의 일이 아니다. 성균관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도 페미니즘 소모임의 대자보가 뜯겨 나가고 페미니즘을 비난하는 글이 익명 게시판에 올라오는 등 대학 내 페미니즘을 향한 혐오는 마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에 대학 내 안티페미니즘은 왜 존재하는지, 그 원인과 해결 방안을 알아보고자 페미니즘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오해와 두려움이 낳은 갈등
  ‘성차별주의와 이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종식시키는 운동.’ 미국의 사회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인 벨 훅스가 내린 ‘페미니즘’의 정의다. 평등주의를 기반으로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페미니즘은 많은 오해와 왜곡의 과정을 겪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페미니즘을 ‘여성우월주의’ 혹은 ‘남성에 대한 투쟁’과 같이 부당하고 폭력적인 이미지로 기억한다.

 

  이러한 페미니즘에 반감을 표하는 안티페미니즘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페미니즘 공론화의 계기가 되었던 강남역 살인사건 이전에도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있어왔다. 그러나 사회는 이에 안티페미니즘으로 대응했다.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를 돌아보면 사회는 살해 협박, 인신공격 등의 방식으로 여성의 주체적인 발화를 막아왔어요. 이는 여성혐오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게 뿌리내렸는지를 보여주죠.” 여성신문 이세아 기자는 안티페미니즘은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 속에서 언제나 존재했음을 설명했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의 역사와 함께 맥을 이어온 안티페미니즘은 대체 왜 형성됐을까. 김세서리아 교수(이화여대 여성철학전공)는 안티페미니즘은 페미니즘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뿐 아니라 남성중심, 서양중심, 인간중심, 이성애중심 등 특정 집단을 위한 ‘중심성’을 해체하는 정치적인 학문이에요. 하지만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이익만을 챙기는 이기적인 학문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어요.”

 

  이나영 교수(사회학과)는 안티페미니즘은 페미니즘에 대한 방어기제라고 설명했다. “안티페미니즘은 스스로가 여성혐오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역설적인 징후예요. 성평등을 말하는 페미니즘 앞에서 당당한 사람은 이를 혐오할 필요가 없잖아요.” 거부감과 혐오는 두려움에서부터 시작된다. 가부장적이고 여성혐오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에게 그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칭하는 페미니즘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왜, 대학인가
  이렇듯 안티페미니즘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만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왜 안티페미니즘은 유독 대학가에서 가시화되는 것일까. “요즘 대학에서는 혐오와 차별을 표현의 자유 혹은 장난으로 포장해서 쉽게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죠.” 이세아 기자는 익명성 뒤에 숨어 성차별적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는 대학 사회의 현실을 지적했다. 인터넷이나 SNS를 주로 사용하는 대학생들은 온라인에서 얻은 페미니즘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만으로 페미니즘을 폄하하고 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예민하고 과민 반응하는 사람으로 매도한다.

 

  대학 내 안티페미니즘이 눈에 띄게 드러나는 이유는 대학생들이 사용하는 매체의 특성 때문만은 아니다. “대학은 지식인의 집합체로 인식되는 곳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페미니즘이라는 학문에 대한 논의가 보다 활발하게 이뤄지고 그에 대한 혐오 또한 더 잘 드러나죠.” 김세서리아 교수는 학문을 탐구하는 공간이라는 대학의 특성 때문에 대학 내 안티페미니즘이 특히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갈등이 가시화된다는 것은 문제의식이 있다는 거예요.” 이나영 교수는 대학 내에서 페미니즘과 안티페미니즘 간의 갈등이 두드러지는 현상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대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은 공간이에요. 다양한 가치를 탐구하고 실험할 수 있죠. 그런 공간에서 페미니즘이라는 중요한 가치가 논의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차별 구조가 고착화된 공간에서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현상들이, 상대적으로 평등한 대학 사회에서는 문제시되고 논의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해
  대학 내 안티페미니즘이 어떻게 해석되든 결국 이는 구성원 모두가 함께 해결해나가야 하는 문제다. 김세서리아 교수는 안티페미니즘을 해결하기 위해선 다른 주장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선 페미니즘의 올바른 이해와 타자에 대한 공감능력을 길러줄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해요. 그리고 안티페미니스트들에게 그들의 사고관이 본인을 포함한 우리 사회에 어떤 문제를 가져오는지를 계속 설명하고 주장해야죠.”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페미니즘은 ‘과격하고 불편하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에서 출발한다. 우리 사회가 오랜 시간 묵인해온 ‘차별’을 철폐하는 학문인 것이다. 사회를 잠식한 부조리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갈등의 중심이 된다는 것은 그간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고자 하는 젊은 세대들이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나영 교수는 대학생들이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페미니즘을 실천하고 체화하며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은 언제나 당대의 남성중심적 주류 가치관에 비해 진보적인 거예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전면 개혁을 지향하는 페미니즘의 주장은 과격하게 들릴 수밖에 없죠.” 안티페미니스트들은 그동안 ‘과격함’을 이유로 페미니즘을 외치는 목소리를 억압해왔다. 하지만 스스로도 인지하지도 못할 만큼 뿌리 깊은 차별적 인식과 태도에서 벗어나 동등하고 자유로운 개인으로 상호존중하는 것이 중요함을 인식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출발점이다.

 

  이세아 기자 역시 대학 내 페미니즘의 꿋꿋한 ‘말하기’에 기대를 드러냈다. “안티페미니즘의 등장은 ‘말하기’가 얼마나 중요하고 정치적인 행위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예요.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자유롭게, 지속적으로 말하고 설득함으로써 수천년간 암암리에 이어져온 불평등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