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잘앙잘은 작은 소리로 원망스럽게 종알종알 군소리를 자꾸 내는 모양을 뜻합니다.
 
이번학기 앙잘앙잘에서는 갖가지 주제에 대해 대학생들의 작은 소리를 모아 보려 합니다이번주 주제는 일반인 코스프레(일코)’입니다. 흔히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숨기고 좋아하지 않는 척할 때 일코한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잠깐,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일코 중이진 않나요? 우리는 어떤 면을 숨기고 일반인처럼 살아가고 있는지 3명의 학생과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일반인이란 빈껍데기 속
일반인을 흉내 내는 일반인
 
날 선 시선과 인신공격
숨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사회
 
외관만으로 충분히 일반인 취급받을 수 있다. 교복 바지통은 적당히 6통 정도. 지나친 곱슬머리와 투블럭컷을 삼가기. 운동을 해서 외모를 가꾸고 일반인과의 유대감을 강화하자이 글은 인터넷 오픈 사전에서 설명하는 일반인 코스프레(일코)’ 정의 중 일부입니다. 하지만 정말 이대로만 하면 일반인이 될 수 있는 걸까요? 김성윤 학생(광고홍보학과 2), 박정민 학생(사회복지학부 2), 이우림 학생(이화여대 사회학과)과 함께 일코란 무엇인지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사회자: 반갑습니다. 지금부터 일코를 해제해 볼게요. 각자 어떤 관심사를 갖고 계시나요?

우림: 어렸을 때부터 아이돌을 좋아했어요. 자신 있게 좋아한다고 이야기하진 못하죠. 좋아하는 아이돌이 있냐는 질문에도 딱히 없다고 말하거나 그 아이돌의 음악만 좋아한다고 얼버무려요.

정민: 저는 애니메이션과 소설을 좋아해요.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고 하면 오덕후’, ‘덕후라는 꼬리표가 붙어요. 이 단어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을 비하하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힘들죠.

성윤: 저는 여러 가지 분야에서 일코를 해요.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나 정치적 성향, 사회문제에 관한 의견을 숨기기도 하죠. 이슈를 논할 때 특정 입장만이 지성적이라고 여겨지곤 하잖아요.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마음

  사회자: 코스프레는 캐릭터를 따라 의상을 갖춰 입고 흉내 내는 놀이를 의미해요. 최근에는 특정 대상을 따라 한다는 폭넓은 의미로 쓰이죠. 일반인인 척한다는 의미의 일반인 코스프레’, 여러분은 어떤 일코를 하고 계신가요?

우림: 흔히 아이돌을 좋아하면 빠순이라 해요. 빠순이는 오빠에 빠진 어린 여자아이라는 의미로 아이돌 팬을 비하할 때 쓰여요. 그래서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려웠어요. 친구들이 놀리기도 했고요.

성윤: 저는 남자아이돌을 좋아해요. 지방에 살면서 팬미팅을 가기 위해 전세 버스를 타고 서울에 가기도 했어요. 같은 성별을 가진 아이돌을 좋아해서 동성애자냐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죠. 남자 아이돌을 좋아하는 남자는 무조건 게이인가요? 아니잖아요. 그 후부터 사람들이 게이에게 가진 편견과 반대되는 모습을 보이려 괜히 노력하게 되더라고요.

사회자: 일코를 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있나요?

정민: 한번은 사촌오빠가 휴대전화를 빌려 달라고 했어요. 전화만 하는 줄 알았는데 전화를 끝내고 사진첩을 본 거에요.(일동 탄식) 사진첩에는 제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영상과 사진이 있었어요. 사촌오빠가 그걸 보더니 너 오타쿠야?’라고 물었죠. 그래서 사진첩에 있는 사진을 다 지웠던 적이 있어요.

우림: 고등학생 때 같이 다니던 친구 중에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도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딱히 드러내진 않았죠. 그런데 어쩌다가 다른 친구가 그 사실을 알게 됐어요. 알자마자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휴대전화를 뺏어 들더니 사진첩을 여는 거예요. 그 친구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진첩에 들어있는 사진들이 무엇이냐, 너 오타쿠냐며 밀어붙였죠. 결국 둘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어요. 취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회의감이 들면서도 스스로 개인적인 취향을 드러내지 않게 됐어요.

성윤: 저는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거의 일코를 하지 않았어요. 저와 비슷한 취미와 성향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고 친한 사이였으니까요.

정민: 저는 고등학생 때 기숙사에 살았는데 24시간 동안 친구와 같이 있다 보니 일코하기가 힘들었어요. 대신 같은 방에 비슷한 취향을 가진 친구가 있으면 너무 행복했죠. 그래도 3년 내내 친구들과 붙어있어야 해서 나중엔 자포자기했어요. 주위에 취향을 밝히고 즐길 시간이 필요했거든요.

우림: 대학교에서는 사람들과 붙어 있는 시간이 적어서 일코하기 편해요.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사용하지 않는 이상 내가 누굴 좋아하는지 아무도 모르죠. 마음속에 있는 깊은 이야기를 할 시간도 부족하고 먼저 이야기할 일도 없어요.

성윤: 맞아요. 대학에 와서는 숨기게 돼요. 매일 마주치는 사이도 아니고 모든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진 않잖아요. 일부러 숨기진 않아도 먼저 이야기 하는 일은 없죠. 그리고 일코를 하면 다른 사람이 일코 중인 게 더 잘 보여요. 휴대전화 배경화면에 작게 적힌 문구만으로 어떤 아이돌 팬인지 알 수 있죠. 가방에 달려 있는 팬만 아는 장식품도 그렇고요.

우림: 맞아요. 일코 전용 배경화면이 따로 있잖아요. 오히려 일코를 하면서 일코에서 파생된 문화가 생겼죠.

 

  생각보다 가깝고 다양하다

  사회자: 흔히 일코라고 하면 애니메이션과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숨기는 사람이 연상돼요. 성윤씨는 다양한 방면에서 일코를 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건가요?

성윤: 지난학기 팀플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대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비밀 투표가 원칙인데 한 조원이 특정 후보를 뽑았다면서 다른 조원들은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묻는 거예요. 들어보니 저 혼자만 다른 사람을 뽑았더라고요. 괜히 말하기 꺼려져서 조원들이 뽑은 후보 이름을 말하며 일코한 적이 있어요.

사회자: 본인의 정치 의견을 밝혔다가 싸운 적도 있나요?

성윤: 인터넷상에서 싸운 적이 있어요. ‘키보드 배틀이라고 하죠. 그렇지만 한참 싸우고 나니 의미 없는 일이라고 느꼈어요. 내가 바뀌지 않듯 그 사람도 바뀌지 않거든요. 그래서 요즘엔 침묵하거나 동조하는 척해요. 페미니즘에 관해서도 일코를 해요. 페미니즘에 대한 의견을 말하면 어떤 사람은 남자가 왜 페미니즘을 논하냐고 반응 하거든요. 결국 페미니즘이란 주제로 혼자 생각하고 글 쓰는 데 그쳐요.

정민: 현실에선 페미니즘과 같이 쉽게 언쟁이 일어나는 주제를 잘 이야기하지 않게 돼요. 본명이 드러난 SNS 계정에서 페미니즘 이야기를 했다가 실제로 폭행을 당한 선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물리적 폭행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입을 다물게 되더라고요.

우림: 저도 그래요. 한번은 방송에 이화여대가 나왔어요. SNS에도 방송 영상이 올라왔는데 학생을 성희롱하는 댓글이 달리는 거예요. 너무 화가 나서 반박 댓글을 달고 싶었어요. 그런데 SNS에 공개 된 신상정보로 사이버 폭력을 가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댓글을 남기면 인신공격을 받을까봐 그만 뒀죠.

 

  일코하는 사회

  사회자: 일반인 코스프레라는 단어가 생기면서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요?

성윤: 일반인 코스프레라는 단어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면서 다른 사람도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인지하게 됐어요. 숨겨왔던 취향을 공유하는 커뮤니티도 많아졌죠.

우림: 타인이 이상하게 볼 수 있는 부분은 일코를 해야 한다는 통념이 생겼어요.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계속 억눌러야 하는 상황이 왔죠. 그래서 익명 뒤에 숨어 본인의 분노를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생각해요.

사회자: 익명으로 이용할 수 있는 SNS와 그렇지 않은 SNS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우림:페이스북은 내가 어떤 게시물을 좋아하는지 무슨 내용의 댓글을 남기는지 다른 사람이 볼 수 있죠. 그 내용을 바탕으로 남들이 절 판단하는 게 싫어요.

성윤:트위터는 익명으로 이용할 수 있어서 누군가 내 글을 본다는 느낌이 덜하죠. 좀 더 편하게 의견을 주장할 수 있어요.

사회자: 어찌 보면 익명 SNS 사용도 일종의 일코라고 볼 수 있겠네요.

성윤: 맞아요. 현실의 내가 익명에 숨어있다는 점에서 일코와 다를 바 없죠.

우림: 페이스북에서는 항상 나만 볼 수 있도록 게시물을 따로 저장하잖아요. ‘전체 공개로 게시물을 공유하다간 큰일이 나죠.(웃음) 다른 사람들이 나의 관심사를 알게 되니까요.

사회자: 요즘 사회는 일코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우림: 오히려 SNS의 발달로 항상 누군가에게 감시받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감시 속에서 획일화된 문화가 형성되고 있죠. 그리고 트위터에 다양한 생각을 표출해도 어쨌든 익명으로 숨은 상태잖아요. 결국에는 당당해질 수 없는 모습이에요.

정민: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전보다 편해졌다고 생각해요. 전에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을 향한 고정된 이미지가 있었거든요. 잘 씻지 않고 스스로 꾸밀 줄도 모르는 이미지 말이에요. 요즘에는 그런 고정관념은 줄었어요. 페미니즘도 이전보다 자주 화두에 오르는 편이고요.

성윤: 확실히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다양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타협을 요구받고 있어요. ‘우리가 이만큼 인정해 줄 테니 너희는 그만큼의 요구를 포기해란 식이죠. 결국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일반인이란 허상

  사회자:일반인 코스프레에서 일반인이 뜻하는 게 뭘까요?

우림: 좌담회 오는 길에 일반인 코스프레라는 단어를 인터넷에 검색해 봤어요. 인터넷 오픈 사전에 성향을 숨기든 숨기지 않든 겉모습이 멀쩡하면 된다고 적혀있더라고요. 그 밑으로는 세세한 일코 방법이 있었어요. 남자도 피부 화장 정도는 해야 하고, 멋있게 보이기 위해 어떤 브랜드의 신발을 신고, 자기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었죠. 결국 겉모습만 괜찮으면 된다는 거잖아요. 너무 이상해요.

성윤: 생김새만 보고 오타쿠라고 욕하는 사람이 있죠. 반대로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을 보고 안 그러게 생겼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우림: 선입견으로 사람을 판단하죠. 연약하고 화장을 하는 남자는 다 게이이다, 안경을 쓰고 피부가 더러우면 다 오타쿠다. 선입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반인이라는 틀에 자신을 맞추다 보면 다양성이 사라질 거예요.

정민: 일반인이란 건 정말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닐까요.

성윤: 맞아요. 특별한 성향이나 취미를 갖지 않는 사람이요.

우림: 많은 논란을 자아내는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만 봐도 동시 접속자가 몇만 명이 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이용해요. 그러나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 일베를 이용하는 사람을 흔하게 볼 순 없죠.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드러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모두가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사회라고 느껴요.

성윤: 진짜 일반인이 무엇인지 혼란이 와요. 저는 고향에 내려가면 독실한 기독교인 코스프레를 해야 하거든요. 교회에서는 독실하게 신을 믿는 사람이 일반인이 되니까요.

우림: 저도 기독교를 믿는데 원하지 않는 서명운동을 부탁받은 적이 있어요. 동성애자의 시위 신고제 요구를 반대하는 내용이었죠. 저는 동성애자 뿐만 아니라 다른 집단을 위해서라도 시위 신고제를 찬성하는 입장이에요. 그래서 반박했지만 독실하지 않다는 시선만 돌아왔죠. 제 의견이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일반인이란 게 실체는 없고 빈껍데기만 있는 것 같아요.

성윤: 모두가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 일반인인 것처럼 보이죠.

사회자: 어쩌면 우리는 일반인이란 허상을 코스프레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세상이 마음껏 알록달록해지길 바라면서 이만 좌담회를 마치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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