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학승 혜초(704~787) 일행은 엄청난 눈보라를 만났다. 눈앞에는 파미르고원, 산만큼이나 높은 지대였다. 나무 밑에 한동안 웅크린 채 있자니 눈보라가 멎었지만 칠흑의 밤이었다. 그들은 횃불을 밝혀 들었다. 누군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은 밤을 꼬박 새우며 파미르고원을 넘어갔다. 왕오천축국전』에는 이런 시가 나온다.

차디찬 눈, 얼음까지 끌어모으고
찬바람, 땅 갈라져라 매섭게 분다
망망대해 얼어붙어 단(壇)이 되었고
강물도 얼어 제멋대로 벼랑을 갉아먹는다
용문 지방은 폭포조차 얼어 끊기고
우물 테두리는 도사린 뱀처럼 얼어붙었다
횃불 들고 오르며 부르는 노래
파미르고원을 어찌 넘어갈 수 있을까
 
  한국 시인 30명의 여정은 서울→중국 시안→우루무치→투루판→하미→둔황으로 이어졌다. 실크로드 중 천산북로를 택한 것이다. 엄청난 거리를 이동하면서 실로 많은 것을 보았다. 시안에서는 성벽·종루·비림·진시황릉·병마용갱·화청지·대안탑을, 우루무치에서는 천산·천지·신강위구르자치구박물관·홍산공원을, 투루판에서는 소공탑·고창고성·교하고성·아스타나 고분·가레즈(지하 인공수로)·화염산을, 둔황에서는 명사산·월아천·백마탑·막고굴을 보았다. 투루판 시내를 마차를 타고 돌기도 했고, 명사산까지는 낙타를 타고 갔다. 4개 도시의 야시장 구경과 12시간을 꼬박 탄 기차여행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막고굴이었다. 『왕오천축국전』이 여기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열일곱 어린 나이에 중국으로 유학을 가 불도를 닦으며 학업에 정진하던 혜초가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 순례에 오른 것은 723년, 고작 열아홉 살 때였다. 일단 배를 타고 중국의 광저우를 출발해 캄보디아와 말레이반도와 스리랑카를 거쳐 인도에 다다른 혜초는 부처가 태어난 곳과 도를 닦은 곳, 처음으로 설법한 곳, 최초로 세운 절, 입적한 곳 등을 찾아본 뒤 중앙아시아 드넓은 땅을 편력했다. 데칸고원과 파미르고원을 넘어 당의 안서도호부가 있던 쿠차에 도착하는 것으로 여행기는 끝난다. 혜초가 4년 넘게 걸었던 거리는 짧게 잡아도 5만 리였다.
 
  그는 여행 도중 두루마리를 바랑에 넣고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소상히 기록했는데 어떻게 해서 둔황 석굴에서 1200년을 잠들어 있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왕오천축국전』은 8세기경의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대해 쓴 전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기록문이라는데 여행하면서 들른 각 지역의 정치 상황, 생활 수준, 마을 모습과 음식, 의복, 습속, 산물, 기후, 불교 신앙의 정도 등을 기록하지 않았더라면 혜초의 이름은 후세인의 뇌리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학생들이여 방학 때면 여행을 떠나라. 세계는 넓고 볼 것은 많다. 
 
이승하 교수
공연영상창작학부 문예창작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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