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권,
평등권, 사회권, 참정권, 청구권. 대한민국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5대 기본권이다. 그러나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먹을 것에 대한 권리, 식권(食權)’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아직까지도 식생활에 불편을 겪는 채식인들이 바로 그 근거다. 채식에 대한 미흡한 배려와 부족한 정보는 그들에게 편안한 식사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에 채식을 존중하고 그들의 식권을 보장하려는 사회 곳곳의 노력을 들여다봤다.

대학 내 학생 식당= 우리나라 대학 중 학내 식당에서 채식 메뉴를 운영하는 대학은 서울대, 동국대, 삼육대 등 불과 세 곳뿐이다. 전국의 대학 수가 386(2016년 기준)인 것을 감안하면 채식 식단을 운영하는 학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채식 식단을 제공하는 대학 중 서울대의 감골식당은 뷔페 형식으로 하루 12가지 정도의 채식 메뉴를 매일 다르게 제공하고 있다. 서울대 생활협동노동조합(생협) 관계자는 육식을 하지 않는 외국인 학생이 늘어나면서 감골식당의 채식 메뉴를 운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인도나 동남아에서 온 학생들이 육류를 거의 안 먹더라고요. 그렇다고 이슬람 음식을 제공하기엔 식자재 유통이 쉽지 않고 재정적인 어려움도 있어서 채식 식당을 운영하게 됐어요.”

  동국대 역시 학내에서 채식 식단을 제공하는 대학 중 하나다. 동국대는 교직원 식당의 일종으로 채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불교 종립학교라는 특성상 학내에 불교의 교리에 따라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을 추구하는 학생과 교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국대도 처음부터 채식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채식은 원가가 높기 때문에 처음에는 엄두도 못 냈죠. 그런데 요즘은 일반 학생이나 교수들이 채식을 많이 요구해서 수요에 맞춰 준비하게 됐어요.” 동국대 생협 사업1팀 유재춘 팀장은 채식당 운영의 계기로 학내 구성원들의 채식 수요 증가를 꼽았다. 동국대에서도 채식당을 뷔페식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14가지의 다양한 채식 메뉴를 제공한다.

  채식을 제공하는 학생식당에 대한 학내 구성원들의 반응은 대체로 좋은 편이다. 채식인뿐 아니라 비채식인까지 이용하고 있을 정도로 채식 메뉴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서울대 생협 관계자는 감골식당을 찾는 학내 구성원들의 다양한 유형을 소개하며 채식 식당의 인기를 설명했다. “많은 분들이 채식인을 위한 식당이 있다는 데 자부심을 갖고 좋아해 주시죠. 건강을 생각해서 오시는 분들도 많고 색다른 식사를 원하시는 분들이 호기심으로도 많이들 오세요.”

기업·식당= 기업 중에도 수요에 따라 채식인을 위한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 있다.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파리바게뜨는 미국 동부지역에 비건 머핀 3종을 따로 판매하고 있고, 제과업체 롯데제과도 인도를 겨냥해 식물성 초코파이를 출시했다. 그러나 아직 해외에 비해 채식 수요가 상대적으로 적은 한국의 채식 시장을 노리는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도 채식인을 위한 제품을 개발해 판매하는 기업이 있다. 대표적으로 식품 전문 기업 농심에선 지난 2013야채라면을 국내에 출시했다. 야채라면은 고기 성분을 전혀 포함하지 않고 양파, 마늘, 생강, 고추, 양배추 등 6가지 채소로만 만든 제품이다. 양파를 익히면 단맛이 나고 버섯을 볶으면 구수한 맛이 나는 원리를 이용해 기존 라면에서 고기와 해산물이 냈던 맛과는 다른 감칠맛을 담았다.

  농심 홍보팀 천재하 과장은 다양한 소비자가 라면 맛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며 야채라면을 개발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라면은 우리나라의 국민 음식이잖아요. 채식인과 같은 소수의 소비자도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라면을 개발하고 싶었어요.” 다양성을 위한 농심의 의지를 바탕으로 야채라면은 마니아층으로부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채식에 대한 존중은 일부 식당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아예 채식 메뉴만 운영하는 식당에서부터 기호에 따라 기존 메뉴를 채식으로 요리해주는 식당까지.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종류는 제법 다양하다.

  그중 여의도에 있는 중화요리 전문점 신동양반점은 일반식 메뉴와 채식 메뉴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 채식 메뉴도 일반식 메뉴 못지않게 다양하다. 신동양반점 이영발 주방장은 그만의 비결로 채식고기를 꼽았다. “채소라는 제한된 식자재만으로는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저희는 콩단백, 밀단백 등을 섞어서 만든 채식고기를 이용하죠.” 중화요리 특성상 고기가 꼭 필요하지만 채식고기를 사용해 육고기 없이도 풍부한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 식당에서 채식 메뉴를 운영하는 데엔 어려움이 많다. 채식을 요구하는 손님 수가 적다 보니 음식을 미리 준비하지 못해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식 메뉴를 계속 운영하는 이유는 채식을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사장님의 어머님이 채식인이셔서 시작한 사업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꾸준히 찾는 분들이 계시니까 그분들을 위해서 계속하는 거죠.”

채식 연구 및 홍보 활동= 이렇듯 적은 수요에 따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학교, 식당, 기업 등 다양한 곳에서 채식인들을 위한 배려가 조금씩이나마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손에 꼽히는 사례일 뿐, 한국에서 채식인들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정도는 여전히 미미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종 채식 단체에선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채식연합에선 공공기관에서의 채식 급식 장려 활동이나 채식을 알리기 위한 캠페인 등의 활동을 진행 중이다. “채식은 동물 학대도 예방할 수 있고, 환경도 보호할 수 있고, 건강에도 좋아요. 채식의 장점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됐으면 해요.” 한국채식연합 이원복 대표는 채식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고 채식의 효과를 홍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푸른생명한국채식연합은 채식을 연구하고 그를 통해 채식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높이고자 했다. 푸른생명한국채식연합 이광조 대표는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과 연구 장려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외국에서는 이미 채식에 대한 방대한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채식을 장려하는 정책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우리도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채식 연구를 지원해야 해요.” 정부 주도의 채식 연구가 곧 채식의 홍보로, 그리고 채식을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인정하는 문화의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원복 대표는 채식인들의 권익을 높이기 위한 채식인 개개인의 노력 또한 필요하다고 말한다. “당당하게 채식하세요. 자기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능동적으로 권리를 찾아 나서는 것 자체가 훌륭한 채식 운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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