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이 대변하는 소신

먹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

인간은 무엇인가를 먹어야만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무엇을 먹느냐의 문제는 개인을 둘러싼 환경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종교적 신념에서부터 사회 분위기와 전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식탁에 오르는 음식이 결정된다. 그 중에는 분명 채소만 올라와있는 식탁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기준으로 그들만의 식탁을 만들게 된 것일까. 인류 속에서 채식인들이 어떤 이유로 채식을 선택했는지, 그 다양한 요인을 알아봤다.
 
  믿음의 상징, 채식
  인간이 채식을 시작하게 된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종교적 신념이었다. 구약성경에 쓰인 인류 최초의 식생활은 완벽한 채식이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1:29) 월간비건이향재 대표에 의하면 하느님이 식물만을 먹을 수 있도록 허락했기 때문에 과거 기독교 신자들은 채소를 주식으로 했다. “성경은 기독교 신자들의 식생활을 엄격히 규제했어요. 당시 기독교 신자들은 모든 식물, 심지어는 독성을 지닌 식물까지도 그들의 음식에 포함했죠.”
 
  불교를 숭상하는 지역에서도 육식을 금기하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있었다. 그들에게 살생은 큰 범죄였기에 채식 위주의 삶이 주를 이뤘다. 불교의 윤회 사상에 의하면 살생은 또 다른 살생을 만든다. 실제로 불교 경전인 능엄경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고기를 먹는 자들은 서로 살생하여 먹는다. 이 생에서는 내가 너를 먹고 다음 생에서는 네가 나를 먹는 악순환을 영원히 끊지 못한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살생만을 허용하는 채식은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한 생명으로 이해하는 불교 사상과 맞닿아있다.
 
  본인의 특정한 철학에 따라 채식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는 대표적인 채식 철학자다. 피타고라스의 철학에 따르면 인간과 동물은 모두 영혼을 갖고 있으며 죽은 후에는 다른 사람이나 동물의 몸으로 옮겨갈 수 있다고 믿었다. 즉 동물과 인간은 같은 영혼을 공유하는 동등한 존재라는 뜻이다. 따라서 육식은 피타고라스와 그의 철학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금기였다. 육식은 그들에게 도덕적 수치였을 뿐만 아니라 순수한 명상을 방해하는 식습관이었다.

  건강과 윤리, 모두를 추구하다
  특정한 종교적 신념이나 철학 사상과 상관없이 채식을 하기도 한다. 현대 사회에서 채식은 단순한 식습관이 아닌 개인의 선호를 반영하는 적극적인 수단임과 동시에 사회적인 움직임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일반인 사이에 채식이 퍼져나가게 된 배경에는 개인의 신체적 건강 증진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 증진과 윤리적 동기 등 다양한 이유가 연관돼 있다.

  일부 채식인은 신체 건강을 위해 채식을 선택한다. 이런 흐름은 1970년대 이후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두드러졌다. 소득 증가는 육류 소비 증가로 이어졌고 과다한 동물 단백질 섭취와 함께 비만과 암, 심장질환 등으로 인한 사망률도 덩달아 늘어났다. 육류가 사망률 증가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퍼지자 스스로 육류를 멀리하고 채식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채식이 무조건적인 건강을 보장하진 않지만 건강식을 위한 사람들의 선택은 채식이었다.

  신체 건강의 증진뿐만 아니라 윤리적 동기에 의해 채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한 가축 살처분이나 생명권을 박탈하는 공장식 축산업이 사회 이슈로 대두되면서 동물권 보장을 위해 채식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들은 동물을 생명이 없는 상품으로만 취급하는 현재의 고기 소비 방식이 비윤리적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동물 보호 운동의 일종으로 채식이 주목받고 있어요. 채식을 하나의 윤리적 의사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죠.” 이향재 대표는 최근 살충제 달걀 문제 등으로 축산업과 생명 윤리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육식 문화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채식인 배려, 선택 아닌 필수
  이렇듯 인류는 다양한 방식으로 채식을 추구했지만 여전히 우리 식생활에서 주된 음식은 육류다. 한국에서 채식주의자 되기(유태범, 2012)에 따르면 과거 대부분의 사회에서 육류는 쉽게 접하기 힘든 고급 음식의 지위를 누렸다. 대중은 고급 음식인 육류를 채식보다 선호했고, 그런 육류를 두고 항상 식탁에 오르는 저급 음식인 채소만을 선호하는 행동은 특이한 성향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사회 분위기로 인해 육류는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뿌리를 내렸고 채소는 육류의 맛을 풍성하게 하는 보조적 역할로 전락했다.

  육류 중심의 음식 문화 때문일까. 채식은 이전부터 하나의 문화로 존재했지만 이에 걸맞은 사회적 배려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채식을 결심해도 실천하지 못하도록 하는 현실의 벽이 존재한다. “육식 문화가 걱정될 정도로 권장되고 있어요. 고기가 안 들어간 음식은 음식으로 취급하지도 않죠.” 이향재 대표는 육식 중심의 식단만이 제대로 된 식사로 취급받는 현 사회의 풍토에 탄식했다.

  한국채식연합 이원복 대표는 우리 사회가 경직돼 있어서 새로운 생각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육식이 보편적인 사회에서 채식인은 튀는 행동을 하는 사람 정도로 여겨진다. “우리 사회가 사회적 소수자의 생각이나 의견을 받아들이는데 매우 보수적이라 생각해요. 그런 분위기는 우리나라에서 채식 문화가 확산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죠.”

  최훈 교수(강원대 교양대학) 역시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채식주의가 하나의 문화로서 정착하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가 다양한 사람과 문화를 경험하지 못하다 보니 채식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죠.” 다른 국가에 비해 다양한 문화를 접할 기회가 적었던 한국의 역사적 특성상 채식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현재 유럽에서 채식은 하나의 생활방식으로 존중받고 있다. 독일에서는 세계 최초로 비건 슈퍼마켓 체인이  등장해 유럽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베를린에는 대략 60여 곳의 채식 식당이 있을 뿐만 아니라 채식인을 위한 거리까지 있다. 포르투갈의 경우 모든 공공기관 구내식당에 채식 메뉴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제 채식인을 위한 배려와 존중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열린 마음으로 식생활에 불어오는 변혁의 바람을 받아들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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