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우울 나누기

우리는 감기를 치료하기 위해 당연하게 병원을 찾는다. 전문의의 진료를 받고 처방에 따라 약을 먹다보면 감기는 씻은 듯이 낫는다. 하지만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는 우울증은 우리에겐 아직 당연하지 않다.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흔한 병이지만 쉽사리 병원을 찾지는 못한다. 청년들의 삶과 어려움을 주제로 한 컨텐츠로 큰 공감을 얻고 있는 작가 ‘서늘한여름밤(서밤)’과 ‘딸기설기(설기)’ 둘을 만나 ‘우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명문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서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내노라하는 유명 대학병원에 취업했다. 모두가 그러하듯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달려온 결과였다. 하지만 그가 마주한 현실은 그의 상상과는 달랐다. 결국 권위적이고 불합리한 조직문화를 견디지 못한 그는 100일 만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가도에서 뛰쳐나왔다.

  서밤 “그때부터 그림일기를 그려서 올리기 시작했어요. 저의 방황기를 공유하고 싶었죠. 분명 세상에는 대기업 다니다가 퇴사한 사람, 의대 중퇴한 사람, 대학원 그만둔 사람들처럼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하기로 했죠.”

  설기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원하는 취업이라는 과제를 완수했지만 극심한 우울증 때문에 직장을 그만뒀다. 온몸을 배배 꼬며 엉엉 울다가 지쳐 잠드는 게 일상이었고 하루하루가 무기력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는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매일매일 일기를 썼고 그 일기를 기반으로 시작한 것이 바로 <딸기설기 마음연구소>다.

  설기 “사실 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딸기설기 마음연구소> 연재를 시작했어요. 저는 제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솔직한 나의 속마음들을 꺼내놓고 싶었어요. 자기감정을 털어놓고 나면 마음이 좀 편해지잖아요.”

  ‘일기’인만큼 그들의 이야기는 화려하거나 완벽하진 않다. 그러나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엔 그들의 속마음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다. 성공에서 벗어나고 느꼈던 열등감부터 모두가 기피하는 우울증 이야기, 이상과 현실의 괴리와 스스로에 대한 기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모습까지. 여타 인기 만화처럼 극적인 스토리 전개나 눈을 끄는 색감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에 울고 웃는다.
 
  서밤 “보통 SNS엔 기쁘고 즐거운 일들, 내가 자랑하고 싶은 일들을 많이 올리잖아요. 그런데 저는 제가 받았던 상처나 부끄러움 등 저의 솔직한 감정들을 많이 이야기해서 그런 것 같아요. 보시는 분들도 막연하게 느꼈던 감정들을 저를 통해 확인하고 공감하기 때문에 좋아하시는 게 아닐까요?”

  그들의 이야기가 특히 20대 청년들에게 큰 공감을 얻고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20대는 다른 연령대보다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는 시기다. 대외활동, 동아리, 인턴, 취업 등 수없이 평가의 도마 위에 올라야 한다. 많은 도마에서 미끄러지는 순간 그들은 ‘패배자’가 된다.

  설기 “모든 게 불안할 때죠. 어느 순간 갑자기 ‘너는 성인이야’라며 모든 것에 대한 자유와 선택이 주어져요. 선택의 책임은 온전히 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실패하면 탓할 사람은 자신뿐이죠. 게다가 사회는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을 ‘패배자’로 낙인찍고 그 원인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요. 그렇게 스스로를 탓하다 보면 스스로가 실패를 용서할 수 없게 되죠.”

  실패해선 안 된다는 압박감은 그들을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로 만들었다. 성공하기 위해선 좋은 학점과 각종 스펙은 모두 섭렵해야 한다. 심지어는 연애와 인간관계까지도 완벽하게 해내야만 했다. 20대는 강박적으로 주어진 목표만을 좇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시간은 없었다.

  서밤 “22살에 심한 우울증을 앓았어요. 심리학을 전공했지만 당시엔 제가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도 못했죠. 그냥 어느 순간부터 사는 게 너무 공허하고, 잠도 안 오고, 감정이 텅 비어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냥 사는 게 그런 건 줄 알았어요. 다들 그렇게 사는가 보다 했죠.”

 
  모두가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지만 사회는 그들의 우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은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이상한 사람’으로 규정된다. 일부 취업 전선에서 우울증 진료 기록은 주홍글씨처럼 남아 그들을 괴롭히고 있다. 때문에 청년들은 자신의 우울과 무기력을 병이 아닌 단순한 감정으로 전락시키고 치료를 거부할 수밖에 없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사회의 낙인이 두려워 자신의 고통을 방치하는 것이다.

  서밤 “우울증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부분들도 많아요. 저도 ‘겨우 이 정도 가지고, 혼자 극복할 수 있어’라는 생각으로 꾹 참았어요. 저 혼자만 우울한 것도 아니고 제가 우울한 게 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말이죠. 돌이켜보면 상담도 정신과 치료도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네요.”

  선뜻 우울증 치료를 고려할 수 없는 이유는 사회적 인식 때문만은 아니다. 경제적인 비용의 장벽도 우울증 치료를 가로막고 있다. 우울증 치료를 위한 심리상담 한 번에 드는 비용은 약 10만원에 이른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정신보건센터나 지역마다 있는 심리상담소에서 무료 심리상담을 진행하고는 있지만 10회기로 제한돼 있다. 그 이상은 상담이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다.

  설기 “20대는 아직 경제적으론 부모님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상담을 한번쯤 받아 보고 싶어도 비용적인 문제 때문에 힘든거죠.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의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기간에도 돈을 지불해야 하고 상담자를 바꾸면 다시 그만큼의 비용이 필요하고요.”

  우울을 숨기길 강요받고 있는 사회에서 20대들은 전문적인 치료도 받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SNS는 불안감과 우울함을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됐다.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서로에 대한 ‘공감’뿐이었던 것이다.

  설기 “사회에선 아직도 우울증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고 하면 자꾸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죠. 영차영차하고 의지로 이겨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죠. 우울증은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일반적인 질병인데 말이죠.”

  서밤 “많이 힘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도 괜찮아요. 그건 절대 부끄럽거나 나약한 일이 아니에요. 오히려 용기 있는 일이죠. 변화를 위해 스스로 치료를 선택하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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