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지배계급은 여성을 탄압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 전체를 훨씬 효과적으로 억눌렀다. 지배계급은 이미 토지를 빼앗겨 빈곤해지고 범죄자로 몰린 남성들이 자신의 불행을 거세의 힘을 가진 마녀의 탓으로 돌리게 만들었고, 여성들이 당국에 저항해 획득한 힘을 자신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사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마녀사냥’은 특정 사람에게 근거 없이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을 이른다. 이는 실제 ‘마녀사냥’ 당시 수많은 여성이 있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쓰고 죽어갔던 것에서 유래된 말이다. 수만에 달하는 여성이 말 그대로 억울하게 죽어간 것이다. 페미니스트 학자 실비아 페데리치는 그의 저서 『캘리번과 마녀』를 통해 그 원인을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구축 과정에서 찾는다. 마녀사냥은 우매한 광기가 아니라 치밀한 계산이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로의 전주곡, 마녀
  저자는 마녀사냥을 교회와 국가가 공모한 정치적 기획이라고 주장한다. ‘마법’과 ‘이단’의 탈을 쓴 마녀사냥에 국가가 가담했던 이유는 자본주의로의 이행 과정에서 마녀사냥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녀사냥이 성행했던 시기이자, 자본주의 이행기 도중이었던 16~17세기 유럽에선 노동자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시되고 있었다. 노동자가 많을수록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구 증가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됐던 것과 달리 당시 서유럽은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독일의 경우 30년 전쟁과 기근 등으로 인구의 3분의 1이 감소한 지경이었다. 
 
  인구위기는 곧 경제위기와 직결됐다. 그렇다 보니 유럽 국가에 인구 정상화는 국가적 과제였다. 인구를 증가시키기 위해 유럽 국가들이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인구 재생산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16세기 중반부터 유럽의 모든 정부가 피임, 낙태, 영아살해에 대해 가혹한 처벌을 가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마녀사냥이 이러한 재생산 통제의 주요한 수단이었다고 강조한다. 마녀재판에서 재생산과 관련된 죄목이 두드러지게 나왔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마녀 박해에선 영아 살해에 대한 비난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수많은 여성이 낙태 알선, 영아 살해, 인간의 생식력 파괴 등의 죄목으로 ‘마녀’가 돼야 했다.
 
  이는 마녀라 지목됐던 이들의 직업군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마녀라고 지목당했던 이들 중 다수는 산파와 같이 피임이나 낙태 등의 출산과 관련한 지식을 보유한 여성이었다. 혹여 여성 산파가 남성이나 국가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여성과 공모해 출산을 통제할까 우려했던 것이다. 16세기 말엽부터 일부 유럽 국가의 여성은 산파술 시행에 대한 허가를 받지 못하게 됐다. 그 역할은 남성 산파에게 넘어갔고 산파술은 국가의 통제 아래 놓였다. 마녀사냥으로 여성에게서 출산과 관련한 모든 권리를 빼앗은 것이다.
 
  악마는 비재생산을 입는다
  “마녀사냥은 여성에게 새로운 성적 능력이나 승화된 쾌락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대신 ‘깨끗한 이불 속의 깨끗한 성’을 향한 기나긴 행군의 첫 출발로서, 여성의 성적 활동을 노동과 남성에 대한 서비스, 그리고 출산으로 탈바꿈시켰다.”
 
  비(非)재생산적인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모두 ‘악마적’이라는 이유로 금지됐다. 자본주의는 노동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배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노동에 들어갈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드는 모든 성적 활동은 점차 범죄로 규정됐다.
 
  ‘빗자루를 타고 다니는 늙은 여성’이란 마녀의 전형은 비재생산적인 섹슈얼리티에 대한 반감을 명확히 드러낸다. 저자는 마녀가 타고 다니는 빗자루를 남성 성기의 투사라고 해석하며 이는 더 이상 출산능력이 없는 늙고 추한 여성의 성생활에 대한 부정이라고 비판했다.
 
  연소자와 연장자 간의 사랑, 항문성교, 노출, 춤 등도 비재생산적이란 이유로 금지됐다. 비재생산적이란 철퇴에 가장 크게 맞았던 것이 동성애였다. 본래 ‘장작’이란 의미의 ‘Faggot’이란 단어가 현재까지도 남성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의미로 쓰이는 것 또한 마녀사냥의 잔재다. 마녀사냥 당시 동성애자들은 따로 화형할 가치도 없다며 마녀가 화형당할 때 장작으로서 던져졌다.

  여성을 억압하기 위한 마녀
저자는 마녀사냥이 여성의 신체를 노동력 재생산에 종속시켰을 뿐 아니라 여성의 힘의 원천을 파괴시키고 가부장제를 확립시켰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가족을 노동력 재생산 기지로 만들기 위해선 여성을 공격해 그들의 사회적 권력을 파괴하고 남성에게 종속시킬 필요가 있었다.
 
  여성을 ‘억압과 통제를 받아야만 하는 존재’로 만들고자 등장했던 것이 야만적이고 욕망에 찬 여성상, 즉 마녀의 여성상이었다. 말대답이나 논쟁, 욕을 하는 ‘반항적인 여성’은 마녀가 됐다. 남성의 권위나 교회에 강하게 도전하는 여성을 야만적인 마녀로 치부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통제를 손쉽게 정당화했다.
 
  이와 동시에 마녀사냥은 마녀와 악마와의 관계를 통해서 여성에 대한 남성적 권위를 공고히 하기도 했다. 중세 시대에 악마는 마법사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말썽쟁이에 불과했다. 이 하찮은 존재가 마녀사냥 시기에 들어선 마녀의 주인 또는 남편과 같은 역할을 하는 남성으로 변모한다. ‘남성’ 악마에게 순종적인 ‘여성’ 마녀라는 새로운 관계설정은 여성에 대한 남성적 권위를 강화했다.
 
  마녀사냥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를 공고히 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공동체적 유대까지 파괴시켰다. 마녀사냥 시기에 남성은 모든 여성에 대해 공포감과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웃 대다수가 ‘마녀’라고 화형을 당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아내나 딸이 마녀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여성끼리의 우정 또한 공모가 아니냐며 의심과 비난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여성 친구를 의미하던 ‘Gossip’이란 단어가 경멸조로 쓰이게 된 것도 이때부터 였다. 여성은 공동체 속에서 전혀 힘을 쓸 수 없었다.

  마녀사냥으로 여성이 패배하자 더 이상 마녀사냥 시대의 여성상은 쓸모가 없어졌다. 여성을 ‘공격’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제야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순결한 아내라는 여성의 모형이 마녀를 대신했고 가부장제가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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