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버튼 러셀은 마녀의 역사를 살펴본다. 마녀는 오랜 시간 동안 그 개념이 변천했다. 특히 그는 중세시대 마녀가 역사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이를 종교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중세 기독교에서 마녀는 악마숭배의 표상이었고 이는 마녀사냥의 바탕이 됐다. 악마숭배 개념으로서 마녀는 사라지고 있지만 현대에도 여전히 마녀의 역사는 이어지고 있다.
 
 

"마녀사냥은 본질적으로는 중세의 탓도 기독교의 탓도 아니며, 그렇다고 아리스토텔레스주의나 르네상스 주술의 탓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마녀사냥이란 인간성에 내재하는 하나의 결함, 즉 악을 타자에게 투영하여 그 사람들을 국외자로 규정함으로써 그들을 가차없이 벌하려 하는 빗나간 욕구가 취한 하나의 특정 형태였다."
 
  역사적 비극은 때때로 집단의 잘못된 신념에서 비롯된다. 제프리 버튼 러셀의 『마녀의 문화사』는 마녀사냥이 이교에 대한 배척과 여성에 대한 성적 편견의 결합 속에서 탄생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마녀사냥의 광기는 20세기 나치주의와 함께 인간의 악을 연구하기 위한 대표적 소재로 꼽힌다. 잘못된 신념으로 억압과 폭력의 근거를 만들어낸 사회는, 정신병에 빠진 것과 다름없었다.

  마녀의 원형
  저자는 마녀가 시공간을 초월한 유사점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고대 오리엔트와 그리스, 로마는 모두 유럽의 마술과 비슷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 예로 수메르의 마귀 중 하나인 릴리투나 그리스의 라미아는 남자를 유혹하는 여악마로 묘사되는데 이는 중세의 악마를 섬기는 마녀와도 유사점을 지닌다.
아프리카 마녀 신앙도 마찬가지다. 마녀는 대체로 나이 든 여성으로 묘사된다. 또한 집회를 열거나 아이들을 죽이는 행위 등은 두 마법 신앙에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저자는 유럽 마술의 다양한 주제 중 적어도 50개는 다른 사회들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인간에겐 마녀에 대한 선험적인 원형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름에서 출발한 핍박의 역사
  이러한 원형적 이미지는 중세로 오면서 악마를 숭배하고 부도덕한 여성이란 이미지로 정형화된다. 현대까지 이어지는 마녀에 대한 이미지는 마녀사냥 시대 때 핍박받은 마녀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다. 저자는 마녀사냥을 기독교와 연관 지어 설명한다. 중세 기독교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원론적 세계관은 마법을 마귀를 불러내는 행위로 간주했다. 이러한 ‘마녀’의 이미지는 중세에 이교에 투영돼 핍박의 근거가 됐다.

  중세 기독교는 그들을 제외한 모든 것을 이교라고 규정했다. 로마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들도 귀신이며 사탄에게 봉사하는 자들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에게 이교나 이교도가 행하는 마법과 주술은 기독교의 진리에 벗어나는 것이자 악마의 농간이었다. 이교도와 ‘마녀’를 동일시했던 것이다. 이처럼 이교 신앙이 악마의 것으로 치부되는 인식 아래에서 마법은 단순한 사회 범죄가 아니라 신에 대한 범죄였다.

  마법을 범죄로 여기는 인식에 이교 카타리파가 벌였다고 전해지는 부도덕적인 연희가 더해지자 이교도에 대해서 품행이 단정치 못하다는 식의 신념이 형성됐다. 카타리파의 연희에선 집단 난교와 영아 살해가 성행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중세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이교도의 연희에 ‘사바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는 후에 마녀들이 벌였다고 회자되는 ‘사바트’의 기본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이교도와 마녀들이 ‘사바트’를 여는 부도덕한 이들이란 신념은 후일 마녀사냥 광기의 실마리가 됐다. 그들에게 가하는 무자비한 폭력들이 ‘부도덕한 이들’이란 인식 때문에 정당화된 것이다.

  마녀사냥 당시 마녀라 고발당한 피고들에게 가해졌던 폭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사람들은 마녀의 몸에 악마가 남긴 악마의 표식이 있으며 그 부분은 찔러도 아프지 않다고 믿었다. 이를 찾기 위해 피고는 발가벗겨진 채로 온몸을 뾰족한 물건으로 찔려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피고는 자신이 마녀라고 자백할 때까지 고문을 당했는데, 엄지손가락을 비틀리거나 쇠못이 박힌 채찍대로 맞는 것은 물론, 석회수를 펄펄 끓인 욕조에 담가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대다수의 피고들은 고통에 정신을 잃고 자백했다. 자백을 많이 받아내는 고문법은 신뢰도가 높아졌고 다음 심문에서도 그 고문법이 사용됐다.

  하지만 마녀에게 폭력을 가해도 되는 이유로 일컬어졌던 사바트가 실제로 일어났다는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마술이 실제로 존재했던 적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의 여지가 많다. 사람들이 실재한다고 믿었던 상상 속의 내용은 실제로 일어난 것보다 긴밀하게 작용했다. 마녀는 그야말로 개념 속 존재였던 것이다. 이단자들의 조직이 기독교 사회에 대항하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한, 이단자를 악마숭배자로 둔갑시키는 것은 간단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역사의 뒤안길로 돌아가다
  광기의 역사는 17세기 중반부터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 길로 인도하는 데는 르네 데카르트의 영향이 컸다. 그는 우주는 애초부터 신에 의해 정해져 있어 정확하게 운행하기 때문에 마귀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근대의 기계적인 우주관에 따르면 마술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었다.

  이러한 쇠퇴는 제도 개편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1682년 프랑스에선 마술의 실재를 부정하고 마술과 마법에 대한 재판을 폐지하는 칙령을 내렸다. 이와 비슷하게 1736년 영국에선 ‘누구에 대해서도 마술, 마법, 주술, 강령을 이유로 기소, 소송, 소송절차를 개시하거나 수행해서는 안 된다’는 새로운 법률이 마련됐다. 공상에서 기원해 오랜 시간 맹위를 떨쳐온 악마적인 마술은 그것의 고향인 공상의 세계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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