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동안
‘춤을 제대로 췄느냐’ 묻게 되죠.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게 돼요”
 
여섯 살부터 한국무용을 배웠다. 대학에 입학한 스물일곱 살엔 이미 예술단 조감독이라 불리고 있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와 제97호 살풀이춤을 이수했고 최근엔 대전에서 무형문화재 제20호 살풀이춤도 이수했다. 현재 ‘채향순 중앙무용단 단장’으로서 제자들을 이끌며 전통예술을 기반으로 한 안무창작과 공연연출에도 힘쓰고 있는 채향순 교수(무용전공)를 만나봤다.
 
-한국 전통예술 분야를 다양하게 배우셨어요.
“전공은 한국무용이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선 기악부터 소리까지 다 배웠어요. 옛날엔 가무악(歌舞樂)을 한꺼번에 배울 수 있는 교육과정이었죠. 대학 전공도 판소리였어요. 국악을 모르고도 한국무용을 할 순 있지만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라고 생각해요.”
 
 
-공연 연출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80-90년대 때 한국무용과 타악이 위주인 행사가 많이 열렸어요. 외국 협연자들도 많이 와서 함께 춤추고 소리하고 악기를 두드렸죠. 그런 가무악(歌舞樂) 공연들이 많이 있었던 시절이에요. 그 당시에 예술단 조감독으로 있으면서 많은 작품을 만들기도 했죠.”

-정말 오랫동안 한국무용에 매진해오셨네요. 그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지금도 대학 생활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스물일곱 살 때 중앙대에 입학했는데요. 이른 나이는 아니었죠. 동기들은 스무 살이니까, 거의 제자뻘이었어요. 그런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고 떠들고 커피 마시고. 새로운 인생을 산다고나 할까, 젊음을 되찾은 느낌이었어요. 아직도 그때를 잊을 수가 없네요.(웃음)”

-중앙대에 뒤늦게 입학하신 이유가 있었나요?
“옛날에 선생님들께서 ‘공부하면 뭐해, 춤만 잘 추면 됐지’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대학에 가지 않고 바로 외국 순회공연을 돌았어요. 하지만 훗날 후학 양성을 위해선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마침 중앙대 음악대학에 국악과가 생긴 지 2년밖에 되지 않아 인재를 영입하던 시기였죠.”
 
-지금도 무용을 배우러 다니신다고 들었어요.
“지난해에 무형문화재 제20호 살풀이춤을 이수했어요. 서울권의 중요무형문화재와 다르게 무형문화재는 지방문화재예요. 일요일마다 가방을 짊어지고 지방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무형문화재를 배우고 있죠.”
 
-새롭게 배우는 것들이 정말 많을 것 같아요.
“작품 세계에 많은 도움이 돼요. 각 지방 기방마다 사사했던 춤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선생님 한 분이 가지고 있는 자산만 해도 정말 크죠. 그래서 국가 차원에서 이걸 무형문화재로 지정해서 많은 사람들이 배울 수 있게 하고 있어요. 잘 알려지지 않은 깊은 전통이 숨어있어요.”

-이미 인정받은 ‘춤꾼’이신데도 여전히 배움에 정진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어요.
“자기만족인 것 같아요. ktx 타고 지방 내려가서 새로운 춤을 배우는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배우는 게 우리 제자들이 덜 고생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학생들이 배우러 다니려면 그만큼 발품을 팔아야 하지만 제가 혼자 다 배우면 제자들은 제게 다 배울 수 있으니까요.”

-제자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시네요. 제자들과 일화 중에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무용과로 오기 전에 잠깐 중앙대 타악연희과 교수로 있었어요. 국악대학 건물이 지어지기 전이었죠. 그래서 음악대학 옆 산등성이에 있는 텐트를 썼어요. 에어컨도 하나 없이 여름에는 굉장히 덥고 겨울은 겨울대로 너무 추워서 장갑을 끼고 북을 쳤죠.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제자들과 쉴 틈 없이 연습했죠.”

-제자들과 함께하는 ‘채향순 중앙무용단’의 행보가 궁금해지네요.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 취업이라고 생각해요. 예술 분야가 졸업 후에 갈 곳이 그다지 넓지 않거든요. 학생들이 졸업하고 갈 데가 없으면 다시 선생님을 찾아가서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여러모로 부담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채향순 중앙무용단에서 연습할 수 있도록 했어요. 제 무용단이 학생들에게 잠깐 들렀다 가는 정거장이어도 만족해요. 원하는 단체에 들어가거나 개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실력을 만들어주는 게 우선이죠.”

-한국무용이 앞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길엔 무엇이 있을까요.
“우선 우리 전통을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방에 내려가 춤을 전수하면서 서울엔 알려지지 않은 전통춤들이 정말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한국창작무용도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전통이라는 뿌리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이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힘들다고 피해간다면 한국무용이 발전할 수 없을 거예요. 전통은 꼭 배워야 하죠.”

-뒤따라올 제자들을 위해 한 마디 해주세요.
“예술은 참 고달파요. 맘껏 놀고 싶은 나이에 놀지도 못하고 연습에만 매진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노력하다 보면 끝내 길이 열린다고 생각해요. 특히 예술은 창작 작업이니까 얼마든지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딜 수도 있죠. 제자들이 문이 열리기 전에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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