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의식과 언어생활로
사회를 개선할 수 있다
 
지금부터 제가 몇 가지 단어를 나열해보겠습니다. 이 단어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한번 찾아보시겠어요? ‘남녀노소’, ‘소년 소녀 합창단’, ‘남녀공학’, ‘신사숙녀’, ‘자녀’, ‘남녀상열지사’…. 안상수의 「사회적 의사소통 연구」에 따르면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남성 지칭이 여성 지칭을 선행한다는 점입니다. 반대의 예도 있습니다. ‘어떤 연놈이 바람을 피워?’는 어색하지 않지만 ‘어떤 놈년이 바람을 피워?’는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비하하는 단어 앞에서 여성 지칭이 남성 지칭을 선행하는 사례죠.
 
  직업을 지칭하는 단어에 성 이미지가 굳어져 버린 경우도 많습니다. ‘여배우’, ‘여류작가’, ‘여의사’, ‘여검사’라는 단어는 입에 익숙하지만 이 단어들 첫 글자에 ‘남’이 붙으면 낯선 단어가 돼 버립니다. 『사회언어학: 언어와 사회, 그리고 문화』는 지칭 대상이 여성임을 굳이 드러내는 예들은 이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을 예외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반영한다고 전합니다.
 
  ‘사람’, ‘인간’을 지칭하는 대명사에 남성 지칭 명사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한국어의 ‘그’와 영어의 'He‘, ‘Man'은 양성을 총칭하는 대명사로 사용합니다. 프랑스어에서 혼성 복수를 지칭할 때는 남성 복수 대명사인 ‘ils’를 사용합니다. ‘사람’, ‘인간’을 의미하는 대명사를 남성 지칭 언어로 고정해버린 현상이죠. 최명원의 「언어와 성」에서는 이런 현상은 사회적 성 역할의 구분과 이에 따른 불균형이 언어관습에 반영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혹시 이렇게 언어 안에 성 이미지가 고착돼 있던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기자는 이런 언어 속에 성 이미지가 담겨있으며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습니다. 일생동안 당연하게 사용해오던 언어에 의심의 물꼬를 틀 생각을 하지 못했죠.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기사를 쓰는 학생 기자의 삶을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언어’에 민감해졌기 때문입니다. 언어란 덮어두고 지나간다고 덮을 수 있는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은 하루에도 수백 수천 마디의 대화를 나누고 글을 읽으며 언어에 의존한 채로 살아가야 하니까요.
 
  기자는 언어의 힘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사피어-워프 가설’에서도 말하듯 언어 표현은 언어 사용자의 인식에 영향을 미치며 이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강건하게 믿습니다. 하지만 언어는 사람들 사이에서 굳어진 약속입니다. 이런 언어의 사회성 때문에 오래전부터 굳어져 온 표현을 한순간에 바꾸기는 꽤 어려운 일입니다.
 
  요즘 사회는 이전보다 성 감수성이 예민해졌으며 성평등 인식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말에는 가부장적 요소가 알게 모르게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는 언어관습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성차별적인 언어표현들이 이미 굳어져 버렸다고 이를 묵인해서는 안 됩니다. 말을 하는 사람의 의식이 바뀌면 개선된 의식이 언어에 반영되고 이것은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언어를 사용할 때 건강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중심을 세워야 합니다. 모두가 건강한 인식으로 변화를 만들어 ‘우리말’ 안에 올바른 가치를 담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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