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따로 진행한 폴리아모리스트와의 인터뷰 내용을 대담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회자: 폴리아모리(Polyamory)가 무엇인지 알고 계신가요? 사실 아직 한국에선 개념 자체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폴리아모리를 알아보기 위해서 실제 폴리아모리스트 두 분을 모시고 대화를 나눠보겠습니다.
기용(24): 안녕하세요. 심기용입니다.
은하(익명): 잘 부탁드려요.
 
Q. 폴리아모리는 무엇인가요?
심: 우리나라 말로는 비독점적 다자연애라고 번역됐어요. 혹자는 폴리아모리를 더 큰 개념인 논 모노가미(Non monogamy)라고 부르기도 해요. 일부일처제가 아닌 모든 형태라는 거죠. 그만큼 스펙트럼이 넓어요. 보통 폴리아모리하면 ‘다자연애’부터 떠올리는데, 다자연애 자체는 폴리아모리에서 중요하지 않아요. 멀티 파트너십은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죠. 오히려 방점이 찍히는 곳은 비독점적이란 부분이에요. 비독점적이기 때문에 다자연애가 가능하죠.
송: 맞아요. 폴리아모리를 지향하더라도 1:1 관계를 맺을 수 있어요. 폴리아모리에서 중요한 건 독자 또는 다자라는 형태가 아니라 그 각각과 맺는 관계죠. 자꾸 다자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까 이해하기도, 관계 맺기도 어려운 것 같아요.
사: 비독점적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나요?
송: 서로 소유하려 들지 않아야 해요. 다른 연인에 관한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적인 영역에 대해서도요. 독점적 연애를 하다 보면 본인도 상대도 서로를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잖아요. 그러지 말고 상대의 사적인 영역을 지켜주며 최대한 존중하자는 거죠.
심: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일부러 ‘연애’라는 관계를 맺지 않아요. 연애라는 관계로 맺어질 땐 어느 정도 의무가 생긴다고 생각하거든요. 서로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지만 관계를 정의하진 않죠. 사랑은 질투나 소유욕을 기반으로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거예요.
 
Q. 폴리아모리스트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심: 한 사람이 좋아서 연애를 시작했어요. 근데 막상 연애를 해보니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제가 상대를 구속하는 것도, 상대가 저를 구속하는 것도 말이죠. 처음엔 그냥 제가 연애랑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제가 사랑을 하지 않는 건 아니었거든요. 연애라는 구도가 이상하다고 느껴졌어요.
송: 맞아요. 저도 기존 연애방식에서 그게 답답했어요. 구속하면서 서로 힘들어지니까요.
심: 결정적으로, 저는 질투하지 않아요. 통념적으로 연인관계에서 질투를 느낄만한 상황에서 질투심을 느끼지 않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대가 행복감을 느낀다면 차라리 그게 좋다고도 생각했어요. 이런 생각을 주변에 말하니까 누가 폴리아모리라는 개념을 설명해주더라고요. 그래서 깨닫게 됐죠. 나는 폴리아모리스트구나.
사: 은하님도 질투하지 않으시나요?
송: 저는 조금 달라요. 저는 질투라는 감정을 분명히 느껴요. 폴리아모리를 지향하기 전에는 질투심이 강한 편이기도 했죠. 그런데 제 연애 패턴을 돌아보니까 원래 상대에게 분명한 감정이 있는 상태로 다른 상대를 향한 감정이 생기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애인과 함께 고민하다가 ‘폴리아모리’라는 개념을 알게 됐어요. 수많은 대화 끝에 폴리아모리를 하자고 합의했죠. 아직도 조금 혼란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제겐 이 방식이 맞는 것 같아요.
심: 폴리아모리 커뮤니티 내에선 질투를 대체하는 감정을 ‘컴퍼션(compersion)’이라고 불러요. 상대가 행복해한다면 다른 상대와의 연애라도 같이 기뻐하는 거죠. 하지만 폴리아모리스트 모두가 이런 감정을 강렬하게 느끼진 않아요.
사: 상대가 좋으면 나도 좋다니, 어떻게 보면 희생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심: 그렇진 않아요. 당연히 저도 상대에게 사랑받아야 하고, 제게 시간을 써주지 않으면 서운하기도 하죠. 다만 상대가 좋아하는 다른 것들에 대해서 질투하지 않을 뿐이에요.
 
Q. 폴리아모리의 연애방식이 궁금해요.
송: 사실 저는 최근에 꽤 힘들어하고 있어요. 원래 상대와 아주 예전부터 폴리아모리에 대해서 합의했지만, 막상 이게 실제로 닥치니까 또 다르더라고요. 상대들도 저도 많이 힘들어하고 있어요. 아직까진 두 분 다 오롯이 제게만 에너지를 쏟고 있는데 저는 그러지 못하니까. 양쪽 다 서운해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죠. 상대들은 이 관계가 유지되려면 자신도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할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심: 저는 정말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봐요. 사랑의 총량은 정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해요. 사랑은 한정된 분량 중 일부를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에 발생하는 거죠. 다만 돈이나 시간, 에너지같이 한정된 자원에 대해선 분배가 중요해요. 합의점을 찾아야 하죠. 상대가 다른 분을 만나는 것도 합의점을 찾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자원을 안배하는 정도가 사랑의 척도는 아니에요. 서로가 뭘 원하고 어떤 상태인지를 파악하고 조율하는 것이 더 중요하죠.
사: 질투 말고 힘든 부분은 어떤 것이 있나요?
심: 보통은 상대가 다른 상대를 사랑하는 이유를 자신이 만족시켜주지 못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충족시켜주지 못했다는 죄의식을 가지거나 자존감이 낮아지기까지 하는 걸 봤어요.
송: 사실 그게 아닌데. 저는 모자란 부분을 충족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각각 고유의 존재로 그 사람들을 사랑하는데 말이죠.
사: 폴리아모리도 정말 쉽지 않네요.
송: 그렇죠. 그런데 이 모든 고민들이 독점적인 일대일 연애를 한다고 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런 것들이 단지 폴리아모리라는 사랑 방식의 문제는 아니죠.
심: 폴리아모리를 하면 거의 구속받지 않아요. 일을 하면 일을 하기 때문에 행복하고, 상대를 만나면 상대를 만나서 행복하죠. 그 순간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요. 감정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상대도 많아지죠.
송: 오히려 사랑이 깊어지기도 해요.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사랑에 대해서 다시금 고민해보게 되니까 제 마음을 성찰해 보게 되죠. 당연하지 않으니까 더 소중해져요.
 
Q. 폴리아모리에 대해 수 많은 오해들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오해들이 있나요?
심: 가장 대표적인 오해는 그거죠. 결국 바람피우는 거 아니냐는 인식. 누군가는 저한테 대놓고 그건 바람피우는 거라고 말하더라고요.
사: 아. 저도 주변에 폴리아모리라는 개념을 설명하다가 양다리 아니냐는 얘길 들었어요.
심: 하지만 폴리아모리와 바람피우는 건 달라요. 폴리아모리에선 상대방과 합의가 필수적이죠. 상대가 다른 상대들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어요. 바람피우는 거랑은 확연히 다르죠.
송: 폴리아모리를 무책임한 관계 맺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더라고요. 어떤 분들은 무책임하게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기 위한 방편으로 폴리아모리란 개념을 이용하기도 하고요. 자유연애와 폴리아모리는 다른 방식인데 말이죠. 이런 오해들은 다자라는 형태에만 집중한 결과 같아요.
심: 진짜 사랑을 못 해봐서 그렇다고 하는 분도 많아요.
 
Q. 왜 그런 오해들이 생기는 걸까요?
심: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연애’는 질투를 본질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질투하지 않으면 사랑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죠. 사랑에 대한 고정관념이 존재하고, 그걸 심지어 규범으로 삼고 있잖아요. 그래서 그 범주 밖 사랑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송: 사실 사람들이 폴리아모리라는 개념을 몰랐을 뿐, 그런 마음은 예전부터 존재했다고 생각해요. 저희 부모님도 마찬가지죠. 어머니랑 아버지는 결혼생활을 계속하고 계시지만, 두 분 모두 애인이 몇 번 있었어요. 그런데도 어머니께 제가 폴리아모리스트라고 밝히자 정신 차리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자신은 애인분과 아버지 모두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요. 이 대화를 하면서 사실 우리는 모노가미, 즉 독점적인 1:1 관계를 완벽하게 하고 있지도 않으면서 폴리아모리스트들에겐 너무 쉽게 손가락질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심: 관계를 상상할 때 더 풍요롭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사랑이란 말 하나에 너무 많은 관계를 퉁 쳐버리고 있는데. 나를 기쁘게 하는 강렬함 모두가 사랑이라면, 그 사랑의 양상도 다양할 수 있잖아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사랑만이 ‘진짜 사랑’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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