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쥴 앤 짐>의 한 장면. 영화 <쥴 앤 짐>은 프랑수아 트뤼포감독의 1961년도 작품이다. 친구인 쥴과 짐 모두가 카트린과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뤘다. 카트린은 쥴과의 결혼 생활 도중 짐과도 사랑에 빠진다. 쥴이 짐과 카트린의 사이를 인정하며 셋이서 함께 동거하기도 한다.

 

지난해 6월 BBC는 폴리아모리가 미래의 사랑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비독점적 다자간 연애를 의미하는 폴리아모리는 한국에선 논의가 그다지 활발하지 않지만 유럽 등지에선 큰 반향을 일으키는 중입니다. 자신을 폴리아모리스트라고 커밍아웃하는 이들이 나타나고 폴리아모리의 사랑 방식에 대한 강연이 열리고 있죠. 이번주 학술부는 우리에겐 아직 생소한 폴리아모리를 다뤄봤습니다.

 
 
 
폴리아모리를 말하기 이전에 일부일처제를 알아야 합니다. 일부일처제야말로 현대의 사랑방식을 규정짓는 가장 근원적 제도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일부일처제는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인간의 뇌에 ‘일부일처제’가 프로그래밍 되어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본능과는 하등 상관없는 다른 이유 때문일까요?
 
  마르크스의 절친한 친구이면서 그 역시 19세기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였던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는 그의 저서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에서 현재의 일부일처제가 어떤 사회적 배경에서 나타난 제도인지 분석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엥겔스는 일부일처제가 인간의 본능이나 본성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계급사회 출현의 산물이라고 주장하죠.
 
  엥겔스는 미국의 인류학자 루이스 헨리 모건(Lewis Henry Morgan)이 1877년에 출간한 『고대사회』를 바탕으로 가족역사의 변화 양상을 분석하는데요. 그는 가족역사가 군혼(群婚) - 대우혼(對偶婚) - 일부일처제로 변했다고 말합니다.
 
  군혼에서 대우혼으로
  엥겔스는 가장 원시적인 가족형태를 군혼이라고 주장합니다. 군혼이 이뤄지는 집단에선 여성은 남성 집단의 아무나와 성관계를 할 수 있으며 반대로 남성도 여성 집단의 아무나와 성관계를 할 수 있죠.
 
  사실 원시시대엔 근친상간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 성관계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형제나 자매 사이에선 성관계가 빈번하게 이뤄졌죠. 이러한 제도는 서서히 변화를 맞이합니다. 친형제자매 사이의 성관계가 금지됐고, 그다음엔 친형제자매가 낳은 자식간의 성관계가 금지됐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엥겔스는 자연도태의 원리가 적용됐다고 말하는데요. 이는 모건이 다윈주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군혼 가족제도는 자연스럽게 모계(母系)사회를 만듭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알 수 없어도 어머니는 확실히 알 수 있기 때문이죠. 즉 모계 혈통만이 인정되는 사회인 것입니다.
 
  군혼에서 발전한 가족제도가 대우혼인데요. 대우혼은 한 혈족의 형제자매가 다른 혈족의 형제자매와 교차해서 짝짓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대우혼 방식은 군혼 방식이 가지는, 더 정확하게는 근친상간이 가지는 자연 선택적 열등함을 극복하기 위해 고안됐다고 엥겔스는 말합니다. 그는 군혼 제도 아래서도 대우혼이 행해지기도 했다고 분석했죠.
 
  일부일처제의 출현
  군혼과 대우혼 등의 가족제도는 애초에 수렵에 기반하고 있었는데요. 이는 농경문화가 발전하면서 변화를 맞이합니다.
 
  “그들은 조금 감시나 하면, 가축들이 끊임없이 대량 번식하여 젖과 고기를 풍부하게 공급받을 수 있었다. 이전의 식량을 얻던 방법은 이제 중요성을 잃었다. 생활을 위해서 필수였던 수렵이 이제는 사치가 되었다./ 이제 재산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 새로운 재산은 누구의 것인가?”
 
 
  시간이 갈수록 가족이 소유하는 재산이 커졌고, 농경과 목축을 담당하던 남성은 그 지위가 상승했습니다. 잉여생산물은 곧 상속의 개념을 만들어냈죠. 상속을 할 수 없다면 사실 사적 소유는 허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남성은 상속을 위해 ‘자기 아들’을 구분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새로운 제도를 고안해 냅니다. 바로 일부일처제입니다.
 
 엥겔스는 일부일처제가 사유재산의 상속을 이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추측합니다. 남성은 상속자를 정확히 밝히기 위해 여성을 억압합니다. 이러한 모계 사회의 몰락과 부계 사회의 출현을 엥겔스는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라고 일컬었습니다. 부계사회에서 여성은 사적 소유의 확대와 상관없는 가사노동 종사자로 전락했기 때문이죠.
 
  이러한 엥겔스의 분석은 19세기 인류학적 자료를 기반으로 하고 일부일처제의 기원을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는 한계를 가집니다. 하지만 일부일처제가 ‘주어진 것’이 아닌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그의 주장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획기적인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부일처제는 결코 개인적인 성애의 소산이 아니었다. 그것은 성애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결혼은 언제나 이해관계에 의한 거래였기 때문이다. 일부일처제는 자연적 조건이 아니라 경제적 조건에 기초한 최초의 가족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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