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고 업적은 유례없는 국민 대통합을 만들어낸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향한 국민 여론이 거세지면서 유행한 풍자다. 실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국민대통합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 얼마나 센스 넘치는 풍자인가!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농담이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겨 들을 수 없는 말이다. 일명 ‘국민대통합’이 담고 있는 위험한 사상 때문이다. 애초에 국민대통합을 리더의 업적이라고 치하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시끄러운 제도다. 시끄럽다는 것은 그 자체로 효율성을 의미하거나 그 반대로 비효율성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애초에 경제적인 가치는 이 안에 들어있지도 않다. ‘시끄러움’이 말하는 것은 그보다도 자유, 평등 그리고 박애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이 지향하는 바와 같다. 우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두려움 없이 내뱉을 수 있어야 하고 태생적이고 우연적인 특징으로 차별을 받아서도 안 된다. 이건 기본 상식이다.

  국민대통합이라는 단어가 이러한 가치까지 모두 담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결정 나기까지 우리는 촛불 시위와 탄핵 반대 시위 사이 극명한 갈등을 바라봐야 했다. 이러한 시대 흐름 속에서 대통합을 말하는 것은 의무인 것 마냥 포장됐다.

  탄핵 반대 시위 대부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향한 무조건적 숭배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시위가 폭력이나 혐오로 번지는 것은 경계해야 하겠지만 그들의 사상을 우리 마음대로 배제할 순 없다.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쩌면 이 현상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교훈은 비단 한국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울타리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끝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낳았다. 소수자의 목소리를 짓밟는 것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이가 과반수 득표로 세계 최강대국의 대통령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는 미국이 만들어낸 ‘국민대통합’이 허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한다. 모두를 미국인이라고 뭉뚱그릴 순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선 아직 대통합의 기치가 죽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고개를 빼 들고 있다. 국내 일부 정치인들은 국민대통합을 마치 한국 사회가 풀어내야 할 숙제라고 제시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국민대통합은 과연 무엇일까.

  그들의 발언들을 토대로 국민대통합의 의미를 파악해보자면 ‘하나 된 목소리가 되어 발전해서 한번 잘살아 보자’는 것이다. 여기서 개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통합된 ‘나’만이 흐리게 보일 뿐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국민대통합’이 언제든지 폭력성으로 무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국가에 괜한 분란을 만들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충고를 우리는 많이 들어왔다. 이러한 조언에도 불구하고 의견을 피력하는 이는 여지없이 ‘종북 빨갱이’, ‘크게 한탕 해보려는 놈’이라는 근거 없는 모욕을 들어야만 했다. 그렇게 한국 사회는 배제를 통한 통합을 추구해 왔다.

  국민대통합이라는 단어가 이 악습의 고리를 끊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오히려 빛 좋은 개살구가 되어 폭력을 묵인하는 정당성으로 둔갑하지는 않을까. 한국 정치권에선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분법적인 편 가르기가 만든 최악의 결과를 진절머리 나게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한 때다. 곧 있으면 한국 헌정 역사상 최초의 장미 대선이 치러진다. 지금 한국 사회의 골조는 무너졌다. 지금은 그 기초부터 닦아야 한다. 시민들은 촛불을 통해 대한민국 자체가 병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제 바로 세워야 할 때다. 이를 위해선 다양한 충고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하지만 국민대통합은 그것을 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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