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중 자행된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책임과 피해자의 상처 회복에 관한 논의가 대두됐습니다. 그 흐름 속에 등장한 것이 바로 ‘정치적 용서’였죠. 기자는 중대신문 제1889호에서 ‘용서’를 기획하며 한국의 정치적 용서를 고민했습니다. 용서엔 크게 피해자와 가해자가 존재합니다. 현재 한국은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의 역사에 서 있습니다.

  일본과의 관계에서 한국은 피해자입니다. ‘위안부’ 문제는 우리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죠. 2015년 12월 28일 한국과 일본의 ‘위안부’ 합의가 타결됐습니다.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하고 ‘위안부’ 재단에 10억 엔을 건넨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죠.

  하지만 10억 엔은 법적 배상이 아닌 지원금의 명목이었습니다. 공동기자회견에선 ‘이번 발표를 통해서 동(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 될 것임을 확인’한다고 못 박기도 했죠. 이를 빌미로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더는 ‘위안부’에 대한 사죄나 용서를 요구해선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일본 정부가 그나마 책임을 인정한 게 어디냐며 할머니들께서 이제는 용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 합의는 용서가 될 수 없습니다. 애당초 일본 정부는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지 않았죠. 일본 정부는 여전히 일본군과 정부 주도의 강제동원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주장합니다. 일본군의 강제 연행이 드러나는 문서들이 발견되고 피해자 할머니들이 ‘우리가 바로 증거’라고 말씀하시는데도 말이죠.

  용서는 망각이 아닌 기억에서 출발합니다. 용서는 잘못을 인정하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협의하는 과정을 포함하죠. 일본이 주장하는 용서는 망각을 부추길 뿐입니다.

  한국이 역사적으로 피해자의 입장에 있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가해자로서의 한국도 분명 존재하죠. 1960년부터 1975년까지 일어난 베트남 전쟁에 파견된 한국군은 민간인을 학살하고 베트남 여성들을 성폭행했습니다. 베트남 전역엔 60여 개의 한국군 증오비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그중 하나인 빈호아 마을의 한국군 증오비는 ‘한국군들은 이 작은 땅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저질렀다. 수천 명의 양민을 학살하고, 가옥과 무덤과 마을들을 깨끗이 불태웠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2013년 글로벌 포스트는 국방부가 베트남에서의 학살 성폭행 등의 행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보도했습니다. 우리 정부 측의 구체적인 진실 규명은 당연히 없는 상황이죠. 이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를 대하는 태도와 닮았습니다.

  우리는 피해자로서도 가해자로서도 ‘용서’에 실패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위안부’ 할머니들에겐 용서를 강요하며, 베트남엔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상처는 덮어두면 곪을 뿐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상흔도 우리가 입힌 상흔도 제대로 치유하지 않고서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치유는 제대로 용서하고, 또 용서 받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진짜’ 발전과 관계 회복을 위해 이제는 진정한 용서를 고민할 때입니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