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 걸기’는 어떤 일이나 형상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거나 훼방을 놓는 행위를 뜻합니다. 이번학기 기획부는 불편함을 당연시하는 우리 사회에 딴지를 걸어보려 합니다. 두 번째 딴지는 바로 ‘이력서’인데요. 대학생이라면 취업을 준비하지 않더라도 아르바이트를 위해 이력서를 접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최근 발의된 ‘채용절차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으로 인해 이력서가 논의의 대상으로 도마에 올랐습니다. 이력서에서 부착하도록 요구하는 사진이 많은 차별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죠. 하지만 과연 이력서의 차별적 요소는 사진뿐이었을까요? 구직자를 샅샅이 파헤치는 이력서에 딴지를 걸어봤습니다.
 
 
이력서에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항목을 파악하기 위해 언론사 2곳, 대기업 3곳, 공공기관 4곳, 교육기관 1곳까지 총 10곳의 이력서를 분석해 재구성했습니다. 각각의 항목이 담고 있는 차별적 요소들을 발가벗겨봤습니다.
 
 
 
  #사진부착: 8곳 요구
  대부분의 기업에서 이력서에 사진을 부착하도록 요구한다. 심지어는 사진의 규격과 기한, 구직자의 스타일까지도 규제하고 있다. ‘3~6개월 이내에 찍은 반명함판 크기의 용모단정한 상반신 사진’이 바로 그것이다.
 
  「고용정책 기본법」에서는 채용 과정에서의 성별, 연령, 인종 등으로 인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사진은 이 모든 것을 한번에 드러낸다. 사진만 있다면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원하는 조건의 구직자를 걸러낼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가장 많은 차별을 조장할 수 있는 사진은 여전히 당연시되고 있다.
 
  증명사진에서 한눈에 보이는 인물의 피부색은 인종을 드러낸다. 인종을 따로 묻지 않아도 사진을 통해 한국인이 아닌 사람을 구별해낼 수 있다. 채용 현장에서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인종이라는 비직무적 요소로 구직자를 평가할 수 있다. 이렇게 이력서에서부터 걸러진 구직자는 면접이라는 직무적 능력에 대한 평가를 받을 기회조차 잃게 된다.
 
  구직자들은 사진으로 인해 인종 외의 부분에서도 차별을 받을 수 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우리나라의 속담처럼 예쁘고 멋진 사진에 눈이 가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실제로 취업준비생인 김소연씨(가명·25)는 사진에서 드러나는 구직자의 외모가 채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스펙이거나 남들보다 부족한 스펙을 가지고 있어도 외모가 뛰어난 사람을 뽑는다고 들었어요. 사진은 심사의 객관성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생각해요.”
 
  한편 사진의 준비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구직자들에게 경제적·시간적 부담감을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박정준 동문(중국어문학전공 10학번)은 이력서에서 요구하는 3~6개월 이내의 사진을 찍기 위해 시기마다 사진관을 찾았다. 이력서 전용 사진관에서 헤어와 메이크업까지 받으면 9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신세윤 동문(중국어문학전공 10학번)은 이력서에 부착할 사진을 찍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인사담당자들이 본다고 생각하니까 사진에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어요. 구직자 입장에서는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니까요.”
 
 
  #병역 사항: 10곳 요구
  이력서에서는 병역 사항에 대해 군복무기간과 군별, 계급, 면제 사유 등 세부적인 사항까지 요구하고 있다. 면제 사유에는 어떤 이유로 면제 판정을 받았는지를 설명해야 하고 여성의 경우 ‘여성’을 미필 사유로 기재해야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면제 사유를 통해 드러날 수 있는 장애 여부에서는 엄연히 차별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병역에 대한 면제 사유로는 장애 중 그 정도가 심하지 않은 경증 장애가 있다. 일부 경증 장애인은 보조 장비 없이도 직무를 수행하는 데 지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력서에 장애를 기재하는 순간 직무 수행 능력과는 별개로 취업의 기회가 박탈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병역 사항 기재는 장애인 차별뿐만 아니라 군필자와 미필자 사이의 차별을 조장할 수도 있다. 구직자의 군필 여부를 기재하도록 하는 것은 군필자 또는 면제자가 아닌 경우에는 입사지원에 제한을 두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우리나라의 「병역법」에 의하면 근로자가 병역의 의무를 수행해야 할 경우 휴직으로 처리하고 복직을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런 휴직과 복직이 번거로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미필자를 이력서에서부터 가려내겠다는 것이다. 
 
 
  #국적: 5곳 요구
  국적으로 인한 차별 역시 「고용정책 기본법」을 통해 금지하고 있는 사항이다. 그러나 기업에서는 이력서에 국적을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국적을 묻는 이력서의 항목은 다양한 국적의 구직자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 
 
  과거에는 구직자의 국적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국가 간의 이동이 활발하지 않던 때는 대부분 구직자가 자국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국제결혼과 이주근로자 수의 증가에 따라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에 따라 이력서에 기재하는 국적은 더 큰 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시되고 있다. 특히나 이주근로자는 법적으로 외국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력서에도 외국을 국적으로 기재해야 한다. 이 경우 이주 근로자는 우리나라 기업의 직무에 대한 충분한 숙련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채용 과정에서 배제될 수 있다.
 
 
  #가족관계: 1곳 요구
  이력서에 가족관계 항목이 있는 H대기업에서는 가족의 생년월일에서부터 학력, 직장명, 직책, 동거 여부 등 세부적인 부분까지 묻고 있다. 구직자의 가족 구성원이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건 구직자의 직무 수행 능력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신세윤 동문은 가족관계가 불필요한 정보라고 말했다. “가족 구성원의 학력과 제 능력은 상관이 없는 부분이잖아요. 가족관계에 대한 질문은 인신공격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아요.”
뿐만 아니라 가족관계 항목은 또 다른 불공정한 채용을 야기할 수 있다. 바로 구직자의 가족구성원으로 인한 차별이다. 예를 들어 구직자의 가족 구성원에 자회사의 경영진과 같은 인물이 포함돼 있다면 해당 구직자에게 인사담당자들의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용민 동문(중국어문학전공 10학번)은 면접 당시 이력서에 기재된 가족관계로 인해 차별을 느낀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면접에서 면접관들이 다른 구직자의 이력서에 기재된 가족관계를 언급한 적이 있었어요. 그 때 ‘저 사람은 붙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생년월일 및 주민등록번호: 7곳 요구
  우리나라에서는 「연령차별금지법」을 통해 구직자가 연령으로 인해 겪을 수 있는 차별을 방지하고 있다. 하지만 총 10곳의 기업 중 무려 9곳에서 연령을 드러낼 수 있는 생년월일 및 주민등록번호 앞자리를 요구했다. 기업은 구직자의 연령대를 파악해 원하는 연령의 구직자만을 뽑고 있는 것이다.
 
  채용 과정에 있어서 연령차별은 이미 공공연한 문제다. “아무래도 구직자의 나이가 많을수록 기업에선 꺼려지겠죠.” 김소연씨는 취업을 위해 다녔던 학원에서 연령이 낮을수록 취업이 잘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신입사원이 상사보다 나이가 많을 경우 신입사원과 상사 둘 다 불편함을 느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결국 기업의 채용 과정에서 연령차별이 일어나는 이유는 우리나라 기업에 뿌리박혀있는 직급에 따른 권위주의 때문이었던 것이다.
 
  주민등록번호 기재가 주는 문제는 연령차별뿐만이 아니다. 주민등록번호는 무작위로 부여되는 미국의 사회보장번호와는 다르다. 생년월일과 성별, 출생등록지 등 지극히 개인적인 정보가 담겨있다. 
이력서에서는 이런 개인정보를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력서가 구직자와 기업 사이에 명확한 근로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성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심각한 개인정보의 침해다. 만약 기업에서 보험가입이나 임금 지급을 위해 해당 정보가 필요하다고 해도 개인정보에 대한 요구는 채용 후에나 이뤄져야 하는 문제다. 
 
  그러나 현실에서 개인정보의 공개는 일종의 평가지표처럼 여겨지고 있다. 김소연씨는 이력서의 주민등록번호를 ‘2xxxxxx’로 기재했다가 이력서를 첨삭 받는 과정에서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개인정보 공개가 신뢰성에 대한 평가 지표라는 점을 납득할 수 없었어요. 제 개인정보를 당연하게 제공할 필요는 없잖아요.”
 
 
  #결혼 여부: 3곳 요구
  「고용정책 기본법」에서 결혼을 이유로 한 채용 과정에서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기에 결혼 여부에 대한 항목은 많은 기업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여전히 몇몇 기업은 결혼 여부를 평가지표로 적용하고 있다. 이력서에 기재되는 결혼 여부는 채용 과정에서 기업이 기혼자를 걸러내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기혼자보다 미혼자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둘을 비교했을 때 기혼자는 미혼자에 비해 가정을 이유로 회사 생활에서의 야근이나 출장 등을 꺼린다는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편견일 뿐 결혼 여부가 구직자의 직무 수행 능력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기혼 구직자는 단지 기혼이라는 비직무적인 이유로 개인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취업의 기회를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이에 더해 김소연씨는 해당 항목이 성차별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미혼자도 여성이기 때문에 결혼과 관련된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력서에 미혼이라고 기재하면 면접에서 결혼은 언제 할 생각인지를 물어봐요. 기업은 미혼 여성이 결혼하면 일을 그만둘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처럼 결혼 여부에 대한 항목은 여성과 결혼을 결합하면서 더 많은 차별을 야기한다. 해당 항목은 기혼 여성 구직자는 직무보다는 가정에 힘을 쏟을 것이라는 기존의 인식을 상기시킨다. 마찬가지로 미혼 여성 구직자에게는 결혼 이후 직무를 그만둘 것이라는 한계점을 부여한다. 결국 결혼 여부를 묻는 항목은 기혼자에 대한 차별뿐만 아니라 성차별로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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