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근원은 관념과
현실의 어긋남

상식에 어긋나는 사회와
정의를 세우려는 분노

 

미국정신의학회가 ‘화병(hwa-byung)’을 한국 특유의 문화 증후군으로 인정할 만큼 우리는 전통적으로 화를 억누르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화병은 삭히지 못한 분노가 쌓여 여러 신체적 증상을 일으키는 정신 질환이다. 이처럼 억압된 화는 질병으로 번지거나 사회적 증오의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화도 ‘잘’ 낼 줄 알아야 한다.

  분노란 무엇인가
  『분노사회』(정지우 저)는 분노가 감정의 하나로서 관념의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한다. 관념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윤리, 원칙, 정의, 상식 등을 의미한다. 한 사회는 사회구성원 각각이 형성한 관념 위에서 유지된다. 이를 통해 사회는 단순히 관념적인 상징물을 넘어 개인이 직접 경험하는 현실 세계가 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자신의 관념을 그 현실 사회에 실현하고자 한다.

  자신의 관념과 사회의 모습이 일치하면 개인은 사회에 조화롭게 적응한다. 반면 개인의 관념과 현실 세계가 일치하지 않거나, 개인의 관념을 현실에서 실현할 수 없으면 ‘어긋남’이 발생한다. 내면의 어긋남은 분노의 근원이고 어긋남이 빈번해질수록 분노는 만성화한다. 결국 어느 사회에 분노가 만연하다면, 사회구성원의 관념과 현실 사이의 불일치가 빈번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를 병들게 하는 증오
  『분노사회』는 분노를 개인적 분노와 사회적 분노로 나눈다. 개인적 분노에서 유발되는 화가 해소되지 못하고 쌓이면 우울증 등의 질병을 유발한다. 그런데 개인적 분노가 사회로 확장되면 사회적 분노가 된다. 사회적 분노는 그 관념의 유형에 따라 다시 정당한 분노와 부당한 분노로 갈라진다. 정당한 분노는 정당한 관념에서 부당한 분노는 부당한 관념에서 시작한다.

  정당한 관념은 합리적인 비판의식과 보편성에 기반을 둔 시민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개인적 문제가 합리적·객관적인 사고를 거쳐 사회적 문제로 확장될 때 비로소 정당한 분노가 일어난다. 정당한 분노는 공익적 성격을 가진다. 부당한 관념이 지배하는 사회에 저항하며 실천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근래 촛불시위와 과거 6월 민주항쟁, 4·19혁명, 동학농민혁명 등이 우리 사회의 정당한 분노가 표출된 모습이다.

  부당한 분노는 감정에 휘둘려 자기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인 ‘증오’로 변질한다. 개인적 문제를 무모하게 사회 전체로 확장할 경우 분노는 증오로 발전한다. 『분노사회』는 이러한 증오가 개인의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회피하려는 태도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적 문제와 사회적 문제를 객관적으로 구별하지 않고 분노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지 않는 태도가 증오를 만드는 것이다. 그 뿌리는 타인과의 비교로 인한 피해의식, 이기심, 무비판적 집단주의 등의 부당한 관념에 있다.

  증오로 변질한 부당한 분노는 비합리성으로 무장한다. 증오는 상대 집단을 만들어 배척하고 무차별 공격을 가한다. 염산 테러, 보복 운전 등의 우발적 분노 범죄가 불특정 대상에 대한 증오의 형태 중 하나다. ‘OO충’ 등으로 대변되는 혐오 문화 또한 증오의 화살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는 경우다. 이는 사회의 분열을 조장하고 증오의 감정을 확대·심화시켜 병든 사회를 만든다.

 
정당한 분노는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다

증오로 변질한 분노는 
사회를 병들게 한다

 

  분노사회의 원인
  『피로사회』(한병철 저)는 우리 사회에 신자유주의 체제가 도입되면서 성과사회가 도래했다고 설명한다. 성과사회는 긍정성 과잉의 시대다. 사람들에게 ‘하면 된다’라는 자기 최면을 거는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더 경쟁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더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강요된 노력은 결국 개인의 자기 통제와 착취를 유도한다. 그러나 성과사회는 성공과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한다. 이는 개인과 현실의 부조화 상황에서 ‘어긋남’을 더욱 심화시킨다.

  세계 경기 불황이 지속되고 실업률과 비정규직 비율이 증가하는 경제 상황은 우리에게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포기하게 한다. 착취적 노력을 기꺼이 당해왔던 성과사회의 사람들은 불가항력적인 사회·경제적 현실에 더 쉽게 무너진다.

  성공을 최고의 가치로 두는 한국사회에서 실패하는 사람들이 계속 속출하고 있다. 성공을 강요받는 사람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꿈을 이룰 수 없는 현실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관념과 현실 사이의 모순이 사회를 분노에 휩싸이게 한다.

  게다가 정치·사회적 상황에서 드러나는 윤리적 문제는 상식, 정의, 도덕에 대한 사람들의 관념까지 무너뜨렸다. 현재 한국사회에선 각종 정경유착의 비리 문제가 폭로되고 있고 대통령은 탄핵 심판을 앞두고 있다. 이러한 사회 부정의는 개인의 정당한 관념과 ‘어긋남’을 발생시켜 분노를 일으켰다.

  분노의 근원이 관념과 현실의 불일치라면 사회의 만연한 분노도 이와 마찬가지다. 분노는 꿈을 이룰 수 없는 사회, 관념에 어긋나는 현실에 깊게 뿌리내린다. 이러한 분노는 사회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난다. 개인적 분노와 사회적 분노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에 더욱 개인적 문제의 비합리적인 사회적 확장을 경계해야 한다. 무분별한 범죄나 사회적 증오로 변질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비판의식과 시민의식이라는 관념에 기초한 정당한 분노다. 정당한 분노는 사회적 불의에 대한 혁명을 이끌며 사회의 잘못된 관념을 바로 세운다. 이는 보편적 상식과 현실의 모습이 일치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든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잘’ 분노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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