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 가장 빛나는 시기. 여러분의 하루는 어떻게 지나가고 있나요? 이번학기 중대신문 심층기획부는 20대가 살아가며 겪는 사회 부조리의 민낯을 드러내겠다는 힘찬 포부와 함께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젊은 날의 초상이라는 지면에서 대학언론으로서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 그리고 할 수 있는 말을 하고자 했죠. 그러나 아쉽게도 놓치고 가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20대의 초상이라는 문패를 걸어놓고 모든 20대를 대표하고 있는 게 맞는지 하는 아쉬움이 있었죠. 대학언론이라고 해서 대학생만을 주목하는 것은 매우 지엽적인 시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젊은 날의 초상에는 대학생이 아닌 20 청춘, 그 모든 이들을 담아보고자 합니다. 오늘의 초상은 고졸입니다.

 

 

영화 <억셉티드>의 주인공 비틀비는 지원했던 모든 대학에 떨어졌다. 비틀비는 대학에 별 의미를 느끼지 못하지만 가야만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친구들과 가짜 대학을 만들기까지 한다. 이는 비단 영화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20대에게 대학 진학은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대학은 결코 인생의 필수 코스가 아니다. 대학을 다니지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멋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만나봤다.

 

 

  대학엔 없던 나의 내일

  “대학은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었어요. 꿈이 명확했기에 굳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상관없었죠.” 서동주씨(24)는 가고 싶던 대학에 지원했지만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다. 당시 그의 담임 선생님이 다른 대학에 지원해보길 권유하기도 했지만 그는 대학에 가지 않았다. 언론사 창업이란 꿈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던 그에게 대학은 꿈에 다가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을 뿐 필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군 제대 후 바로 자퇴서를 제출한 김민수씨(23)는 대학 졸업 후를 떠올리면 막막했다고 회상했다. 1년에 약 천만 원 정도의 돈이 들기에 대학을 졸업하기만 해도 사천만 원 이상의 빚을 지게 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전공 특성상 졸업 후 자격증 취득은 필수였으며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해서 바로 취업이 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아무리 따져 봐도 30대 초반쯤에야 직장을 가질 수 있더라고요. 그때 엄청난 빚을 갖고 시작할 바에는 그 시간을 더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새로운 도전을 위해 대학을 박차고 나온 이도 있었다. 성적장학금까지 받을 만큼 우수한 학생이었던 노경환씨(27)는 한 학기 만에 대학을 관뒀다.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오랜 바람 때문이었다. “나이가 어리니까 실패해도 일어날 수 있다는 패기가 있었어요. 가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만 책임지면 되니까 말이죠.”

  그들이 대학을 다니지 않겠다고 결심했을 때 가장 먼저 마주해야 했던 것은 주변의 걱정과 만류였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학을 버렸다. 그들의 미래는 대학 바깥에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과제를 풀어나가다

  김민수씨는 대학을 나오자마자 국비지원을 받아 세무 관련 자격증 학원에 등록했다. “그저 다녀야 하니까대학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좋아요. 미래가 어느 정도 보이기 시작했으니까요.” 김민수씨는 훗날 세무사 자격증을 따 기업 회계팀이나 세무법인에 들어가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대학을 떠난 노경환씨는 다양한 아르바이트로 일을 배운 후 회사에 입사해 인맥을 쌓으며 사업 전반을 익혔다. 후에 회사에서 독립한 그는 포차사업을 진행하려 했지만 무산되고 말았다. 사업 무산이란 첫 실패 후 힘든 시간을 겪었지만 이내 극복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고깃집을 열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는 벌써 가맹점 2개를 거느리고 있는 점주다. “일찍 시작해서 산전수전 다 겪었기에 저는 실패할 위험부담이 적다고 생각해요. 돈을 버는 데 있어 대학이 크게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접점이 사업이었어요. 짜인 틀 없이 스스로 모든 걸 해야 하니까 더 악착같이 했죠.” 구본준씨(27)는 자퇴 후 꼭 타고 싶었던 스쿠터를 할부로 구매했다. 그의 과감함은 곧 기회가 됐다. 때마침 직원을 모집하던 스쿠터 회사에 취직하게 된 것이다. 정비·수리직으로 들어갔지만 정작 그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회사에서 주최하는 문화 기획이었다. 회사 일로 문화 기획에 대한 감을 잡은 구본준씨는 컨셉이 있는 캔들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플리마켓에서 번 자본은 온라인 쇼핑몰로, 쇼핑몰에서 얻은 자본은 푸드트럭으로 이어지는 식으로 사업의 규모를 키워갔다. 회사에 다니며 퇴근 후 푸드트럭을 운영하고 주말엔 플리마켓에 참가한다는 그는 물들어올 때 노를 저어보려 한다며 소탈하게 웃었다.

  서동주씨는 이른 나이에 꿈을 이뤘다고 한다. 블로그를 운영하거나 1인 방송 BJ를 하는 등 콘텐츠 제작에 일가견이 있던 그는 성인이 되자마자 언론사 창업에 힘을 썼다. 가진 건 낡은 노트북 한 대뿐이었으며 창업비용은 아르바이트비로 댔다. 창업 방법도 책을 보며 스스로 익힐 수밖에 없었다. 노력 끝에 그는 20살에 언론사 등록증을 거머쥘 수 있었다. 맨땅에서 출발했던 서동주씨는 어느새 사무실까지 있는 어엿한 언론사의 대표가 됐다. “제가 번 돈으로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거나 여행을 보내드리기도 했어요. 이 나이에 그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뿌듯하죠.”

 

  졸업장 대신 얻은 꿈의 광장

  그들이 대학생에게 부러운 점은 당장 생계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기에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것뿐 그 이상은 없었다. 그들은 앞선 미래를 살면서도 더 큰 미래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해군 해난구조대(SSU) 부사관이 되고자 대학에 가지 않았던 한현규씨(23)는 사고로 무릎을 다쳤다. 이로 인해 그는 장애인 판정을 받아 꿈을 포기하게 됐다. 현재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는 한현규씨는 자전거 선수란 새로운 꿈을 품게 됐다. “일단 공무원이 되고 난 후 자전거 선수를 준비해보려 해요. 만약 일이 잘 풀린다면 공무원을 포기하고 자전거 선수가 될 거예요.” 비록 첫 꿈이 좌절됐지만 대학에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진 않았다. 한현규씨가 바라는 어떤 미래에도 대학이 필요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저를 보고 사업을 시작하고자 하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도움을 주고 싶었죠.” 노경환씨는 청년 사업가들을 도울 수 있는 사업을 구축하고 있다. 돈도 경험도 없는 청년 사업가들에게 소자본으로 사업을 할 기회와 아이템을 제공하고 저금리 대출까지 알선해주는 회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모든 것을 일궈낸 노경환씨이기에 구상할 수 있는 사업이었다. 누군가의 미래는 다른 이의 미래로까지 이어졌다. 

  구본준씨의 사업 확장은 당분간 끝나지 않을 계획이다. 곧 펍(Pub)도 오픈할 예정이라는 그는 더 나아가 여러 상인과 협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여러 상인과 협심해 부산의 문화를 마케팅하고 싶어요. 지역 문화를 더 발전시키는 거죠.”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