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등장한 이후, 문학을 통해 무언가를 기억하고자 하는 문인들의 노력은 계속 이뤄져 왔다. 그러나 문학은 항상 사건 앞에서 재현 불가능성에 마주치고, 무능력을 절감했다. 그런데도 기록을 하는 행위는 계속되었다.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 상실을 기록했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그 기록들을 보고 사건을 기억해낸다. 그 기억의 기록 하나를 꺼내보고자 한다.

  평소와 다르지 않았던 하루였다. 평소처럼 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매점을 들렸다가 국어 수업을 들으러 교실에 올라갔다. 평소와 달랐던 것은 수업시간에 늦은 적이 없었던 선생님이 10분이 지나도 교실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교무실에 내려가 선생님을 불러와야 하나, 뭐 기다리다 보면 올라오겠지 등의 이야기가 오가고 있을 때 선생님이 들어왔다. 옆을 지나가는 선생님한테선 담배 냄새가 평소보다 더 진하게 났다. 교탁 앞에 선 선생은 미안하다고 했다. 못난 어른들이라서 미안하다고 했다.

  숨쉬기도 미안한 4월에 배가 가라앉았다. 지독한 상실감만을 수면 위에 남긴 채 304명의 희생자가 가라앉았다. 그날 선생으로부터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집단적이고 총체적인 무능력을 지켜봤다. 적절한 대처가 이뤄졌다면 희생자들이 우리처럼 일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었기에 사람들은 분노했다. 그날 우리가 받은 처참함은 시간이 지나면서 섬뜩함으로 변했다. 그날 우리가 본 파국 속에서 계급, 젠더, 세대는 중요하지 않았다. 모두가 거리로 나왔다. 그들은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를 개선하자고 목소리를 냈다.

  거리로 나왔을 때 우리는 사회가 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하지만 2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변한 것은 없다. 그날의 공포와 위기의식은 세월호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다른 위기론이 대두되자 사라졌고 여전히 미안해야 할 사람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날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겨운 것이 되었으며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정체되어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흐름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안다고 해서 즉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줬다.

  ‘뒷일을 부탁합니다.’ 故 김관홍 잠수사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상실감만이 수면 위에 떠다니고 있을 때 아이들을 구하러 바닷속으로 들어간 잠수사는 죽기 전에 우리에게 뒷일을 부탁했다. 뒷일을 부탁받았기에 언론은 그날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문인들은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 글을 쓴다.
 
“엄마.”
뒤를 돌아본 여자는 하지만 그녀의 엄마가 아니었다.
“누구세요?” 그녀가 물었다.
“아가씨.
내 딸도 그날 배에 있었어요.” 여자가 말했다.
…(중략)…
“내 딸을 잊지 마세요. 잊음 안 돼요.”
-최은영, 『쇼코의 미소』의 「미카엘라」中
문태일 학생
국어국문학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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