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자유학기제’가 전국 중학교에 전면도입 됐다. 자유학기제는 학생들에게 진로 탐색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하지만 취지가 무색하게 학원가엔 ‘자유학기제 선행학습 클래스’가 생겨나고 있다. 학생들은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성과만을 쫓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학에 입학하고서도 마찬가지다. 대학엔 휴학이란 제도가 있지만 학생들은 이를 취업준비의 시간으로 보내기 일쑤다. 한국의 학생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은 의미 없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한국에선 터부시되는 ‘나를 찾는 시간’의 가치를 알아보기 위해 한국갭이어 대표와 휴학을 통해서 자신을 제대로 마주하게 됐다는 이들을 만나봤다.
 
  나로 꽉 채우는 공백
  갭이어(Gapyear)는 말 그대로 공백(Gap)을 갖는 시간을 의미한다. 즉 학업이나 업무 등의 해야 할 일을 잠시 중단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흥미와 적성을 찾고 진로를 고민하는 기간을 말한다. 이는 1960년대 영국에서 시작돼 유럽 전역, 미국 등으로 전파된 개념으로 이미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 된 지 오래다. 심지어 외국 명문대학인 하버드, MIT에선 학교 차원에서 갭이어를 권장하기까지 한다.
 
  한국에 갭이어란 개념이 들어온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한국갭이어 안시준 대표는 한국 학생들이 취업만을 위해서 달려가는 것이 안쓰러워 갭이어를 들여오게 됐다고 말했다. “원래 스펙·경력은 자신을 위해서 한 일들의 결과를 말하는 건데 한국에선 그게 취업을 위한 일로 취급되잖아요. 그게 안타까워서 갭이어로 자신을 위한 시간도 의미 있다는 프레임을 제공해주고 싶었어요.”
 
  SBS 다큐멘터리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에 따르면 첫 취업에 걸리는 시간은 평균 13개월이지만 100명 중 27명은 3년 이내에 회사를 관두고 있었다. 학생들은 힘겹게 취업을 했으면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직장을 그만두고 있는 것이다. “얼른 취업해야 한다는 사회적 구속이 심해서 그래요. 스스로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적었기에 직업이 적성과 맞을 확률이 낮았던 거죠.” 안시준 대표는 그렇기에 진로에 대해 고민해보는 갭이어가 필요한 것이라 설명했다.
 
  안시준 대표는 대학의 휴학제도는 훌륭한 갭이어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학업을 쉬면서 스스로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휴학을 통해 갭이어를 가지면 본인이 원하는 진로에 대해서 고민해볼 수 있어요. 사회가 원하고 만족하는 직업이 아니라 내가 원하고 만족하는 직업을 선택할 기회인 거죠.” 기회를 갖는 것 자체로도 휴학은 무가치하지 않다는 것이다.
 
  삶을 바꾼 선물
  취업준비가 아닌 휴학을 향한 부정적인 인식과 달리 학생들은 그 시간을 갭이어로 활용해 수많은 의미들을 찾아가고 있었다. 신주은 학생(국어국문학과 3)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시베리아 횡단 열차 타보기’를 위해 휴학을 했다고 말했다. 9개월간 꼬박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경비로 3개월여간 여행을 다녀왔다. “유럽여행은 제게 일어날 수 없을 것만 같던 일들을 제 경험으로 만들어줬어요. 온전히 제힘으로 갔기에 더더욱 내 삶이 진짜 내 삶으로서 더 존귀해지는 느낌을 받았죠.” 버킷리스트에 그어진 빨간 줄은 스펙한 줄 보다 무거웠다.
 
  휴학을 이용해 자신의 꿈을 찾은 학생도 있었다. 김수민 학생(국어국문학과 2)은 하고 싶은 것을 해보기 위해 휴학을 하자마자 바로 창작 뮤지컬 공연 팀에 들어갔다. 김수민 학생은 무의미하게만 느껴지던 학교공부와 달리 공연준비는 아무리 힘들어도 즐겁기만 했다고 회상했다. “공연을 하면서 연기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돼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아니까 자신감도 더 생겼죠.” 휴학을 통해서 확고해진 꿈은 현재 김수민 학생의 전부가 됐다.
 
  일상적이지만 특별한
  여행, 꿈을 위한 활동 등의 가시적인 활동으로 갭이어를 가진 이들과 달리 소소한 일상으로 갭이어를 가진 이들도 있었다. “학기 중엔 공부만 하다 보니까 대학생 때 느낄 수 있는 다른 것들을 느끼지 못했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해본 적이 없다는 점이 저 스스로를 움츠러들게 하기도 했죠.” 이교운 학생(울산과학기술원 컴퓨터공학과)은 피아노 배우기, 아르바이트 등 평소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했다. 특별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교운 학생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해보고 싶은 일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더 넓은 세계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계속 발목을 잡던 미련을 떨친 기분이었죠.”
 
  “대학이란 낯선 환경 속에서 처음으로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됐죠. 스스로가 너무 하찮아 보이더라고요. 자존감이 너무 낮아져서 휴학을 했어요.” 김신영 학생(서울예대 영화과)에게 휴학은 쉼 그 자체였다. 많은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냈지만 김신영 학생은 휴학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휴학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힘들어하는 데 보냈어요. 하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에 스스로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됐죠. 휴학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꼭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휴학은 갭이어가 될 수 있었다.
 
  안시준 대표는 모든 휴학, 즉 쉼은 가치 있다고 말했다. “쉬어야 할 타이밍에 쉬지 않는 건 스스로를 망치는 거라고 생각해요. 쉬는 방법은 가지각색이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쉼은 없죠.” 쉼을 통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도 나에 집중하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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