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천명관은 말한다. “어쩌면 모든 소설은 결국 실패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틀리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재벌, 왕족, 귀족 등의 남자주인공이 나오는 로맨스물이 아니고서야 이상하게도 세상의 소설에는 나 같은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나와 끊임없이 비틀거리고 실패를 맛본다. 그 과정을 읽어가며 혀를 차기도 하고 눈물을 훔치기도 하면서 자꾸만 응원하게 된다. 이유가 뭘까? 소설 속 인물은 수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 하고 그 모습이 내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은 탓이다. 천명관 역시 그랬다. 주인공들의 실패하는 모습이 비극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불행에 대해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소설 읽기는 충분의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나에게는 만화와 성룡을 좋아하던 건축학 전공의 삼촌이 있다. 유년시절 내 기억 속 삼촌은 대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전공 서적보다는 방바닥에 누워 탑처럼 쌓아놓은 만화책을 보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성룡의 영화를 즐겨보는 이십 대 청년이었다.
 
  천명관의 『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2는 “브루스 리, 이소룡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9쪽)
한평생 브루스 리, 이소룡에 살고 죽는 삼촌이 등장한다. 소설을 구성하는 각 챕터의 제목이 이소룡 주연의 영화제목이란 점도 흥미롭다. 주인공의 삼촌은 1973년 여름, 조카 둘을 데리고 이소룡의 추모제를 지낸 후 이소룡의 행적을 따르기에 이른다. 이소룡이란 롤모델을 두고 인생을 차곡차곡 살아낸 한 사내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큰 소리로 웃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웃고 있는데 계속 가슴이 쓰리다. “짝퉁으로 출발했으나 긴 세월을 거쳐 스스로 인생유전의 고유한 스토리를 완성”(11쪽)한 삼촌의 이야기는 희극과 비극의 경계를 허물며 독자를 독려한다. 계속 꿋꿋하게 살아가라며 모든 짝퉁의 인생이 언젠가는 반드시 진퉁의 삶으로 변할 수 있다고 속살거린다.
 
  천명관은 영화 시나리오를 썼던 이력이 있다. 그동안 발표했던 소설 중 『고래』는 주인공이 극장을 짓고 『고령화 가족』은 영화감독이 주인공이었으며 실제로 영화로 제작된 원작소설이기도 하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이소룡이 되고자 했던 사나이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더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 않겠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혔다. 천명관은 영화에 보내는 긴 작별인사라고 했다. 어쩌면 영화라는 장르에 대한 미련, 애증의 복합체로 실패담이 가득한 소설이 탄생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실패담이라면 환영이다. 좋아하는 하나를 위해 일생을 오롯이 살다가 겪는 실패라면 그 부서진 꿈과 욕망이 언젠가는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끝내 저 높은 곳에 이르지 못했던 한 짝퉁 인생에 대한 이야기”일지라도 그건 진짜 실패가 아니다. 그저 사는 것이다. 아주 잘 살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