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얼마 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여성혐오’와 관련된 주제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논쟁에 참여했던 친구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뜨거웠던 논쟁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죠. 그때 자리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또 다른 친구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너희처럼 싸우는 것이 싫어서 여성혐오에 관해 입을 열지 않아.” 기자는 이 말을 듣자마자 소주잔을 입에 가져다 대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입 안을 감도는 쓴 맛을 느꼈습니다. 
 
  친구의 말처럼 여성혐오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현장은 진흙탕을 넘어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여 성혐오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은 모두 ‘일베충’으로 매도되고 여성혐오를 인정하는 시선은 ‘메갈충’으로 치부되는 일이 너무나 흔히 벌어지죠. ‘Girs Do Not Need A Prince(소녀들에게 왕자는 필요하지 않다)’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인신공격의 대상이 되고 일부 여성들은 남성의 성기 길이로 남성을 조롱하기도 합니다. 혐오를 혐오하고, 혐오는 또 다른 혐오를 낳는 ‘누군가에겐’ 혐오적인 상황이 매일매일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중앙대 안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중앙대 대나무숲’ 페이지에는 여성혐오와 관련된 게시물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게시물의 댓글창에서 학생들은 치열하게 대립합니다. 하나의 의견에 떼로 몰려들어 비판인지 비난인지 모를 말을 내뱉는 경우가 다반사죠. 상황은 중앙인 커뮤니티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듯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쟁이 격해지자 사람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 자체를 기피하고 있습니다.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에 관한 논쟁은 결국 남녀의 진흙탕 싸움을 유발하므로 피곤하다’는 인식이 사회에 자리 잡고 있는 추세죠. 급기야 사람들은 입을 닫고 싸움을 의도적으로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를 문제 삼지 않는 것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하지만 한국 사회에 여성혐오가 만연해있다는 현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성 평등 수준이 세계 115위로 꼴찌수준(지난해 기준)을 달리고 있습니다. 또한 흉악·강력범죄 피해자 중 약 84% 이상은 여성이며 그중 성희롱이나 성폭력의 피해자 역시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대학사회에서는 단체카톡방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 문제가 수차례 벌어지고 있죠.
 
  이렇듯 여성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여성혐오에 대해 입을 닫는 상황은 미국의 민권 운동가인 하워드 진의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는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고 말했죠. 이 말은 만약 기차 탑승자가 움직이지 않고 있어도 그 기차가 잘못된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면 그 사람 역시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뜻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성혐오라는 폭주 열차에 타고 있습니다. 여성혐오에 대해 입을 닫겠다고 마음먹는 순간에도 열차는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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