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다르게 하지만 깊게

리버럴 아츠 칼리지
교육의 중심은 인문학

미국에는 약 200여 개의 ‘리버럴 아츠 칼리지(Liberal Arts College)’가 있다. 리버럴 아츠 칼리지는 인문학을 기반으로 교양교육을 전담하는 대학이다. 4년의 정규과정을 마친 학생들은 교양학사 학위를 받는다.

  리버럴 아츠 칼리지는 ‘교육’ 그 자체를 대학의 역할로 인식한다. 직업 훈련은 전문 학위과정에서 충분히 익힐 수 있으므로 학부과정에서는 순수하게 학문에 몰두해 인간과 세계를 올곧게 성찰할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시각이다. 이러한 교육 목표로 인해 리버럴 아츠 칼리지에는 직업 훈련을 위한 학과와 교과가 전혀 없는 경우도 있다.

  리버럴 아츠 칼리지는 소규모 교육 공동체를 지향한다. 리버럴 아츠 칼리지 학생 대비 교수 비율은 대부분 15명당 1명을 넘지 않는다. 수업은 소규모 세미나와 개인지도 과목으로 구성돼 있다. 리버럴 아츠 칼리지는 소규모 세미나식 수업에서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소규모 개인지도 중심 교육시스템은 교육의 질을 높인다. 학생들은 고전을 읽고 교수와 함께 토론하며 깊이 있는 사고를 할 기회를 얻는다. 또한 보고서 작성의 전 과정에서 교수로부터 직접 피드백을 받는다.

  대표적인 리버럴 아츠 칼리지로는 윌리엄스대학(Williams College)이 있다. 윌리엄스대학은 전교생이 약 2000명 수준으로 규모가 작지만 미국에서 인문과학에 관한 입지는 최고 수준이다. 윌리엄스대학은 ‘튜토리얼(Tutorial)’이라고 불리는 개인 수업으로 유명하다. 교수 한 명과 학생 2명으로 구성된 수업은 교수 앞에서 매주 다른 주제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고 동료의 글쓰기를 심사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경제 불황 속에서 이공계 육성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 하는 한국과 미국의 인문학에 대한 인식에는 차이가 있다. 미국 사회는 인문학 소양에서 탄생하는 참신한 아이디어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높이 평가한다. 지난 2011년 교육부에서 발행한 ‘인문학 교육 실태 분석 및 진흥 방안 연구’의 책임연구원을 맡았던 홍병선 교수(교양학부)는 “미국은 한국과 인문학의 유용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며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오히려 인문학에 대한 투자를 늘려 상황을 타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철학은 삶의 바탕

인생의 전환기에
철학을 더하다

프랑스 인문학 교육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대입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Baccalaureat)’다. 1808년에 시작된 바칼로레아는 약 2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바칼로레아의 15개 과목은 모두 절대평가로 이뤄지는 주관식 논술 시험이며 철학 시험을 필수로 한다. 바칼로레아에서 응시자는 20점 만점에 10점 이상을 받으면 시험에 통과한다. 시험에 통과하면 점수에 상관없이 원하는 국공립대에 입학할 자격을 부여받는다.

  바칼로레아는 크게 ▲일반계열 ▲기술계열 ▲직업계열로 분류된다. 일반계열과 기술계열에 해당하는 모든 분야의 바칼로레아는 철학 논술 시험을 치른다. 직업계열의 바칼로레아 중에는 철학시험이 의무가 아닌 분야도 있지만 대부분은 철학 논술 시험을 치러야 한다.

  프랑스 학생들이 계열을 불문하고 철학 논술 시험을 치러 낼 수 있는 이유는 고등학교 3학년 교과과정에 ‘철학’ 과목이 필수적으로 배정된 데 있다. 고등학교 3학년 철학 교육의 목표는 개인이 스스로 사고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다. 자비에 리오데 교수(프랑스어문학전공)는 “고등학교 3학년의 경우 주당 6시간씩 총 9개월간 철학 수업을 받는다”며 “학생들은 철학에 대해 꽤 심도 있는 수준으로 교육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교육부는 고등학교 시기를 한 개인이 여러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시기라고 본다. 이때 선택된 사항들이 성인으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 그 사람의 삶을 대부분 구성함으로 철학 교육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프랑스 교육자들은 철학 즉 인문학을 인간의 기본 소양으로 바라본다. 자비에 리오데 교수는 “인문학을 취업과 직접 연결해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인문학을 기본 소양으로 갖춘 후 사회생활에 임했을 때 긍정적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중·고등 교육과정에서 철학 과목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프랑스와 대비된다. 또한 문과계열 학생의 경우 수능 사회탐구 영역에서 인문학을 접할 수 있지만 이과계열 학생은 교육과정에서 인문학을 접할 기회가 제한적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 사회와 프랑스 사회가 인문학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알 수 있다.

 

돈이 아닌 시간을 지원하라

대학 맞춤형

재정지원 사업

지난 1999년 유럽 29개국 교육부 장관들은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유럽 내 대학의 질 향상을 도모하는 ‘볼로냐 선언’에 서명한다. 서명 국가의 대학들은 ‘볼로냐 프로세스’로 불리는 의무 사항을 이행하면서 큰 변혁을 겪어야 했다.

  볼로냐 선언과 함께 대학 간 경쟁은 심화됐다. 수많은 대학 순위 평가 방식이 개발되고 대학 간 수업과 연구의 질적 격차가 공개됐다. 대학 순위가 도입되면서 대학들은 단기적 교육 목표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세워야 했다. 이런 대학가 분위기는 단기적 성과를 기대하기 힘든 인문학 분야의 위축을 야기했다.

  독일 정부는 대학개혁으로 말미암은 인문학의 침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지난 2007년을 ‘인문학의 해’로 선정하고 인문학 부흥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독일 정부는 새로운 대학 환경에서도 독일 인문학이 과거의 위상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재정지원 계획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인문학 연구의 자유 계획’을 발표했다.

  인문학 연구의 자유 계획은 다른 재정지원 사업과는 다른 목적을 천명한다. 독일 정부는 인문학 연구 과정이 이공계열 연구 과정과 다르므로 인문학 연구에 적합한 지원 목적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독일 정부는 인문학 연구의 자유 계획의 목적으로 ‘새로운 형식의 지원으로 연구자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해 주는 것’을 명시했다. 재정지원의 목적이 ‘연구결과’ 요구가 아닌 ‘연구시간’ 확보에 있다는 점은 일반적인 재정지원과의 가장 큰 차이다. 독일 정부는 인문학 연구자에게 돈이 아닌 시간을 지원하는 것이다. 단기적 성과를 기대하기 힘든 인문학 연구의 특성을 이해하는 독일 사회의 인식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인문학의 연구방법론을 발전시키고 자연과학 및 공학과의 연관관계를 강화하는 것’을 명시한 점은 인문학의 내부적 변화를 유도한다는 의미다. 인문학의 고유성을 유지하면서도 이공계열의 발달된 연구방법론과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목적이 인문학에 자연과학 체계 도입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며 인문학의 활용성 제고의 의미가 있다.

 

한국과 너무도 닮은…

사회 수요에
대학을 맞춰라

최근 일본의 대학가 분위기는 한국과 비슷하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대학의 구조조정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의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과정도 현재 한국 정부의 정책과 유사하다.

  지난해 6월 일본 정부는 전국 86개 국립대의 인문·사회·사범계열 학부 및 대학원 과정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저출산 여파로 인해 학생 수가 감소한 상황에서 대학은 사회 수요에 맞는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생 수 감소로 대학 재정 적자가 누적되는 가운데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는 사회적 수요가 높은 분야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논리다.

  일본 정부는 각 국립대의 기본 예산이자 정부지원금인 ‘운영비 교부금’을 구조조정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학이 정부 정책에 부합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운영비 교부금을 최대 30~40%까지 늘려주겠다는 유도책도 함께 제시했다.

  이에 따라 일본의 국립대들은 인문·사회계열의 개편을 검토 중이다. 한 예로 일본 요코하마국립대의 경우 지난해 10월 학문단위 개편의 일환으로 인문·사회계열과 공학계열을 융합한 ‘도시과학부(가칭)’ 신설 계획을 발표했다. 이외에도 33개의 국립대가 인문·사회계열의 학부·대학원 조직 개편을 계획하고 있다. 사카다 무쯔미 강사(센슈대 일본문학과)는 “일본엔 인문·사회계열 학부를 보호하는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다”며 “국립대부터 이공계열 학부를 늘려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 정부에 의한 대학 구조조정 과정은 한국의 대학 구조조정 과정과 흡사하다. 정부가 대학 구조조정의 이유로 ‘학령인구 감소’에 대한 대응을 들었다는 점, ‘사회 수요’를 반영해 인문·사회계열 정원을 줄이고 이공계열 정원을 늘리도록 하는 점 등은 사실상 같다고 볼 수 있다.

  재정지원을 이용해 대학의 자발적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점도 비슷하다. 일본 정부는 운영비 교부금의 차등 지급을 통해 국립대의 구조조정을 이끌었다. 한국 정부는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PRIME) 사업’으로 대표되는 재정지원 사업으로 대학이 스스로 정부의 정책에 부합하는 구조조정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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