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약, 당신이 기억을 잃어가는 중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영화 <메멘토>에서도 그렇듯이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은 기록에 자신의 기억을 의존하게 되는 듯하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일흔 살 노인이 있다. 그는 17 더하기 5가 몇이냐는 의사의 질문에 답을 안다고 확신하면서도 막상 그 답이 떠오르지 않아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는 수십 명을 살해하고도 단 한 번도 발각되지 않은 연쇄살인마이다. 노련한 살인마가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이 된 상황을 통해 작가는 서서히 젖어드는 죽음과 삶의 유한함을 불교의 ‘공(空)’ 관념을 동원하여 서술하고 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바로 알츠하이머에 걸린 일흔 살의 전직 살인마가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1인칭 소설이다. 소설은 주인공 김병수가 하루하루 잃어가는 자신의 기억을 메모하면서 딸을 다른 살인자로부터 지켜내려는 외로운 싸움에 관한 기록이다. 그런데 그 싸움의 기록은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기에 무척 불완전하다. 주인공의 서술은 명료하며 단호한 필치로 독자를 매혹시키지만 점차 그의 기억은 왜곡되고 일부는 삭제되었음이 드러난다. 소설의 중반부를 넘어서면 독자는 더 이상 소설의 서술을 믿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독자는 주인공 김병수의 기록을 토대로 그의 딸 은희를 죽이려는 살인자가 누구인지를 찾는 데 동참하지만 이것이 맞는 추리인지에 대한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소설에서 1인칭 서술은 정보를 제한하여 독자로 하여금 추리와 반전의 재미를 가져다준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 환자의 기억과 독백에 의존한 서술을 통해 내용과 기법 양면에 있어서 소설을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동안 ‘죽음’이라는 소재는 작가 김영하 소설의 주요 테마였다. 과거 그의 소설에서의 죽음은 살인자, 자살도우미, 킬러, 폭주족 등의 인물들을 통해 일상의 지리멸렬을 거부하는 특별하고 매혹적인 것으로 그려졌다. 그에 비해 치매에 걸려 완전무결했던 삶에 서서히 균열을 내는 노인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그가 그동안 보여준 젊은이들의 매혹적인 죽음과는 달리 끔찍하며, 웃을 수 없는 농담처럼 잔인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김영하식 노인소설이라 부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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