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한 나라의 국민투표로 유럽을 포함한 세계 각국이 들썩였습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국민의 약 51.9%의 찬성으로 결정된 것인데요. 그렇다면 ‘브렉시트(Brexit)’라고 불리는 이 사태는 영국과 역사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던 프랑스에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켰을까요? 이번주 ‘학술이 술술술’에서는 프랑스 사회에서 바라본 브렉시트에 대한 강의를 찾아가 봤습니다. 함께 볼까요

프랑스 학계와 정계를 중심으로
유로체제의 문제점, 수면위로 떠오르다
 
지난 12일 302관(대학원) 301호에서 열린 독일연구센터 정기세미나에서 이길호 교수(파리 제10 대학)의 강연이 진행됐다. 강연의 제는 ‘프랑스에서 바라본 브렉시트’다. 이길호 교수는 프랑스 사회에서 형성되고 있는 브렉시트에 대한 담론에 대해 강연했다.
 
  유럽연합의 문제점들을 깨우다
  이길호 교수는 본격적인 강연 시작에 앞서 영국의 브렉시트가 프랑스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이유에 대해 언급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과 더불어 유럽연합(EU)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국가였다. 하지만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이탈하면서 3국이 주도하는 체계는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 그는 “브렉시트로 인해 유럽연합 사회가 흔들릴 위기에 처했고 다른 국가 중에서도 특히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큰 반응이 일었다”고 말했다.

  그는 브렉시트에 대한 논의에 앞서서 그동안 제기돼온 유럽연합과 관련된 담론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브렉시트 이후 유럽연합의 문제점이 다시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브렉시트 결정은 프랑스 사회에서 소수 집단이 제기해 왔던 유럽연합 사회의 문제들을 주목받게 했다. 이길호 교수는 “브렉시트는 영국의 결정이지만 유럽연합 사회 전반에 파문을 일으켰다”며 “브렉시트를 통해 유럽연합과 관련된 담론이 어떤 식으로 주목받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유럽연합 사회가 갖고 있던 문제점은 무엇이었을까. 이길호 교수는 유로체제 문제에 대한 담론을 생산한 프랑스의 두 경제학자를 소개했다. 바로 프레데릭 로르동과 토마 피케티다. 이들은 모두 유럽연합의 화폐 통합으로 생긴 문제점을 지적하는 학자들이다.

  로르동은 극우파의 경제정책은 신자유주의 담론과 인종차별주의 담론을 만나게 하기 때문에 가장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유럽 국가들만의 폐쇄적인 인적 교류는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체제가 결국은 인종차별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자유주의로 발생한 양극화 현상은 고립된 유럽사회 내부에서 이민자 계급에 대한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

  토마 피케티는 유럽연합의 핵심 회원국들이 그리스 사태 이후에도 여전히 이러한 잘못된 경제정책을 고수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길호 교수는 피케티의 주장은 유럽 회원국이 그리스 사태를 비합리적으로 처리했다는 전제 하에서 출발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로르동 역시 독일의 예를 통해 그리스 사태 당시의 비합리성에 대해 지적해 왔다. 독일의 무역수지가 전체 국내총생산에 차지하는 비중은 약 8%로 비교적 큰 편이다. 로르동에 따르면 독일이 무역에서 이득을 보는 만큼 무역 수지 적자를 보는 회원국이 발생하게 된다. 이 현상이 수년간 축적되다 보면 그리스 경제 위기와 같은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고 본 것이다.

  피케티는 이런 비합리적인 경제체제를 비판하면서 몇 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유로존 내에서 국가들끼리 연대해 성장에 관련된 공동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다. 피케티는 공동정책의 한 예로 과도하게 부채를 진 회원국들을 배려해주는 정책을 들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유럽연합 기구들에 대한 일부 강대국들의 비민주적인 독점을 제한하는 것과 각 회원국과 유럽 의회의 숫자를 조정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이길호 교수는 “피케티의 이러한 대안은 유럽연합의 내부개혁을 통해 유럽연합을 새로 결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현 정부
  이러한 학계의 담론과는 달리 프랑스 정치계는 브렉시트에 대해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을까. 프랑스의 정치계는 크게 좌파 성향의 사회당 정부와 중도우파 성향의 공화당으로 나뉜다. 하지만 프랑스 중도좌파 정당인 사회당과 극좌파 소수정당들은 같은 좌파 세력이면서도 브렉시트를 바라보는 시선이 서로 다른 상황이다.

  이길호 교수는 집권당인 사회당이 브렉시트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사회당은 브렉시트가 중대한 사건이니 프랑스는 앞으로 개혁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길호 교수는 사회당이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흐름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는 1945년 이후 대유럽연합정책을 추진해오고 있다. 대유럽연합정책은 유럽의 평화를 추구하고 시장 확대에 따른 프랑스의 경제적 효과를 꾀하기 위해 추진돼 왔다.

  이러한 프랑스 정부의 정책기조 하에서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했다는 것은 곧 대유럽연합정책에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프랑스 내부의 유럽연합 탈퇴를 주장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게 됐기 때문에 프랑스 국민으로부터도 대유럽정책이 거부당할 가능성 또한 생겼다. 이에 따라 프랑스 정부는 브렉시트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
 
  격동하는 소수 정당들
  반대로 프랑스 내 극좌파 소수정당은 대유럽연합정책에 대한 반발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프랑스 극좌파 세력은 브렉시트 이전부터 프랑스의 유로존 탈퇴를 주장했다. 유럽연합에 속한 현 체제 내에서 자신들이 지향하는 사회를 만들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극좌파 세력의 주장이 관철된 사례는 2005년에 유럽 헌법 제정 조약을 놓고 시행된 프랑스 국민 투표에서였다. 유럽 헌법 제정 조약은 유럽 연합 가맹국의 의사 결정을 통일화하려는 목적을 지닌 조약으로 본래 각국 정상들의 합의를 통해 이뤄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외 몇몇 국가들의 국민 투표 결과가 반대로 굳어지면서 유럽 헌법 제정 조약은 무산됐다. 이길호 교수는 “국민 투표가 진행될 당시 극좌파 세력들은 프랑스의 유럽 헌법 조약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며 “무산된 유럽 헌법 조약 대신 새로운 조항을 담은 유럽연합의 조약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리스본 조약이다”고 말했다.

  유럽 헌법 조약의 무산으로 힘을 얻은 프랑스 극좌파 세력은 리스본 조약 역시 저지하기 위해 결집하지만 실패한다. 이렇듯 극좌파 세력은 대유럽연합정책에 대한 반대 의사를 꾸준히 밝혀왔으나 브렉시트 이전에는 큰 힘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브렉시트 이후 프랑스 극좌파 세력의 주장은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갖게 됐다.

  이길호 교수는 브렉시트를 전후로 한 프랑스의 엘리트들은 유럽연합 관련 각종 담론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들이 생산하는 담론에는 공통적으로 브렉시트 이후 프랑스가 유럽 내에서 어떤 위치로 자리 잡을 것인지에 대한 탐구가 담겨있다고 말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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