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인의 방』, 최인호 지음, 민음사
 
“그는 방금 거리에서 돌아왔다. 너무 피로해서 쓰러져 버릴 것 같았다. 그는 아파트 계단을 천천히 올라서 자기 방까지 왔다. 그는 운수 좋게도 방까지 오는 동안 아무도 만나지 못했었고 아파트 복도에도 사람은 없었다.”
 
  한 남자가 자신의 아파트 초인종을 누른다. 문을 두드려 보지만 열어줄 아내는 없고, 이웃들은 그의 존재를 모른다. 그의 집은 불이 꺼지면 물건들이 주인이 되어 활개를 치고 그는 그런 집을 ‘타인의 방’처럼 느낀다. 마침내 어둠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물건들 사이에서 그는 정물처럼 굳어지고, 집에 돌아온 아내는 그에게 메모를 남기고 다시 집을 나간다.
 
  ‘밀실과 광장’의 세계에서, 최인호의 『타인의 방』은 성냥갑 같은 도시의 아파트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묘한 사건을 통해 밀실의 내면을 파헤친다. 남자와 아내가 나간 사이, 아파트는 주인보다 더 익숙한 모습으로 자리 잡은 집기들의 공간이 된다. 이 소설에서 살아 움직이는 집기들은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고, 어쩌면 “가구 같은 정물”로 보이기까지 하는 “뚜렷한 형상을 가지지 않은 사내”인 남자와 대조를 이룬다.
 
  남자의 아파트는 ‘타인의 방’이라는 제목처럼 주객이 전도된 도시인의 삶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가장 친숙해야 할 존재인 아내조차도 남편의 출장 때마다 장인이 위독하다는 거짓 메모를 남기고 자리를 비우는, 이 집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
  
  아내가 씹던 껌은 부재하는 그녀의 육체를 대신해 남편을 위로한다. 집에 돌아온 아내 역시 정물이 된 그를 보고도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고 정물에 입을 맞추며 일상을 영위한다. 남편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정물에 의문을 갖지도, 남편을 찾지도 않는 아내의 모습은 그동안 그녀와 남편이 같은 공간에서 철저한 타인으로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그녀는 곧 잊어버린 것이 없는 대신 새로운 물건이 하나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물건은 그녀가 매우 좋아했던 것이었으므로 며칠 동안은 먼지도 털고 좀 뭣하긴 하지만 키스도 하긴 했었다. 하지만 나중엔 별 소용이 없는 물건임을 알아차렸고 싫증이 났으므로 그 물건을 다락 잡동사니 속에 처넣어 버렸다.”
 
  최인호 작가는 2011년에 발표한 전작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통해서 『타인의 방』의 주제의식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타인의 방』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 채 타인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살아도 살아 있지 않은 삶, 주체를 상실한 삶은 2016년 여기에도 도처에 유령처럼 놓여 있다. 내 의지와 무관한 당위적 일들이 내 삶을 전복해 버린 삶에 익숙해져버린 세대에게, 수많은 타인들 속에서 진짜 나를 찾는 일은 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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