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층의 입장을 대변해온 심리학
이제는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서야”
 
지난달 27일 아시아 출판문화 정보센터 1층 ‘지혜의 숲’에서 김태형 소장의 강연 ‘심리학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가 열렸다. 이날 강연에서는 심리학의 시작과 현대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쓴 심리학의 역사를 살펴보는 시간이 마련됐다. 한 학문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반드시 학문의 발전 과정을 탐구할 필요가 있다. 심리학도 마찬가지다. 심리학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선 심리학의 근원을 찾아야 한다. 과연 심리학은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발전돼 왔을까.
 
  심리학의 뿌리를 찾아서
  심리학의 뿌리는 철학이다. 철학은 세계관에 대해 논한다. 또 세계관을 말하다 보면 결국 인간에 대해 논하게 된다. 그중 인간의 의식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 바로 심리학의 출발이다. 철학은 전체를 다루는 학문이다. 심리학은 그 전체를 이루고 있는 부분이다. 따라서 어떤 철학을 바탕으로 두고 있는가에 따라 심리학의 성향도 결정된다. 
 
  근대 철학이 등장하면서 인간 심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기 시작한다. 심리학에 영향을 준 근대 철학으로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영국의 경험론과 프랑스의 합리론 그리고 독일의 관념론이다. 
 
  영국의 경험론은 인간 심리의 기본은 경험에 따른다는 이론에 기초한다. 경험론은 외부세계를 감각적으로 지각하는 것에 의해 지식이 쌓인다고 봤다. 그러나 이 이론은 감각들이 합쳐질 때 하나의 개념이 될 수 있느냐의 의문에 부딪혔다. 그리고 이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연합주의가 등장한다. 연합주의는 정보의 연합으로 하나의 지식이 형성된다는 이론이다. 경험론은 연합주의와 융합돼 발전했다. 이렇게 발전된 경험론은 인간이 감각기관으로 파악한 사건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물질을 제일로 여기는 유물론적 이해로 심리학을 이끈 것이다. 
 
  반면에 프랑스의 합리론은 계몽주의 흐름에 따라 이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합리론을 주장한 심리학의 아버지 데카르트는 철학과 심리의 개념을 구분해 사용했다. 이에 비해 독일의 관념론 철학은 경험론과 합리론을 적당히 절충한다. 경험론과 합리론은 인간을 수동적 존재로 인식했다. 하지만 관념론의 칸트는 인간도 정보를 추론할 수 있는 능동적인 존재라고 주장했다. 헤겔은 사물 현상을 독립된 처지에서 보는 전통적인 서구 철학에서 벗어나 연관성을 갖고 볼 것을 지적한다. 인간이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것이 인간 심리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는 심리학의 변증법적인 견해를 다룰 때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근대 철학에 뿌리를 둔 심리학은 자연 과학과 융합되면서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자연 과학은 근대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을 거쳐 발전했다. 자연 과학 중에서 특히 심리학에 크게 영향을 준 학문은 생물학과 수학적 통계학이다. 생물학의 신경생리학은 신경 충동의 속도를 측정했으며 진화론은 유기체와 외부자극 간의 관계를 정립했다. 수학적 통계학은 심리학 사례를 데이터로서 수치화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자연 과학이 심리학과 융합되면서 심리학의 과학적 연구가 가능해졌다.
 
  심리학의 어두운 역사
  ‘심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분트가 등장하며 심리학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분트에 의해 창조된 사회 심리학은 혁명의 시대에 태동했다. 혁명의 시대엔 극단적인 자본주의의 발달로 미성년자는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며 일하는 상황에서 각종 정치 운동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심리학자들은 비로소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유발하고 이끄는 요인들은 무엇인가?’ ‘인간은 왜 시위를 하고 데모를 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품게 된다. 비로소 집단심리를 연구할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혁명의 뜻을 같이했던 자본가 계급이 보수화되면서 사회 심리학의 방향도 지배층에 유리한 쪽으로 전개되고 만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시대를 지나 노동자들을 위한 진보적인 심리학도 등장한다. 러시아 혁명과 함께 시작된 마르크스주의 심리학도 이때 등장했다.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의 핵심은 객관 세계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인간이 자기 인식을 통한 지식의 습득 또한 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다. 인간이 행동할 때 느끼는 동기와 감정을 파악하지 않았던 것이다. 
 
  현대 심리학에 이르러서는 구성주의와 기능주의가 등장해 대립각을 이룬다. 구성주의는 인간의 심리 요소를 분해해 분석하는 반면 기능주의는 심리의 기능을 강조한다. 이 둘을 동시에 비판하는 학파가 바로 행동주의다. 김태형 심리학자는 행동주의의 유명한 문구로 심리학자 왓슨의 선언을 들었다. 그는 “심리학자 왓슨이 말하길, 나에게 아기들에 꼬리표를 붙여서 달라. 예를 들어 법관의 꼬리표를 붙여주면 아기를 법관으로 키워주겠다. 대통령의 꼬리표를 붙여주면 대통령으로 키워주겠다”고 말했다. 행동주의는 인간이 학습으로 성장할 수 있는 존재로 본 것이다. 조종하는 자들과 조종받는 자들의 개념이 행동주의 전제에 깔렸다. 이는 조종하는 입장인 지배층이 이용하는 심리학이 곧 행동주의라는 것이다. 근대에 발전한 심리학은 이렇게 지배층의 입장을 대변하며 발전한다. 
 
  어느 쪽에 설 것인가
  김태형 심리학자는 현대 심리학을 여러 측면에서 비판했다. 먼저 현대 심리학은 제국주의의 하수인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화 심리학이 인간에 대해서 부정적 견해를 유포시켰다고 말했다. 진화 심리학이 제국주의 침략과 자본주의 착취를 합리화시키는 데 이용돼 왔다는 것이다. 
 
  ‘주관 관념’을 갖고 접근하는 것 또한 현대 심리학이 가지는 문제점 중 하나이다. 주관 관념이란 객관적인 문제를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태도를 말한다. 김태형 심리학자는 상사와의 갈등을 겪고 있는 사원을 예로 들었다. 사원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상사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해보라는 답을 내려주는 태도가 바로 주관 관념이다. 그는 이론을 보완하기 위해 또 다른 이론을 섞는 경향도 현대 심리학의 문제점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가진 심리학은 어떻게 진정한 과학적 의미의 심리학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그는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올바른 인간관에 따라 심리학이 전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와 인간을 연결해 이해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심리학자들이 현실적인 문제와 현실에 있는 인간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이라면 분단 상황이 한국인에게 현실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현실에서 강자와 약자의 대립에서 심리학은 굳이 객관적 중립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금까지 현대 심리학이 대체로 가진 자들, 제국주의자들, 지배자들의 처지를 대변해 왔다면 이제는 없는 사람들, 억눌린 사람들,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야 한다”며 강연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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