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가 무르익으면 거구를 일으켜 웅숭깊은 목소리로 자작시를 낭송하던 시인을 기억한다. 시인이라는 이름을 얻기 전부터 이미 시인이었던 이영광은 어느새 네 권의 시집을 낸, 이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이 되었다. 내가 그의 시에 깊이 빠진 것은 『그늘과 사귀다』를 읽고 나서였다. 육친과의 사별이라는 시간을 통과한 시인의 지독한 외로움이 아로새겨진 그 시집을 오래 곁에 두고 읽었다.

  세 번째 시집 『아픈 천국』에서부터 이영광은 부조리한 사회적 죽음에 관심을 보이며 좥유령좦 연작시들을 쓰기 시작했다. 있어선 안 되는 죽음이 너무 많은 시대가 그를 ‘유령’의 시인으로 만들었다. 처음 그가 『유령』 연작시를 쓴 것은 용산 참사를 겪고 나서였다. 우리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참사 앞에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슬퍼했지만, 억울한 죽음은 충분히 애도되지 못했다. 이 도시에 드리워진 우울은 그로부터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조간은 부음 같다/사람이 자꾸 죽는다”. 이 도시는 “여전히, 진압 중이고/침입 중이고/폭행 중이다”(『유령』).

  그가 그리는 '아픈 천국'은 어떠한가? “가시숲에 긁히며 돌아오는 지친 새들도, 아까징끼 바르고 다시 놀러나온 아이도, 장기휴직중인 104동의 나도 사실은 실전의 정예들”임을, 우리 모두는 “목숨 하나 달랑 들고 참전중이었”음을, “아픈 천국의 퀭한 원주민이었”음을 일깨워준다.

  2014년에 이영광은 『수학여행 다녀올게요-유령』을 발표했다. 4월 16일 08시 59분부터 17일, 18일을 거쳐 멎어버린 영원의 시간에 이르도록 시인은 말할 수 없는 목소리를 대신 들려준다. 그가 더 이상 『유령』 연작시를 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이제 불가능한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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