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입니다. 겨울을 맞아 앙상해진 나뭇가지들을 제대로 본 건 엊그제 밤입니다. 달달하게 술을 마신 후였습니다. 친한 친구의 33번째 생일이었거든요. 답답한 재킷을 벗어놓은 우린 신나게 마셨습니다. 마치 23살의 어느 한순간처럼 말이죠. 안주도 넉넉했습니다. 4가지 부위만 나온다는 기본 메뉴 대신 적극적으로 추천받은 ‘실장님 스페셜’ 메뉴를 시켰습니다. 20대였으면 그런 상술에 넘어가지 않았겠지만 우린 30대였습니다. 삶을 월급과 맞바꿔 가며 열심히 노동 중인, 메뉴 업그레이드 정도의 여유는 부려도 좋은 그런 30대 중반의 아저씨들.

  ‘실장님 스페셜’ 메뉴보다 맛있었던 건 추억이란 안주였습니다. 더는 추가되지 않는 참치 대신 끊임없이 과거 이야기를 꺼내놓았죠. 일상에 치여 떠밀렸던 과거의 추억들을 그렇게라도 다시 붙잡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참치 집에서 나왔을 때 나뭇가지들의 앙상함을 마주했습니다. 배가 빵빵해진 후라 그런지 가지의 앙상함이 왠지 더 측은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는 꿈이 없다며 탄식하던 친구의 쓸쓸한 시선이 생각나더군요. 진급 심사와 이직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던 다른 친구의 표정이, 결혼 준비의 힘듦을 토로하던 또 다른 친구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술자리에 잠시 머물렀던 정적과 그 정적을 깼던 한숨의 무거움이 생각나 버렸습니다. 결국 우린 밤새 술을 더 마셨죠.

  후배 여러분도 자신을 겨울의 나뭇가지 같다고 느끼시나요? 아닙니다. 아직 봄의 씨앗이고, 여름의 푸른 떡잎과 가을의 꽉 찬 열매일 겁니다. 물론 앙상함을 느끼는 순간도 많을 겁니다. 저도 그랬고 우리 모두가 그랬거든요. 그 초라함을 감추려 ‘썸’을 탑니다. 연애든 뭐든 썸이 문제에요. 이성과도 썸만 타고 꿈이나 삶과도 썸만 타려 하니까요. 전공 서적과 썸을 타고 학점과도 썸을 타고 이력서와도 썸을 탑니다. 썸만 타긴 싫지만 썸이라도 타야 할 것 같아 그렇게 합니다. 불안하니까요.

  괜찮습니다. 불안해하지 마세요. 불안 자체를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잠깐의 안정을 위해 불만 가득한 현실을 택하지 마세요. 그래야 썸만 타지 않고 제대로 된 연애를, 삶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싫은 것도 감당할 수 있는 체력이 생깁니다. 합리적인 선택만 하느라 포기했던 낭만적인 선택을 즐길 수 있게 되죠. 그러다 보면 꿈을 가질 수 있습니다. 특별한 메뉴를 시킬 수 있는 돈이 있다고 특별해지는 게 아닙니다.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꿈이 있다면 그 자체로 유일무이하게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이겠죠.

  저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작가란 직업 역시 순탄하진 않지만 평범함을 특별하게 바꾸는 작업에 매력을 느끼고 있어요. 지금 이 평범한 시간이 후배 여러분 자신만의 특별함을 깨닫게 되는 특별한 시간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제 이야기만 늘어놨지만 몇 년 후엔 이 지면에서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불만보다 불안을 즐길 줄 아는 아주 특별한 후배님의 이야기를요.

김정훈 동문
신문방송학과 02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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