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K는 요즘 부쩍 술이 늘었다. 시절이 어느 시절인데 여적 술독에 빠져 사느냐는 꾸중에 도리어 큰소리다. “좋아서 마시는 줄 아세요? 이게 다 선생님 탓이에요. 이럴 줄 알았으면 대학 같은 거 오지 말 걸….”

  K는 취기 탓인지 붉어진 얼굴로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가 다니는 학교는 올해 초 ‘학부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이라는 거창한 사업 계획을 발표하며 ‘융복합적 사유능력과 창조적 소통 및 협동능력,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글로벌시티즌십은 물론 문화예술적 역량까지 갖춘 다빈치형 창의인재’를 만들겠노라고 선포했다. 단순 열거하기에도 숨찬 그 인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학과의 틀을 없애고 학문단위를 유연하게 만드는 게 필수라고 역설하면서 말이다. 공학계열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의 생존경쟁이 불가피하며 취업률을 강화해야 한다는 배경설명도 잊지 않았다.
 
  휘황찬란한 미사여구로 치장했지만 K에겐 그냥 구조조정을 용이하게 만들려는 포석 정도로 보였다. 사회적 수요, 높은 취업률이라는 미명 아래 자본의 흐름에 편승하자는 것 아닌가. 어디에서 어디로 몇십명의 정원이 왔다 갔다 하는 숫자놀음에 개별 숫자들이 겪어야 할 고통과 희생은 고려대상이 아닌 듯했다. 그런 것쯤은 ‘대를 위한 소의 희생’ 따위로 눙쳐지기 마련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으면 아득함에 술을 털어 넣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K와 생각이 비슷했던지. 학내 구성원들의 반발은 거셌고 결국 대학본부의 소위 ‘개혁안’은 정시 모집 학생들에 한해서만 ‘광역화 모집’을 실시하는 반쪽짜리로 전락했다. 그 과정에서 지친 탓인지, 김이 샌 탓인지 그 광역화 모집 학생에 대한 교육 방안은 오리무중이다. ‘공통전공’과목을 만들어 전공선택 전 학생의 역량과 경험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학생이 원하는 전공을 맘껏 선택하게 해주겠다던 큰소리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그런 것쯤은 ‘식은 떡밥’이 된 지 오래였다.
 
  그렇게 소동이 일단락되는가 싶더니 최근에는 갑자기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PRIME 사업)’이란 게 튀어나왔다. 선진화 계획은 서막에 불과했던 것일까. 사회적 수요에 맞도록 대학의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유도하겠다고 나선 정부가 그 대가로 내놓은 건 ‘돈’이었다. 역시 자본의 힘은 위대했다. K가 다니는 대학뿐만 아니라 전국 거의 모든 대학들이 300억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이 대목에 이르러 K의 숨은 거칠어졌고 얼굴은 분노와 술기운이 뒤섞여 붉으락푸르락했다.
 
  K는 토해내듯 묻는다. “이런 대학이 왜 필요하죠? 사회적 수요에 휘둘려서, 줏대 없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게 경쟁력 있는 대학인가요? 대학은 사회에 올바른 가치와 방향을 제시해주는 곳이라면서요. 선생님이 그랬잖아. 말해봐요. 대학의 발전은 교수의 논문 수와 외부에서 따오는 연구비, 취업률 따위와 등치되는 건가요? 그럴 거면 그냥 직능 학교를 두면 되는 거잖아요. 왜 거창하게 대학씩이나 되는 이름을 붙여 소모적인 경쟁을 계속하냐구요. 선생님, 이제 저는 왜 대학이 필요한지 모르겠어요.”
 
  선생님은, 쉽사리 입을 뗄 수가 없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