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나 선후배와 지내다 보면 가벼운 농담이나 스킨십을 하며 장난도 치진 않나요? 이쯤 되면 친해졌다 싶어 수위가 높은 농담을 던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친해서 했더라도, 누군가에겐 불쾌함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이번 심층기획에서는 친밀한 관계 속에서 폭력을 느낀 학생들을 만나봤습니다. 대부분은 수치심을 느끼더라도 관계가 불편해질까 봐 웃으며 넘기고 있었죠. 웃음 뒤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 일상의 이면을 통해 만나보실까요?
 
 

 

학내 성폭력 현황

 
성폭력이란 주제의 특성상 인터뷰에 응해 준 대학생 모두를 가명으로 싣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의 역지사지(易地思之). 초등학생 시절부터 배웠던 태도지만 지금의 대학생을 보면 제대로 배운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여전히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심한 말을 내뱉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생활을 하다 보면 동기 모임이나 MT와 같이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가 잦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다소 선정적인 내용의 농담이 오고 가는 것은 물론 거리낌 없는 스킨십이 이뤄지기도 한다. 행위의 당사자에겐 그저 ‘친근함’과 ‘유머러스함’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잠시 잊고 있던 역지사지의 정신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상대방도 친근하고 유머러스하다고 느꼈을지 말이다.
 
이 손 좀 치워줄래?
친밀함의 표시로 한 스킨십도 누군가에겐 불쾌할 수 있다. 친근함과 성희롱의 애매한 경계에서 몇몇 학생들은 신체 접촉으로 수치심을 느낀 적이 있다고 호소했다. 1학년 1학기, 대학생활을 즐기기 위해 학과 학생회도 가입하며 본격적으로 학과 활동에 돌입한 김진서 학생(숭실대·가명)은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MT를 떠났다. 하지만 기대도 잠시, MT에서 친한 친구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남자 동기가 김진서 학생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은근슬쩍 그 친구의 엉덩이를 만진 것이다. “학기 초여서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였는지 제 친구도 그 자리에서 바로 항의하진 못했어요. 나중에서야 여자 동기들에게 기분이 매우 나빴다고 털어놓았죠. 결국 소문이 퍼지면서 그 남자 동기 귀에도 들어갔지만, 사과는커녕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변명만 늘어놓더라고요.”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범죄, 성추행도 마찬가지다. 평소 학과 동아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박희진 학생(건국대·가명)은 그날도 어김없이 동아리 사람들과 즐겁게 술자리를 가졌다. 하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박희진 학생의 친한 여자 동기가 성추행을 당하고 말았다. “한 남자 선배가 취한 제 동기를 부축해 나가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고는 그 동기를 과방으로 데려가 가슴을 만졌죠.” 술에 깬 여자 동기는 박희진 학생을 비롯한 몇몇 학생들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며 수치스러움을 밝혔지만 대처 방안을 몰라 쩔쩔매야 했다.
 
 이종현 학생(경영경제대·가명)도 선배의 ‘나쁜 손’에 옴짝달싹하지 못 했던 적이 있다. MT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고학번 여자 선배가 이종현 학생의 팔에 가슴이 닿도록 팔짱을 꽉 끼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그 선배도 자기 가슴이 제 팔에 닿는 걸 알았을 텐데 왜 팔짱을 풀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그 선배가 절 희롱하는 것 같아서 짜증이 났죠.” 하지만 학번 차이가 많이 나는 선배였기에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종현 학생은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친근함을 가장해
은근슬쩍 다가오는
‘나쁜 손’

지나친 ‘19금 드립’
너에겐 유쾌해도
나에겐 불쾌하다

농담도 정도껏!
‘성폭력’은 신체적인 접촉만이 전부는 아니다. 상대방에게 불쾌하고 굴욕적인 느낌을 주었다면 ‘언어’도 성폭력의 범주에 포함된다. 따라서 술자리 혹은 SNS 등에서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는 음담패설도 성폭력이 될 수 있다. 많은 학생들도 친한 동기나 선배의 성적인 농담에 당황스럽고 수치스러웠다고 밝혔다.
 
 “야, 너는 딸기우유 좀 마셔야겠다.” 술자리에서 한 남자 동기가 무심코 던진 말에 최유리 학생(사과대·가명)은 너무나 당혹스러웠다. 딸기우유를 마시면 가슴이 커진다는 속설 아닌 속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건 좀 심했다’는 다른 남자 동기의 핀잔으로 상황은 정리됐지만 최유리 학생의 기분은 정리되지 않았다. “기분이 너무 나빠 억지로 웃을 수도 없었어요. 하지만 괜히 예민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화를 내지도 못했죠. 그 뒤에도 제대로 된 사과를 요구하지도 못하고 그냥 그 애를 피해 다녔어요.”
 
 김진서 학생은 한 남자 동기 때문에 수치심은 물론, 분노에 찼던 일이 있었다. 클럽에 간다는 남자 동기를 놀린답시고 ‘원나잇 스탠드(One-night stand)’를 암시하는 카톡을 보냈던 것이다. 그 순간 재미있게 흘러가던 단톡방엔 정적이 흘렀다. “명확한 피해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 남자 동기에게 뭐라고 말도 못했어요. 모두 수치심은 느꼈지만 사과하라고 하면 괜히 유별나 보일 것 같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죠. 몇몇 동기들도 기분 나빴다는 뒷말이 있었지만 결국 그 학생에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넘어갔어요.”
 
 편할수록 조심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상대방이 편할수록 함부로 대했다. “야, 너는 딱 봐도 3분 카레일 것 같은데?” 문성준 학생(성균관대·가명)은 스스럼없는 사이의 ‘여사친(여자 사람 친구)’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들은 농담으로 난감했던 적이 있었다. “다른 친구들도 다 같이 있던 술자리에서 수위 높은 농담을 하니까 기분이 상했어요. 하지만 술을 좀 많이 마시고, 막역한 사이라서 그런 거겠지 하고 넘겼죠. 그 농담이 성희롱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분위기 깨게 왜 이래?
“내가 여기서 화를 내야 할지 쿨하게 넘겨야 할지 고민돼요. 결국 그냥 어물쩍거리며 넘기죠. 그 자리에서 대놓고 불쾌함을 드러내면 분위기가 깨지잖아요.” 최유리 학생은 친구들 사이에서 ‘불편한’ 성적인 농담이 오가더라도 ‘불쾌한’ 티를 내지 못한다. 이는 비단 최유리 학생뿐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성폭력을 당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한 이유는 단 한 가지. ‘괜히 예민하게 굴어 재미있는 대화 분위기, 술자리 분위기를 깰까 봐’라는 걱정이었다. 친한 사람들과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수치심을 애써 무시한 채 웃어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재밌는 드립’ 정도로 여기던 농담이 누군가에겐 고민거리로, 수치스러운 이야기로, 마음의 상처로 다가오고 있었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