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성길을 따라 남산으로 오르는 길, 성벽 너머로 중구 다산동의 주택가가 펼쳐져 있다.
●낙산, 흥인지문 구간 
 높은 서쪽과 북쪽에 비해 낮은 지세의 동쪽은 수도 방어에 있어 군사적으로 가장 취약한 곳이었다. 험준한 바위산으로 이뤄진 서쪽과 북쪽보다 철저한 대비가 필요했던 동쪽, 낙산과 흥인지문 구간은 어떤 모습을 띠고 있는지 도성길의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낙산 구간 
 서울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의 높이는 124m로 내사산인 백악(342m), 인왕산(339m), 남산(270m) 중 가장 낮다. 과거 낮은 높이로 외적이 침입하기 용이했던 낙산, 지금은 산책을 나온 시민들에게 특유의 부담 없는 높이가 친숙하게 다가온다. 전반적으로 낮은 경사가 이어지는 낙산에 가벼운 마음으로 발을 내디뎠다. 
 
 사소문 중의 하나이자 낙산 구간의 시작점인 혜화문을 지나 124m의 낙산으로 오르는 길은 성곽이 비교적 잘 보존돼 있는 구간이다. 이를 증명하는 것은 울퉁불퉁한 성벽의 모양. 1396년 축조된 도성은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번의 보수를 거쳤고, 그 성돌의 모양도 변화했다. 하층부는 옥수수알 모양의 돌들이 제각각의 크기와 모양을 뽐내고 있는 반면 상층부로 갈수록 정교하게 다듬어진 돌들이 견고하게 쌓여있는 모습이었다. 일제강점기, 6·25전쟁과 같은 수난을 겪으면서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스쳐 갔다.    
 
 낙산 구간의 특별한 점 하나, 바로 성 밖에도 길이 나 있어 성벽의 바깥 면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도성길이 성안에 있기에 웅장한 성벽의 모습은 살펴볼 수 없는데 낙산 구간에서는 이것이 가능했다. 성벽을 바라보며 걷다 보면 공격은커녕 깎아져 흐르는 경사의 성벽을 감히 넘어볼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위압적인 성벽을 접하니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선조들의 노력이 느껴졌다. 
 
 여유롭게 도성길을 걷다 보니 적당히 숨이 차오르는 느낌과 함께 낙산 구간의 최고점인 낙산 공원에 도착. 내사산 중 도심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낙산, 서울의 경치가 손에 잡힐 듯 펼쳐졌다. 그 덕분인지 낙산공원은 많은 관람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도성길보다는 낙산 공원으로 더 유명한 이곳, 두 발로 걸어오니 경치는 감동적이고 시원한 바람은 달콤했다. 
 
 낙산공원을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낙산 구간의 끝이 보이면서 번잡한 사거리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흥인지문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흥인지문 구간
 성문 밖으로 옹성이 둘러싸고 있는 웅장한 모습의 흥인지문, 이는 한양에서 지대가 가장 낮은 곳을 방어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지대가 낮은 만큼 한양의 물길은 모두 동쪽으로 모이게 되는데, 물길을 도성 밖으로 보내기 위한 수문인 오간수문과 이간수문도 위치해 있었다. 
 
 과거에는 염초청·훈련원 등 군사시설이 밀집돼 있었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도로와 경성운동장 건설 등으로, 해방 후에는 도로 확장과 주택 건설 등으로 대부분의 성벽과 유적들이 철거되거나 훼손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흥인지문 구간을 걸을 때는 성벽을 걷는다기보다는 그 흔적들을 상상하며 걷는 것에 가까웠다. 흥인지문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보이는 ‘광희문’이 한때는 그곳까지 성벽이 이어져 있었음을 짐작게 할 뿐이었다. 과거 성벽이 존재했던 공간을 더듬으며 주택가를 가로지르니 남산 구간의 시작인 장충체육관이 눈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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