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화 <국제시장>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60년대 산업화 시대를 그린 영화에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향수가 배어 있다는 것이 논란의 내용이었다. 이는 곧 영화를 관람하러 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고, 윤제균 감독은 자기검열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등장 신(Scene)을 삭제하기도 했다.
이미 30여 년 전에 서거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아직도 우리 사회의 콤플렉스다. 관련 사안이 발생하면 머리로 파악하기 전에 감성부터 불쑥 작용한다. 그는 우리에게 어떤 존재일까. 함규진 교수의 글을 통해 한국사회 속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미지가 어떤지 알아본다. 동시에 김성윤 강사의 글을 통해 그 이미지를 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평가해보자.
 


부자연스럽게 획일화된 이미지
한국정치 또한 박제된 상태
다양한 문제들 논의해야

 

 구글에서 “박정희”로 이미지 검색을 해보면‘약 287,000개’의 사진이 뜬다. 압도적인 숫자처럼 보인다. “노무현”(약 500,000개)보다는 적고 “김대중”(약 237,000개)보다는 좀 많지만, 이미 36년 전에 소멸된 피사체임을 감안하면 대단하다. 그만큼 오늘날에도 박정희에 대한 ‘기억’은 재생산되고 있으며, 그것은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에도 박정희는 ‘개재되어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사진인데, 좀 이상하다. 일단 개체수에 비해 가짓수가 너무 적다. 검색을 4페이지까지 하는 동안 실제 사진의 종류는 십여 개밖에 안 된다(“박정희”로 검색되었으나, 박정희의 사진은 아닌 경우, 가령 김재규의 사진 등은 제외). 그리고 종류가 다른 사진들이라도 대체로 비슷하다. 울고 웃는 사진, 생활의 한 장면을 담은 사진은 거의 없고 양복을 입은 채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두상이나 상반신이 대부분이다. 아니면 선글라스에 군복 차림 사진이거나. 그리고 대중에게 사진 자체로, 또는 삽화나 만화 등의 형태로 집중 재생되고 있는 사진은 그나마도 다양성이 없는, 단 두 장이다.
 
하나의 박정희, 두 개의 얼굴
 한 장은 그가 살아서 청와대에 있을 때, 박정희 관련 이미지(교과서든 관공서에 걸린 초상이든)를 독점하다시피 했다. 왼편 살짝 위쪽을 바라보는 듯한 각도에서 찍혔고, 이대팔 가르마에 넥타이를 맨 양복 차림의 상반신상. 명암의 대비가 뚜렷해서 석고상이나 마네킹처럼 보이며, 눈가의 잔주름이나 튀어나온 광대뼈 등이 드러나지 않아 실제보다 잘 생겨 보인다. 필자는 국민학교 시절 이 사진으로만 박정희를 접했는데, ‘우리나라 대통령은 참 미남이다’라고 생각했었다. 박정희 사진이 들어간 우표는 그의 ‘추모 우표’를 포함해 21종이 발행되었는데, 그 중 16종에 이 사진이 쓰였다(1969년 이후로는 계속 이 사진만 쓰였는데, 그러다가 처음 새로운 사진, 늙고 지쳐 보이는 보다 현실적인 모습을 담은 사진을 쓴 1979년의 카터 방한 기념우표는 공교롭게도 그의 생애 최후의 우표가 되었다). 만약 그가 10.26을 모면하고 더 오랜 삶과 더 오랜 권력을 누렸다면 화폐에까지 이 사진 도안이 들어가지 않았을까?

 다른 한 장은 그의 생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사진, 5.16 현장에서 군복과 군모,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뒷짐을 지고 서 있는 사진이다. 이 사진은 주로 그를 비판하는 이들에 의해 사진으로, 그림으로 재생된다.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좌우에 버티고 서 있는 부하들 사이에서 뒷짐을 진 그의 모습은 오만하면서 여유로워 보이고, 굳게 다문 입과 선글라스는 군복과 함께 보는 이를 긴장시킨다. 박정희는 집권 초기에 선글라스를 애용하여 미국을 방문, 케네디와 회담할 때도 선글라스 차림이었는데, 뭔가 음험하고 감추는 게 많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가 더 이상 대중정치인이기를 포기한 1970년대부터 선글라스는 사라지고, 그의 초상도 ‘마네킹 사진’으로 획일화된다.
 
지금도 강력한 박정희 ‘이마고’
 “노무현” 검색 사진들과 대조해 보면 박정희의 사진이 얼마나 획일적인지 뚜렷이 드러난다. 노무현의 사진들은 다양하다. 울고 웃고 찌푸리고 흘기고 화들짝 놀라고 삐치고 멍때리고 하는 다양한 표정. 다양한 각도. 차림새나 시추에이션도 가지가지다. 노무현의 사진이 실제 이 세상에 살다 간 사람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하면, 박정희의 사진에는 자연스러움과 생동감이 없다. 노무현에 비하면 오래 전에 살았던, 권위주의 시대 정치인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이상하다. 그를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으로만 이미지화하려는 사람들이 줄기차게 5.16 사진만 재생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그를 숭배하는 사람들도 왜 획일적일까? 보통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의 이미지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모으며, 생전의 일상 하나하나를 눈앞에서 보는 듯이 재현하려고 하지 않는가?

 아니, 숭배하는 대상의 이미지를 일정하게, 그것도 자연스럽지 않은 모습으로 고정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종교에서 받드는 신상, 또는 우상이다. 예수는 대부분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박힌 모습으로 형상화되며, 부처는 도식화된 머리 모양과 복장을 하고 무표정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므로 인지되고 기억되지만, 사람다움이 지나쳐 친근해지면 신성함이라는 본질을 잃는다. 그래서 부자연스럽게 획일화한다. 그런 부자연스러운 획일성은 이마고(imago)가 되며, 어느 교회 어느 절에 가도 동일한 모습으로 체현됨으로써 반복적으로 강박된다.
 
박정희 형상에서 눈을 돌려야 할 때
 적어도 나이가 든 사람들에게 그 이마고의 강박력은 대단하므로, 박정희의 마네킹 사진을 코스프레하려는 정치인도 나왔다. 이인제가 그랬고, 이명박이 그랬다. 두 사람은 상식적으로 박정희의 명실상부한 계승자라고 해야 할 정치인과 경쟁하면서도 박정희 이마고를 연출했다. 박정희의 형상과 마찬가지로 그의 행적도 획일적으로 이마고화되었다. 그의 지지자들에게 박정희는 경제를 살리고 나라를 구한 영웅이다. 비판자들에게는 배신과 반역을 반복한 기회주의자다. 깔끔한 양복과 한올 흐트러짐 없는 듯한 머리모양을 하고 가늘게 뜬 눈으로 뭔가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있는 듯한 서광이 비친 얼굴. 이 사람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경제는 좋아지고 국운은 중단 없는 전진을 할 것만 같다. 시퍼런 군복과 시커먼 선글라스로 오만하게 버티고 서서 공포와 죽음의 냄새를 사방에 흩뿌리는 사람. 이 사람에게는 허위와 폭력, 억압과 강제 외에는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박정희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획일성에서 벗어나 보다 객관적이면서도 종합적인 시각을 갖추어야 답을 얻을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일은 그의 이마고가 너무도 오래, 박제가 되어 버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정희’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그곳이 술집이든 인터넷 커뮤니티든 ‘박정희가 경제를 살렸지’ ‘무슨 소리야? 박정희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괴롭혔는데’라는 말만 강박적으로 반복될 뿐이다. 두 가지 말이 사실은 서로 다른 차원임에도, 모든 논쟁은 결국 두 가지 말로 돌아가면서 결국 논쟁이 성립되지 않는다. 21세기도 제법 시간이 흘러, 밀레니엄 베이비들도 이제 고등학교 들어갈 준비를 할 만큼이건만, 아직도 이 땅의 정치 이념은 60, 70년대에 경제성장을 달성한 이야기에, 아니면 그 시대에 민주화 투쟁을 벌인 이야기에 강박되어 있다. 한국정치 현실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들을 보라. 먹고사니즘, 레드 콤플렉스, 지역주의, 재벌. 모두가 박정희 시대에 배태된 것들 아닌가. 박정희를 이중적으로 박제함으로써, 한국정치는 아직도 박정희에게 박제된 채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의 눈을 감겨야 한다. 그의 선글라스를 서랍에 집어넣어야 한다. 오늘날, 바로 여기, 우리 자신의 형상에 눈을 돌리자. 그리고 그 가운데서 지도자를 찾는다. 신도 악마도 아닌,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인간으로서 다채롭고 정감이 가는 인간적 드라마를 보여주는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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