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문턱이 낮아지니
취업 문은 좁아졌다

 

 

  최근 뒷심을 발휘해 흥행한 영화 <스물>은 영화제목대로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유쾌하게 풀어냈다. ‘대학생’이라는 새로운 명찰을 단 오늘의 스무 살 대학생들은 영화처럼 매일 웃고 즐기기에는 압박이 심하다. 웃고 떠들면서도 항상 해야만 하는 일이 있기에 불안하다. 이는 가끔 수업시간에 들려주는 교수님들의 대학 시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교수님의 대학 시절이야 말로 영화  <스물>이다. 기성세대는 영화처럼 유쾌하고 자유롭게 대학을 다녔다. 왜 오늘의 청년세대는 그러지 못하는 걸까. 그때 그 시절과 지금은 왜 다른 걸까.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가 기성세대로서 일정 부분 책임을 통감한다는 듯 우리들의 불안에 대한 사려 깊은 분석을 해주었다.

  “제가 다니던 대학은 여러분이 다니던 대학과 많이 달랐어요.” 신광영 교수가 말하는 그때 그 시절의 대학교는 오히려 지금보다 그 수준이 떨어졌다. 권위주의 체제하에 학생운동을 막기 위해 휴교령이 밥 먹듯 내려졌고 상대적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의 숫자도 지금과 비교해 아주 적었다. 4년 동안 배울만한 시간도, 배움을 가르칠 수준 있는 교수의 강의도 없는 상태에서 대학은 졸업장 주는 역할만 했다. 그런데도 취업이 잘되었던 것은 대학생이 ‘희소가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1970년대 대학 진학률은 20%대 정도로 현재 대학 진학률 70%에 비하면 상당히 낮았다. 대학생이란 지위가 일할 수 있는 능력을 보장할 수 있는 시기였다. 반면 오늘날 대학의 숫자는 너무 많아졌고, 그에 따라 대학생의 수도 많이 늘었다. 1980년대 신군부가 대학 정원을 40%나 늘렸고, 96년 문민정부가 ‘대학 설립의 준칙주의’를 도입하면서 대학 설립 조건이 완화되었다. 이때부터 지역별로 우후죽순 대학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학생의 희소가치가 사라진 것이다.

  대학생이 상대적으로 많아지면서 취업이 어렵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책임을 공급 측에만 물을 수는 없다. 대학생 공급이 증가한 만큼 그들을 필요로 하는 기업의 고용 수준이 늘지 않은 것도 큰 문제라는 것이다. 기업이 성장을 계속하면서도 고용을 하지 않는 ‘성장 없는 고용’은 97년도 체제에서 비롯된다. 97년에는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외환위기가 발생함에 따라 부족한 외채를 갚기 위해 정부는 IMF(국제통화기금)에서 차관을 빌린다. IMF는 차관을 빌려주면서 정부에게 몇 가지 정책을 시행하게끔 한다. 그중 하나가 ‘노동시장 유연화’다. 이에 따라 98년부터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 등이 도입되었다. 박힌 돌은 쉽게 해고되고 굴러온 돌은 비정규직으로 채용되는 것이다. 고용을 유연화한다는 명목으로 직업의 불안전성도 커지면서 청년세대는 물론이고 중장년층, 노년세대들의 소득 불안전성은 그만큼 커졌다. “모든 세대가 불안정해진 겁니다. 94년에 외환위기를 겪고 IMF의 차관을 받은 스웨덴이 빈곤과 양극화의 문제를 전혀 겪지 않은 것을 보면 우리들의 정책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잘못된 정책으로 고용 불안전성이 커진 가운데, 기업들은 고용 없이 성장을 계속 해왔다. 90년대 들어 자동화와 전산화를 통해 필요한 일자리의 절대적인 수가 줄어든 것이다. 많은 부분이 디지털화되면서 제조업뿐만 아니라 사무직 일자리까지 상당히 줄었다. 최근 들어서 최신 경영기법 도입과 첨단 기술 등으로 업무의 전산화는 더욱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대학생은 늘었고, 고용은 늘지 않았다. 일자리 하나에 달려드는 대학생의 수가 늘었다는 말이다. 일자리 하나를 얻기 위해 청년 세대는 ‘스펙’을 쌓기 시작했다. 늘지 않는 일자리에 갖춰야 할 스펙만 늘어갔다. “생각해 보세요. 일자리는 하나인데 스펙을 아무리 높인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겠어요? 그냥 다 같이 힘들어지는 겁니다.” 무의미한 스펙 제로섬게임만이 청년 세대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고용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거나 고용이 늘어나지 않으면 지금 대학생들의 상황이 나아지기 힘들 겁니다.”

  신광영 교수는 “정책 입안자들이 정책 대상자들을 조금 더 사려 깊게 배려했더라면 지금의 청년세대들은 스무 살을 즐겼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급격히 늘어난 대학은 인제 와서 강압적인 방식으로 구조조정 당하고 있다. 97년 외환위기의 후유증은 18년째 지속되고 있다. 그 사이 비정규직법은 국회를 통과했다. 노동시장 유연화는 2015년 경제부총리의 지상과제가 되었다. 15년 후의 30학번들은 어쩌면 지금의 15학번을 부러워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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