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 안에 한 남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다. 1793년 7월 13일, 당통·로베스피에르와 함께 프랑스 혁명을 이끌던 지도자 마라는 누군가의 칼에 암살당한다. 당시 마라의 죽음은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상황을 화폭에 담은 자크 루이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에서 마라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묘사된다. 피부병을 앓아 지저분했던 얼굴은 깨끗하게 묘사됐고 나무탁자에는 “뇌물을 거부했기에, 나를 살해했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마치 혁명을 이끌다 희생된 고귀한 순교자로 그려진 마라는 당시 사람들로 하여금 혁명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같은 상황을 담은 폴 보드리의 <샤를로트 코르데>는 <마라의 죽음>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샤를로트 코르데>에는 <마라의 죽음>에서 볼 수 없었던 암살자 ‘샤를로트 코르데’가 등장한다. 폴 보드리는 살해당한 마라의 모습보다 암살을 자행한 샤를로트 코르데에 집중한다. 작품 속에 등장한 그녀의 표정은 당당하기까지 하다. 그렇다. 자코뱅파의 주목받는 지도자였던 마라를 암살한 사람은 바로 지롱드파의 한 ‘여성’이었다.

 프랑스 혁명 초기에 여성은 혁명의 주체로 역사책을 장식하기 시작한다. 혁명이 일어난 1789년 10월, 만여 명의 여성들은 베르사유를 향해 행진했다. 당시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에 충실했던 여성들은 그 누구보다 ‘빵값’에 민감했다. 흉년으로 인해 치솟은 빵값을 견디지 못한 여성들은 루이 16세로부터 정상적인 빵 공급을 약속받았다. ‘빵의 행진’에서 승리를 거둔 여성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루이 16세를 튈트리 궁에 가둬 혁명의 포로로 만들었다. 혁명사에 처음 등장한 여성의 모습이다.

 성공적인 행진을 마친 여성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1791년 9월 올랭프 드 구즈는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을 발표한다. 그녀는 권리선언을 통해 여성의 발언권과 의사 표현의 권리를 주장했다. 여성들이 혁명에 끼치는 영향력은 점점 커졌다. 마침내 1793년 5월 여성들은 ‘혁명적 공화주의 여성 시민 협회’를 정식으로 발족하기에 이른다.

 여성들은 군대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들은 자신의 남편들이 전투에 나서도록 자극했다. 그들은 전투에 나서지 않는 남성들을 ‘겁쟁이’로 부르며 전투로 내몰았다. 또한 당시 여성들은 군대에 소속될 수 없었지만 일부 여성들은 남장을 하고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다. 공식적으로 21명의 여성들이 전투에 가담했지만 실제로 전투에 가담한 여성들은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여성들의 갈수록 폭력적인 활동들은 남성들로 하여금 거부감을 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1793년 10월 국민공회는 마침내 여성들의 정치적 활동을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과격한 방법으로 정권을 장악한 자코뱅파가 도리어 과격한 여성들에 의한 사회 질서의 붕괴를 우려한 것이다. 이후 프랑스 혁명은 여성들이 철저히 배제된 채 남성들에 의해 진행됐다.

 혁명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여성들은 결국 남성들이 작성해나간 혁명의 역사에서 사라졌다. 여성들이 혁명기에 이뤘던 성과들은 물거품이 됐고 이들은 다시금 어머니와 아내의 역할을 수행하는 평범한 여성들로 되돌아갔다. 사람들에게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퍼트린 프랑스 혁명은 그 위대함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에게 있어서 반쪽자리 혁명이 아니었을까? 마치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에서 사라진 샤를로트 코르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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