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가이 양성소’, ‘픽업 아티스트 아카데미’. 실제로 영업 중인 ‘연애학원’들의 간판 이름이다. 사랑이라는 가장 원초적이고 사적인 영역에까지 자본이 침투한 것도 슬프지만,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어느새 연애가 ‘기술’ 학습이 필요한 분야로 여겨지게 됐다는 점이다. 학벌이나 경제력으로 줄 세우기에 익숙한 요즘, 줄 뒤편에서 고개를 기웃거리는 이들에게 연애는 쉽지 않다. 연애를 시작하는 것도, 유지하는 것도 능력이 필요한 현실에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사랑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아닐까.

 

▲ 정태연 교수(중앙대 심리학과)가 사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랑은 ‘베팅(betting)
삼각형을 키우고 맞추는 과정

  철학에서는 사랑을 ‘영혼의 작용’이라고도 한다. 종교에서는 사랑을 ‘인류에 대한 아가페’라고, 생물학에서는 ‘번식을 위한 신체적 작용’이라고 본다. 이처럼 다양한 시각에서 제각기 사랑을 정의하지만 사랑이 인간의 심리 활동과 깊은 연관이 있음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다. 심리학에서는 사랑을 어떻게 정의할까. 사회 및 문화심리학을 전공한 정태연 교수(중앙대 심리학과)에게 물어봤다.
-심리학에서 정의하는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상대방에 대해 강하게 몰입하는 정서적인 집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정과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사랑에는 열정(passion)이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죠. 다른 말로 하면 성적인 욕구를 동반한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이러한 감정을 다른 누구와 공유하지 않는다는 배타성이 전제돼야 해요.”
-그럼 최근에 이야기되고 있는 폴리아모리(다자간사랑)는 사랑이 아닌가요.
“단둘이서 하는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배타성이 느슨해질 수밖에 없는데,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될 수 있죠. 하지만 사랑에서 발생하기 마련인 질투를 다스리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사랑이라고는 하기 힘들어요.”
-정의하는 범주가 모호한데요.
“폭 넓게 정의하고 있다고 보면 돼요. 두 사람 사이에서 도출될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관계를 정리한 것이니까요. 사랑을 빙자해 고통을 주는 것도 사랑이에요. 고통이 사랑 밖에서 나온 게 아니라 질투나 집착과 같이 사랑하는 감정에서 비롯한 것이니까요. 다만 정상적이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에 ‘병리적인 사랑’이라고 부르긴 합니다.”
-심리학은 사랑에 대한 정의(定義)에 있어 소극적인 것 같아요.
“심리학에서는 ‘모든 현상에 본질이 있다’는 본질주의적 입장을 취하지 않거든요. 예전에는 사랑을 명확히 정의내릴 수 있다고 보기도 했어요. 그러나 사랑에 본질이 있다고 규정하게 되면 그 정의를 벗어나는 다양한 사랑을 포착하지 못해요. 특히나 현대에는 다양한 모습의 사랑이 존재하잖아요. 따라서 사랑을 타인과의 맥락 속에서, 변화하는 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것이 심리학의 시각입니다.”
-현상을 관찰하고 정리하는 방법을 사용하는군요.
“그렇죠. 대표적인 학자로 스턴버그가 있어요. 그는 관찰을 통해 사랑이 ‘열정’, ‘친밀성’, ‘책임감’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됐다고 봤어요. 열정은 대상과 하나가 되고 싶은 강한 욕망을, 친밀감은 편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유의 정도를 말해요. 책임감은 사랑하기로 ‘결정’하는 것과 사랑을 유지시키는 ‘헌신’을 말합니다. 스턴버그는 이 세 요소를 ‘사랑의 삼각형’이라고 칭한 뒤 이로써 사랑을 설명하려고 했어요.”
-삼각형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를테면 삼각형의 크기는 전반적인 사랑의 크기를 나타내요. 또한 삼각형을 이루는 각 요소의 정도에 따라 다양한 삼각형의 모양이 생겨나죠. 아무 요소도 없을 경우를 제외하면 총 7가지 유형으로 설명 가능합니다. 정열만 많을 경우를 ‘도취적 사랑’, 세 요소가 모두 많을 경우를 ‘성숙한 사랑’이라고 분석하는 식으로요.”
-시간이 지나면 삼각형의 모양도 변화할 것 같아요.
“흔히 사랑은 영원하다고 하잖아요. 한편으로는 맞고 한편으로는 틀려요. 둘 사이의 관계가 계속된다는 점에선 사랑이 지속된다는 의미가 맞지만 그 와중에도 사랑의 삼각형은 계속 변화하거든요. 사랑이 시작될 때는 열정이 높죠. 첫눈에 반하기도 하고 열병을 앓기도 하니까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 열정은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레 하향곡선을 그리게 돼 있어요. 열정이 높은 불안정한 상태가 스트레스를 주거든요. 호르몬으로 봤을 때 이성에게 반응하는 시간은 최대 3년이라는 연구도 이와 맥을 같이 하는 거죠.”
-관계를 지속하게 만드는 건 다른 요소겠네요.
“일반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친밀감과 책임감이 증가해요. 서로 공유하는 영역이 넓어짐에 따라 상대와 함께 해야겠다는 책임감도 강해지게 되니까요. 그런데 열정이 줄어들 때 친밀감과 책임감이 높아지지 않으면 관계가 힘들져요. 흔히들 권태기를 겪고 헤어지게 되는 것처럼요.”
-그럼 관계를 시작하기 전 상대방의 눈길을 끌게 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신체적 매력이 강력하죠. 특히 우리는 얼굴을 통해 중요한 정보를 얻어요. 여성 여럿이 찰나의 순간에 지나칠 때 남성들은 흘긋 보기만 해도 누가 괜찮은지 파악할 수 있잖아요.(웃음) 한 연구에서는 피실험자로 하여금 이성의 사진을 20분의 1초만 보게 하고 과업을 시켰는데 사진에 있던 이성의 매력도가 피험자의 과업에도 영향을 미쳤다고도 해요.”
-신체적 매력이 그렇게 강력하다니 개인적으로 좀 슬퍼요.
“걱정하지 마세요. 상대방과의 ‘유사성’도 중요하니까요. 가치관, 태도, 기호가 비슷한 것도 이성에게 끌리는 큰 요인이 되요. 유사하다는 것은 그만큼 심리적으로 자신이 공감을 통해 지지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니까요. 결혼한 사람들의 외모와 나이가 유사하다는 사실도 이에 기반한다고 볼 수 있죠.”
-가치관 말고도 성격의 외향성·내향성도 중요하다고들 해요.
“성격이 비슷한 정도는 방금 말한 유사성에 큰 변수가 되지 않아요. 성격이 반대여도 마찬가지죠. 흔히들 본인과 성격이 비슷하거나 정반대여야 매력을 느낀다고 하는데 착각이에요. 물론 자상하거나 착한 성격이 플러스 요소가 될 순 있죠.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관이나 태도에요.”
-매력이나 유사성에서 통과했다면 그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배팅(betting)을 잘해야 해요. 사랑을 잘한다는 건 상대방에게 나를 얼마나 내놓을지 잘 결정하는 일이거든요. 어려운 일이에요. 많이 걸었다가 상대가 거절하면 그만큼 큰 상처를 입게 되니까요. 또 상대가 나한테 많이 표현하고 공유하는 만큼 나도 상응하는 정도로 보답해야 해요. 서로 배팅을 하는 모험 속에서 공유하는 영역을 넓혀가는 거죠.”
-주변에 보면 ‘조금씩만 거는’ 연애가 많은 것 같아요.
“요새 보면 금방 만났다가 금방 헤어지잖아요. 적게 걸고 나중에 헤어져도 아무렇지 않아하는 ‘쿨한 연애’를 하죠. 그러나 문제가 있어요. 조금만 걸면 그만큼 관계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상처 받을 일이 없고 함께 기뻐하는 감정을 모르게 되니까요. 여전히 나는 독립적인 존재로만 있는 거예요. 이런 경우 사랑이라고 할 수 없어요. 그리고 사랑이 아니니까 결국 외로움을 해소하지 못하죠. ‘옆에 있어도 외롭다’는 말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죠. 참 역설적이지 않나요. 편하기 위해 걸지 않는 게 결국 외로움을 불러일으키니까요.”
-최근에는 연애를 나중에 해도 된다는 인식도 있어 보여요.
“요샌 학업, 취업, 알바까지 힘든 일투성이잖아요. 연애를 포기하는 학생들도 많다고 들었어요. 온갖 일에 지치다 보니 연애에서 발생하는 부담을 꺼릴 법도 하죠. 그러나 사랑은 삶에 있어 부수적인 요인이 아니에요. 사랑은 타인과 같이하면서 상대와 나 둘 다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참 중요하죠. 좀 더 크게 볼 필요가 있어요.”
-‘배팅’의 타짜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요.
“스스로의 삶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야 해요. 상처가 두려워도 걸 수 있는 자신감이죠. 물론 누구나 자신의 단점 때문에 두려워해요. 하지만 그건 자연스러운 감정이에요.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자신의 배팅에 대한 결정권은 상대에게 있기 때문에 두려워하기 마련이거든요. 결국 배팅을 잘하게 하는 자신감은 곧 자신의 단점을 얼마나 수용하는지에 달렸어요. 이는 곧 연애를 하는 도중에도 역지사지로 상대방의 단점을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는지와 연결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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