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라리 죽지 그래 남정욱 저 | 인벤션 | 316쪽
 늦은 저녁, 발걸음을 멈춰 강남 센트럴 터미널에 대형 서점으로 향한다. 오밀조밀 나무계단 양측에 걸터앉아 저마다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는 모습이 때로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 지성의 고요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나무계단을 올라가면 가지런히 정돈된 책들이 우리를 반긴다. 그래서 만나게 되는 책은 유달리 많은 자기계발서와 힐링서적이다. 대학생들이 이토록 문학을 읽지 않고 자기계발서나 수험서만 읽는다면 앞으로도 노벨문학상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기사를 본 뒤였다.

 그 책 중에서 단연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이 책의 제목은 섬뜩하게도 『차라리 죽지 그래』다. 아니, 더 당황스러운 점은 이 책이 자기계발서라는 점이다. 이 자기계발서는 종전의 히트했던 자기계발서와 힐링서적을 비판함으로써 존재성을 확보하는 책이다. 청춘에게 성공과 행복에 어떤 보편적인 법칙이나 공식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책들이다. 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말들로 잠시나마의 위안을 주거나, 아니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인생관·사회관·세계관을 부추기는 책들이기도 하다. 저자는 실명비판도 주저하지 않는다.

 자기계발서를 꽤 많이 본 것 같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감탄하고 존경의 마음을 품기도 했고, ‘아침형 인간’이 되겠노라 다짐하기도 했으며, 종교적 믿음에 귀의해볼까도 생각했다. 결국 그 어떤 것도 나의 것은 아니었다. 모두 특출난 몇몇 황새들의 이야기이거나 나에게는 맞지 않는 옷들이었다. 또한 이런 책들은 성공이나 출세를 오롯이 자신의 노력으로만 치환하고 존재했던 행운이나 타고난 재능 같은 요소를 애써 등 돌리고 만다.

 힐링서적이 주는 위로와 격려는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천착하지 않은 채 위로만 받는다면 그것은 잠시나마의 환각이요 자기 도피일 뿐이다. 그 과정에서 잘못 형성된 사회적 편견과 미신은 근거 없는 사회에 대한 불만이나 불평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급기야는 비관론이나 냉소주의로 빠질 수도 있다. 그랬을 경우 상황은 오히려 더 나빠진다. 아프다고 누구도 그 아픔을 대신 느껴줄 순 없고 멈춰서 보이는 것은 없다. 더군다나 개인의 게으름과 잘못을 합리화하고만 있다면 이는 더 큰 문제다.

 『차라리 죽지 그래』는 칼 포퍼의 책 제목을 인용해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누구나 이 문제해결 과정에서 자신만의 자기계발서를 쓰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미래에 청춘은 모두 저마다의 자기계발서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끊임없이 그 과정에 기투(企投)한 청춘에 한해서 말이다. 반복되는 문제해결 과정에서 두 발로 굳건히 이 세상에 서는 한 인간으로 태어나는 시기야말로 청춘이 아닐까. 나는 그런 시기이길 바란다.

 청춘(靑春)은 푸른 봄이다. 공허했던 캠퍼스는 수많은 푸른 봄들을 맞게 된다. 차라리 죽을 이유 전혀 없는 계절이다. 설령 삶이 정해져 있다는 결정론 혹은 필연론을 믿는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우리가 그 운명을 영원히 모른다는 한에서 만큼은 삶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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