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사랑 때문에 유지되지 않는다
의리가 결혼을 지속하게 만드는 지속 인자
 
 우리 주변에 사람을 분류하는 흔한 방법 중 하나, 결혼한 사람과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다. 배려가 없기는 피차일반인데, 왜 결혼을 했냐는 질문보다 왜 하지 않았냐는 질문이 더 흔한 사회이다. 소위 혼인이라는 법적 절차,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가족의 일원, 그토록 중차대한 선택과 결정에 심사숙고했으련만,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이에게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은 소수에 대한 다수의 궁금증이었을까? 이제 국민의 40%가 결혼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니, 결혼에 관한 속내가 점점 복잡해지나 보다. 배우자의 선택이 아니고, 결혼 그 자체의 이야기다.

독점에 관하여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1)이라는 책에, 대상에 따라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과 관계의 특징을 설명한 부분이 있는데, 모성애나 형제애등과 대비하여 성애(性愛)의 키워드는 독점욕이었다. 성소수자들을 포함하면, 남녀 간의 사랑보다 성애가 더 적절한 표현 같기도 한데, 뇌의 도파민이 활성화되고 사랑에 빠지는 상태가 반드시 성적 욕구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상 잘 알고 있다2). 첫째 날이라고 정하고 사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두 사람은 서로에게 충성적인 독점관계를 요구하게 된다. 진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독점 수준을 제공하고 요구하는 정도가 다르면 ‘성격차이’라고 부른다.

 이 독점욕에 대한 깨달음은 이후 나의 연애사와 연애관에 영향을 주었는데, 긍정적일 때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으로, 부정적일 때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게 해주었다. 이십대, 영향을 준 책이 더 있다면,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소설일 것이다. 고정관념을 깨는 주인공들이 있다.

 결혼이란, 독점적 관계를 법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이 맥락에서 정의할 수 있다. 지구상에 여전히 난혼이나 처첩을 두는 문화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일부일처제가 가장 보편적인데, 독점의 유지가 결혼의 목적이라면, 가장 바람직하고 평화스러운 형태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재미있는 유전학 모델이 실려 있다.3) 생명체는 유전자를 복제하여 더 많은 개체에서 자신의 것이 생존토록 하는데, 소위 진화적 안정 전략(ESS: Evolutionary Stable Strategy)을 얻기 위하여, 필요한 비용에는 마이너스(-) 점수를, 이득에는 플러스(+) 점수를 준다. 여기서 이득이란 자신의 유전자를 자손에게 전달하는데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이 점수가 최대가 되도록 개체 사회가 진화를 이루게 된다는 이론이다.

 매우 단순한 모형에서, 암컷은 조신형과 경솔형, 수컷은 성실형과 바람둥이형으로 나뉜다. 조신형 암컷은 수컷이 수 주간의 구애를 해야 교미하고, 경솔형은 구애기간 없이 교미한다. 성실형 수컷은 장기간 구애하는 인내심을 가지고 교미 후에도 자식의 양육을 돕고, 바람둥이형은 교미 후 새로운 암컷을 찾아간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데 들어가는 비용과 유전적 이득을 계산해서 평균이득이 최대가 되는 사회는 암컷의 5/6이 조신형, 수컷의 5/8이 성실형일 때인데, 조신형과 성실형의 짝짓기가 바로 일부일처제이다.

동반관계의 지속

 사랑에 빠진다는 호르몬 작용은 유효기간이 있다. 하지만, 결혼의 지속은 훨씬 더 길다. 가정을 이루어 자식을 양육하는 과정이 인간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 나의 아파트 창가에 새들이 둥지를 튼 적이 있다. 며칠 간, 나뭇가지를 날라다 에어컨 옆에 엉성하게 둥지를 마련하고 알을 낳았다. 부모새는 둥지와 창문 앞 큰 나무를 드나들며 새끼를 길렀는데, 어느 날 모두 떠나고 조용해졌다. 새끼가 독립을 한 것이다. 양육이 종료된 후에, 동물도 부부에 해당하는 동반관계를 유지하는지, 생식과 양육이 없는 부부관계가 인간 외에도 가능한지 무척 궁금하다.

 인간 짝짓기의 특징은 동반관계의 지속이다. 결혼의 유지, 즉 부부로서의 동반관계가 대략 사오십년을 간다고 한다면, 생식과 양육이 종료되거나 부재한 채로 상당히 긴 시간을 함께 사는 셈이다. 시간적으로 단계를 나누는 것 말고도, 애초에 자식이 부재한 결혼도 지속 존재한다.  물론 자식이 있더라도, 양육이 끝나갈 즈음에 해체되는 부부도 있고, 세렌게티의 숫사자처럼 새끼가 태어나면 가족을 떠나는, 인간의 결혼이지만, 생식에서 종료되는 동반관계도 존재한다.

 미안한 말이지만, 결혼이 사랑하기 때문에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결혼을 길고 우아하게 만드는 뇌의 활동은 요즘 유행어인 ‘의리’이다. 자식을 양육하는 기간에 부부의 연대는 부성, 모성과 어우러져 동반 지속의 동기를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자식이 없는 남녀의 동반관계 지속은 유전자공유자의 애착으로 설명될 수는 없다. 도킨스에 따르면, 뇌를 가진 인간은 유전인자(gene)에 대응되는 밈(meme)이라는 인자를 가지고 있는데, 유전자가 복제를 하듯, 밈은 모방을 하는 단위로서 ESS(진화적 안정 전략)에 도달하면, 문화를 형성하고 사회적 진화를 가능케 한다고 한다.4) 본능(유전자)으로부터 해방되어 실행의 결정권을 갖는 것을 의식이라고 하는데, 그 덕에, 유전자의 선택을 극복하고 자식과 관련 없이도 동반관계가 잘 유지되기도 한다.

 나는 이 의리라는 것의 근거가 독점에 대한 미안함이라고 생각한다. 독점되었기 때문에 기회를 잃었고, 자유로운 선택을 포기한 가장 친근한 인간에게, 보상해 줄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미안함이다. 그래서 의리 때문에 독점 당해주는 보상의 교환이 결혼의 지속 인자이다.

결혼세태의 무질서도

 집단의 상태를 표현하는 물리량에 엔트로피(Entropy)라는 것이 있는데, 계산이 가능한 값임에도 ‘무질서도’라는 추상적인 해석을 가지고 있다.5) 대부분의 구성원이 혼인하는 적령기가 있고, 국가가 정한 가족계획에 따라 자식은 둘만 낳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외간 이성과의 접촉이 제한된 독점적 부부들의 사회가 있다면, 현재 변화일로 우리사회와 비교해서 질서정연한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사회를 수식으로 풀어서 해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결혼과 관련된 변수로 사회구성의 분포도를 그려본다면, 전자는 좁은 편차를 가진 정상분포이고, 후자는 정점 없이 바닥에 쫙 깔린 분포를 보일 것이다. 즉, 결혼시기, 자녀의 생산, 여러 이성과의 사회활동 등 선택이 다양해진 후자 집단을 기술하는데 필요한 정보가 훨씬 많고, 이 집단의 엔트로피가 크고 무질서하다고 표현할 수 있다.

 외부의 개입이 없는 한, 모든 자발적 과정의 엔트로피는 증가한다는 것이 물리학의 보편적 원리이다. 즉,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과 사회의 진화에 대해 엔트로피를 갖다 붙이는 것은 환원론적 관점에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국 세포분열, 감수분열, 유전자 복제와 같은 인간 활동의 기저 메카니즘은 먼지의 확산이나 우주의 팽창처럼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도록 되어 있고, 모득 속박의 붕괴는 자유도를 증대시키도록 되어 있다. 동물의 짝짓기에 비교하여 인간의 결혼은 이미 복잡하지만, 스스로 선택사양을 꾸준히 다변화시키고, 독점이라는 속박을 거두어내려는 방향으로 선택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향후 전형적인 결혼문화라는 것을 점점 보기 힘들어질 것이다. 엔트로피 때문이다.

각주
1) 에리히 프롬, 황문수 역,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1984.
2) 박찬웅, 『사랑에 빠진 뇌』, 한국과학기술한림원출판부, 2007.
3) 리처드 도킨스, 홍영남 이상임 역, 『이기적 유전자』, (주)을유문화사, 2010.
4) 리처드 도킨스, 앞의 책.
5) 필립 볼, 이덕환 역,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 까치, 2008.
▲ 김시연 교수 중앙대 물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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