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소설가의 꿈을 꾸기도 했던 이창훈 학생(사회학과 3)은 어렸을 적부터 펜을 잡은 손에 힘을 놓지 않았다. 그런 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것이 하나 있었다. “눈에 들어와야 읽히는 글의 특성상 상품성을 노리거나 자극적인 글이 많더라고요.” 단발성을 띤 글, 선정적인 글은 그의 마음을 불편케 했다. 비판을 위한 정교한 작업의 필요성을 그 때 깨달은 것이다.  
 
  마음이 불편해진다는 것은 그에게 일종의 ‘신호’였다. 기존에 가진 나의 생각과 다른 관점을 발견하는 지점은 곧 새로운 관심이 발아하는 씨앗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네?’ ‘왜 이렇게 생각했을까.’ 나와 다르다는 것이 곧 이창훈 학생에게 호기심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고, 또 스스로에게 더 많은 질문들을 던지고 싶었다. 때로는 웃음을 위한 서사에서도 웃음에 가려진 ‘불편함’이 없는지 되묻곤 했다. 그리고는 생각들이 꼬리를 무는 중에 덩어리가 커진 생각들은 노트에 남겨두었다가 글로 옮기기도 했다. 
 
  이번 비평도 그렇게 탄생했다. 과제를 하면서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던 중 곽정은씨의 발언에 관한 논란은 여지없이 그의 말초신경을 자극했다. 그가 가진 것과는 다른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주변의 또다른 의견들도 궁금해지기 시작한 그는 마침 공모전이라는 기회를 맞아 논리를 발전시켜 보기로 했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타인의 생각을 심도있게 짚어보긴 어려워요. 그래서 자신의 의견을 정교하게 가다듬는 작업이 필요했어요.” 그는 다른 이들의 생각을 끊임없이 찾아보며 성 상품화에 대한 시각들과 페미니스트들의 의견들을 끌어모았다. 
 
  글은 끝을 맺었지만 그는 자신의 문제제기에 완전한 결론이 아직 나오지 않았음을 안타까워했다. 논란 때마다 갑론을박을 하지만 결국 제 목소리 높이기로만 끝나는 상황들 역시 그러했다. “조금 더 많은 합의가 이어지고 사회문제에 대한 각각의 입장을 고민해 본다면 사회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요.” 그러려면 박차를 가하는 여럿의 의견이 교환돼야 한다는 것. 이 비평을 통해서도 독자들이 각자의 생각상자를 펼쳐볼 수 있도록 그는 기대했다. 공감과 비판의 목소리들 속에 여럿의 생각들이 교차하는 것, 그가 글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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