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아직 오지 않은 말들, 오래된 미래의 복원을 위하여  표석 학생(국어국문학과 4)

1. 왜 송경동인가.
  신자유주의 혹은 상실의 시대 이후, 참여와 실천을 말하던 문학들은 더 이상 읽히지 않았다. 노동자의 환경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문학에서 노동이나 계급을 말하는 일은 흘러간 유행가보다 진부해져 버렸다. 노동자 시인이자 혁명가였던 박노해도 대열에 합류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가치평가는 제쳐두더라도, 떠나간 자리에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문학을, 그 가운데에서도 시를 쓰는 일은 그 자체가 체제에 반하는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비어가는 공간에서 시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도 문학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 지금-여기에서 변혁을 바라고 있는 시가 있다. 적지만, 많은 이들이 사회와 문학의 관계를 고민하고 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송경동’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불온한 시인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그는 한진중공업의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희망버스를 기획한 혐의로 구속됐었다. 시인보다 활동가로 더욱 어울리는 송경동. 개인의 슬픔, 개인의 고뇌, 개인의 언어만을 말하게 된 상황에서 그의 시가 눈에 띄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문학은 ‘낡았지만 낯선 것’이었을 테니까.

2. 시대와 서정
바야흐로 엄혹한 시기다. 44년 전 청계천에서 죽어간 한 노동자처럼, 죽어가는 이들이 있다. 광화문 서울신문사 전광판에, 구미 공장의 굴뚝에, 목숨을 담보로 투쟁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사회는 침묵과 무관심을 요구한다.
  유신의 유산을 받은 대통령의 집권 이후에 시대의 악조건은 더욱 가속화됐지만 모순과 폐해는 민주진영의 집권 기간에도 지속되었다. “골목 밀고 멋진 아파트가 들어서지만” 사람들은 쫓겨났다. 인권변호사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노동자는 해고되었다. “수천 명의 목을 자른 한 자본가는 수천 마리 소떼를 몰고 가 영웅이 되었다”. 차별적 제도들이 서슬 퍼렇게 살아있었고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불의도 여전했다. 
 

  변혁의 주인이라는 노동자의 꿈도 / 탈탈 턴 호주머니처럼 스산해지고 / 몇잔 술에 코끝 찡해 / 잊었던 팔뚝질을 해보기도 하지만 / 우리는 개인이 아니었는데 개인이 되고 말았다는 서글픔만   -가리봉오거리 연가 中-

  약간의 진보, 제도의 민주화 이후에도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는 지속되었다. 독재에 대항한 사람들은, “개인이 아니었는데 개인이 되고” 말았다. 문학 역시도 이러한 흐름에 편승했다. 직접적으로 변화를 찬양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직접적인 문제제기를 하지는 않았다. ‘이제는 달라졌다, 어쩔 수 없다’는 말들로, 다른 세계를 꿈꾸는 일은 오래된 유령취급하며 덮어두었다.
  우리들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자신을 찾는 데 골몰했다. 그곳에 타인이 비집고 들어올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성찰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서정에도 계급성이 있다.” 서정은 먹고사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안정적인 계급의 특권이었다. 

  당신의 죽음 앞에서 / 어떤 아름다운 시로 이 세상을 노래해 줄까 / 어떤 그럴듯한 비유와 분석으로 / 이 세상의 구체적인 불의를 / 은유적으로 상징적으로 구조적으로 덮어줄까.   -비시적인 삶을 위한 편파적인 노래 中-

  문화는 산업적으로 기능했고, 소비할 수 없는 이들을 배제했다. 비유와 분석, 은유와 상징 등의 수사들은 다름 아닌 자본주의의 최첨단인 광고와 대중매체에서 더욱 효율적으로 더욱 감성적으로 소비를 촉진하고 문제를 은폐하는 데 복무했다. 타인의 비명은, 타인의 목소리는 언어로서 전달되지 않는다. 투정과 소음이라는 틀 속에 가둬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분리했다. “투명한 세상”을 만들었다. 이제 노동자는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다.

 
3. 80년대 민중시를 벗어나 

  현실이 왜곡되고 은폐된 상황에서 오히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사람들이 덮어두고 모른 채 넘어가는 것을 다시 꺼내는 것은 폭로,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송경동의 시는 민중시에서 한층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본래 사회 속에 존재하나 말해지지 않는 부분들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리얼리즘이 발생했다. 리얼리즘과 사상의 발전은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혁명에 대한 낙관적 강박과 인식은 오히려 인간의 개별적 삶에 대한 억압을 불러 일으켰다. 조직적인 활동 속에 어디에도 개인이 존재할 자리는 없었다. 서정은 사치가 되고 서정의 자리는 “책으로 과학으로 역사로 이성으로” 메워졌다. 예술은 혁명의 전위로서 한 치의 의심 없는 전진만을 해야 했다.

하지만 / 세월 흘러 돌아보거니 / 난 그 마르지 않던 서정의 샘을 / 책으로 과학으로 역사로 / 이성으로 가득 메워버렸다   -서정에도 계급성이 있다 中-

  노동자의 모습도 의심 없는 믿음 속에 엄숙해졌고, 신성해졌다. “조금은 돈이 있으면 좋겠다”고 회의하는 노동자는 결코 허가받지 못했다. 인간 해방을 부르짖는 이념과 달리 운동은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을 닮아갔다. 혁명은 민중의, 노동자의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순결하고 지식적으로 높은 사람들의 것이었다. 

  시대가 지나가고 사상이 변하고 문학이 바뀐다. 하늘을 찌를 듯이 성장한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고전적인 ‘노동’의 개념은 변화한다. 더 이상 노동은 공장에만 있지 않다. 마트에서, 비행기에서, 식당에서, 사무실에서, 노동은 경계 없이 이루어진다. 노동의 밖에는 소비가 삶을 장악한다. 숭고했던 공장 안의 노동자는 공장 밖의 소비자가 된다. 

  변화해가는 흐름 속에 과거의 개념과 정의는 유효하지 않음을 안다. 우리는 혁명의 주체임과 동시에 욕망의 주체다. 세계의 주인이라는 노동자는 동시에 “셧다 마우스라고 말하며 깔깔거리”고 “마누라와 그 짓을 땀 뻘뻘 흘리며” 하고 싶은 존재다. “생의 완성은 다만 저 혁명의 완수에만 있지 않”고 “다시 찬찬히 떠오르던 마산항 붉은 새벽 노을”에 있다. 송경동은 미시적인 삶 속에서 다시금 인간 본연의 해방을 꿈꾼다.

4. 해방의 언어를 꿈꾸다

  시는 태초에 노래로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문명의 발전 속에서 시는 노래가 아니라 문자로서 전승되었다. 시는 활자화를 통해 시공간의 제약을 허물고, 진리를 탐구하기 시작했지만 노래로서의 특징들을 사라지게 하였다. 이제, 시는 광장에 있지 않고, 책장에 꽂힌 책에 존재한다. 공동의 경험이 아닌 내밀한 개인의 내면에 존재한다. 반면, 거리의 시인 송경동은 활자로서 읽히는 것을 벗어나 집회에서 광장에서 낭송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투쟁의 현장으로 달려가 시를 ‘낭송’한다. 가장 비시적인 시를 지향하는 그는, 편파적인 공간에서 다시금 ‘시’의 정의를 묻고 있다.

지금은 문 닫힌 공장 / 그러나 한때 이곳은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노래를 낳던 / 희망의 공장이었다 세상의 모든 혼돈을 / 가지런히 조율하던 사랑과 연민의 공장 / 세상의 모든 가녀린 목소리들을 하나로 묶던 / 연대의 공장이었다 // 노래가 노래를 배반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해 / 삶이 삶을 배반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해 / 이 공장을 살려내라 / 이 공장은 우리 모두의 / 꿈의 공장      -꿈의 공장을 찾아서 中-

  세계화라는 허울 속에, 자본 간의 장벽이 허물어지자 기업은 노동자를 해고하고 떠났다. 가녀린 음색의 기타를 만들던 공장은 폐업되고 노동자는 갈 곳을 잃었다. 공장은 노동자에게 착취와 억압이 이루어지는 공간임과 동시에, 세계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공장의 상실은 노동자에게 있어서 삶과 목적의 상실을 의미한다.  

  진은영은 시의 정치성이“어떤 공간에서 시를 낭송하는 행위가 그 공간과 결합하고 그 공간의 성격을 어떻게 바꿔나가는지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고 했다. 폐업한 공장의 앞에서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그의 낭송은 ‘정치와 시의 접맥을 통한 시의 현실화를 노리는 행위’다.

세계가 내 몸을 타자기로 삼아 제 이야기를 두드렸다. 더 이상 내 몸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꿈꾸는 자 잡혀간다 19쪽-

  현장에서 낭송되는 그의 시는 ‘그 개인의 것’이 아니다. “외로움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모든 형태의 산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 세계에 대한 항의”다. 무수한 이야기, 무수한 모순들, 비가시적이지만 존재하는 것들이 언어를 얻은 형태이다. 그렇기에 그에게 시는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 아니면 깨끗이 버릴 수도 있”는 것이 되었다. ‘구로동 시인’이 되고 싶었다는 그는 고통의 뿌리를 가지고, 비시적인 삶을 편파적으로 노래하기 위해, 사람들의 억눌린 감정들을 승화하여 하나로 결집하기 위해, 다시 희망을 말하기 위해, 다른 세계를 꿈꾸기 위해 시를 쓴다.

5. 아직 오지 않은 말들
 

조용이 눈을 감아본다 / 분명히 내가 잃어버린 게 한 가지 있는 듯한데 /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혁명 中-

 송경동은 “그냥 시인만 되고 싶은 시인” 이지만 “하지만 이 시대는 쉽게, 시를 쓸 수 없는 시대”이기에 불온한 투쟁을 지속한다. 그는 시로부터 ‘나’의 완성, 자아의 완성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렸던 것을 갈망한다. 우리들은 광장이 아닌 골방으로 들어가면서 ‘무엇’을 두고 왔다. 승자독식 사회의 무한한 경쟁 사이에서 서로를 밀쳐내다가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인간 본연의 이상은 잘못된 허가를 거부하고, 허가 너머의 삶을 상상하는 일, 연대와 공감을 통해 새롭게 우리가 되는 ‘아직 오지 않는 말’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다.


문학비평 부문 당선자 표석 학생 interview

냉혹한 칼바람에 그는 더 단단해졌다

당선 소식을 받았지만 그는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글을 쓴다는 것,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표석 학생(국어국문학과 4)은 당선의 기쁨 앞에 외려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지난 2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맞서 희망버스를 주도한 혐의로 송경동 시인이 징역 2년을 선고받았기 때문이었다. “진정성 있는 사람들이 설 수 있는 공간들이 갈수록 축소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송경동 시인의 시가 좋았다. 교수님으로부터 우연히 시집을 건네받고 시인을 처음 만나게 된 순간부터. 글자들은 군더더기 없이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복잡하게 암호화 돼 있는 요즘 시들과 달리 그의 시는 꾸밈없는 자연스러운 언어들로 그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투쟁하는 시인의 모습은 그에게 큰 귀감이 됐고 그렇게 그는 차츰 사회의 약자들을 향하게 됐다.
  처음부터 그가 사회에 눈을 뜬 것은 아니었다. 여느 대학생들처럼 적당한 대학에 입학해 적당한 시기에 취직을 하는 것이 목표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2008년 촛불 집회. 우연히 그곳에 따라나서게 되면서 그의 인생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사실 그전에는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제도적인 선 안에서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때 맞닥뜨린 현실은 그게 아니었죠.” 그가 현장에서 본 것은 꽤나 차가운 현실의 파편들이었다. 그 이후 일어난 용산 참사와 쌍용자동차 사태를 지켜보면서 그는 그때보다 더 냉혹한 현실에 몸서리쳤지만, 일련의 사건들은 차츰차츰 그를 단단하고 확고하게 만들어갔다.
  기성적인 관점이 놓칠 수 있는 부분, 그래서 소외되기 쉬운 부분들에 대해 유독 마음이 동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현장에서 배우고 느낀 대로 진보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표석 학생. 그는 사회의 소외 계층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계속 고민해보고 싶다고 했다. “단순히 열정만 가지고는 어렵다는 걸 알아요. 사회에 나갔을 때 진보적인 의지를 굳히기 위해선 거기에 맞는 준비들이 필요할 것 같아요.” 마치 송경동 시인이 그만의 터전에서 꾸준히 활동해온 것처럼 그 역시 냉혹한 현실에 맞설 단단함을 갖춰가고 있었다.

                                                                                                  김영화 기자  kyh@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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