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중대신문 창간
1950~60년대 학내 언론의 태동기

1980년대 언론 탄압 겪기도
2011년 중앙문화·녹지 독립

  학내 곳곳의 배부대에는 각 언론사에서 배포한 간행물이 가득합니다. 최근엔 중앙문화와 녹지가 발행돼 학생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중대신문, UBS, 중앙 헤럴드, 중앙문화, 녹지까지. 중앙대에는 다양한 학내 매체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언제부터, 어떻게 우리와 함께해왔을까요.
 

  가장 처음 학생들 앞에 나타난 학내 언론은 중대신문입니다. 국내 최초의 대학신문인 중대신문은 1947년 9월 1일 중대학보란 이름으로 창간됐는데요. 국토가 분단되고 민족이 양분된 혼란기에 국가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발행됐습니다.
 

  1950년대는 각종 학내 언론의 태동기였습니다. 1953년 ‘의혈과 함께하는 진보언론’ 중앙문화가 출범했죠. 이어 1957년에는 UBS(University Broadcasting Service)의 전신인 VCAU와 중앙헤럴드가 사이좋게 국내 대학 최초의 방송국, 영자신문사로 걸음마를 시작합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학내 언론들이 각자의 기틀을 다진 기간이었는데요. 중대신문의 경우 1955년 전국 신문 발송을 시작으로 1958년 부록 ‘어린이판’을 발행하기도 합니다. 사회 각 층으로 손길을 뻗어 가던 중대신문은 1979년 전국 고교로 배부망을 확대하기에 이릅니다. UBS 또한 1967년 ‘캠퍼스퀴즈쇼’를 공개방송하고 이후 편성표에 의한 방송을 진행해 방송 시스템을 체계화했죠. 한편 국내 대학 최초의 여성주의 교지인 녹지가 1967년 중앙대 여학생회 주도로 발간됩니다.
 

  1980년대엔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가 민주 사회의 눈이자 숨통인 언론의 목을 죄어 왔습니다. 대학 언론도 예외는 아니었는데요. 1980년 계엄해제 요구 논설과 가두시위 현장 기사를 실었다는 이유로 중대신문의 인쇄가 중지됐죠. 휴교기간에는 제작 자체가 중지되는 사태도 벌어졌습니다. 같은 시기 UBS도 감시와 압박에 시달리며 생방송이 금지당하는 등 수난을 겪었습니다.
 

  1980년대 중후반은 언론 탄압에 대한 투쟁의 역사로 기억됩니다. 1984년 중대신문은 사전 원고 검열을 거부하고 편집 자율권 을 요구하며 투쟁을 벌입니다. 제작 거부도 불사한 기자들은 결국 편집 자율권을 약속받습니다. 이후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서 1987년 5월 ‘자유언론투쟁’으로 갈등이 다시 표면화됩니다. 1986년 9월 중앙문화 편집위원들도 독재 정권에 저항하며 농성을 벌였죠. 이로 인해 1986년, 1987년 중앙문화의 발행이 중지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UBS도 ‘흑석골 곰방대’란 사회풍자 방송으로 언론 통제에 맞섰습니다.
 

  1990년대 후반 녹지는 연 1회 발행에서 연 2회 발행으로 변모합니다. 학우들과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였죠. 이 시기 중대신문은 대학신문 최초로 인터넷 신문을 개설하고 2003년 공식방북취재를 성사시키는 쾌거를 이룹니다. UBS 또한 2000년대 초 IUBS 인터넷 방송을 시작합니다.
 

  언론매체부 소속으로 발행되던 중앙문화와 녹지는 2010년 교지편집위원회로 독립하게 됩니다. 중앙문화가 2009년 58호를 전권 강제 수거 당하는 사건이 그 계기가 됐는데요. 대학본부를 향한 비판적인 논조와 발행인인 총장에 대한 희화화가 도를 지나쳤다는 것이 수거의 이유였습니다. 학내 교지 예산을 전액 삭감당할 위기에 처한 중앙문화는 이에 항의하며 대학 언론 장례식 퍼포먼스를 펼쳤습니다. 2010년 4월에는 학교로부터 별도의 지원 없이 성금만으로 ‘대학개조선언’이란 무제호를 발간하기도 했죠. 결국 중앙문화는 교지 대금을 교비로 지원받는 방식에서 자율 납부 방식으로 변경하며 학내 자치 매체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중앙대 학내 언론의 대다수는 대학 언론 최초로 시작해 대학 언론을 선두에서 이끌어 왔습니다. 최초의 언론에서 최고의 언론으로 자리매김한 학내 언론들이 계속해서 의혈 속에 함께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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