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프레데리크 그로 저/책세상/320쪽

  우리의 발걸음엔 언제나 목적지가 있었다. 무엇이든지 더 빨리 더 멀리 가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는 오늘, 걷는다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어쩌면 순진한 생각이라 할 수도 있다. 프레데리크 그로의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책세상 펴냄)은 방향이 뚜렷한 걸음에 익숙해져있는 우리들에게 목적지가 없는 걸음이 펼치는 상상력을 담았다. 

  프랑스 파리12대학 철학교수이자 미셸 푸코 연구자로 잘 알려진 프레데리크 그로는 이 책에서 걷는다는 것에 대한 철학적 사색을 담고 있다. 우리는 걷는 행위를 통해 비로소 해방된다는 것이다. 걷다보면 발자국 위로 그간 애썼던 지난날의 궤적이 내려앉고 스스로를 옥죄는 강박으로부터 해방된다. 이 순간만큼은 경쟁하며 썼던 가면도 필요 없다. 오직 걷는 나, 이 순간을 살고 있는 확실한 감각을 얻을 뿐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부터 니체, 루소, 칸트 등의 철학자들은 걷고 또 걸었다. 그들의 철학적 사색은 어둡고 딱딱한 책상이 아니라 두 발에서 시작된 것이다. 일명 ‘나는 걷는다, 고로 철학한다’는 것. 데카르트 철학의 제1명제를 잇는 새로운 철학적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바깥 공기가 느껴지는 그들의 발걸음에서 그간 멀게만 느껴졌던 철학자들의 사상을 바라보는 다른 각도가 느껴진다. 이들이 말하는 바는 단순하다. 그들의 감수성과 통찰력의 시작에 바로 걷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어떤 목적도 없는 오직 걷기를 위한 걷기였다. 

  브레이크 한 번 밟지 못하고 쉴 새 없이 달려온 오늘날 우리 사회는 여전히 엔진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은 발열된 엔진에 한 공기 찬 숨을 불어넣는다. 더 빨리 더 멀리 가고자 했지만 정작 제자리에 머무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걷는다는 것은 남보다 멀리 가고자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길에는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욕심도, 더 갖고 싶다는 욕망도, 타인의 기대와 시선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목적지 없이 끌리는 대로 옮기는 발걸음은 이보다 자유로울 수 없다. 마음의 충동과 즉흥은 그 어느 때보다 환영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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